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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승완이가 골목 어귀에 나타났습니다. 장난기가 가득합니다.
ⓒ 느릿느릿 박철
추승완은 지석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입니다. 4년 전 IMF 이후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두 남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요 몇 년 사이로 교동 섬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한 단면이겠지요.

승완이는 생긴 것부터 귀엽게 생겼습니다. 잠시도 가만 있지 않을 정도로 개구쟁이인데 조금도 얄밉지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는데 그만큼 순진하기 때문입니다. 늘 밝고 명랑합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참 좋습니다. 우리집에 놀러와 심하게 저지레를 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야단을 치면 보통 다른 애들 같으면 입을 삐죽거리고 삐칠 텐데 승완이는 절대로 삐치는 일이 없습니다. 잠시 후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늘 콧물을 달고 다니지만 웃을 때는 콧구멍이 약간 벌어지고 하얀 이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습니다. 그렇게 활짝 웃는 승완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승완이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승완이 할머니를 만났는데 다음 같이 걱정을 하십니다.

"목사님, 우리 승완이가 너무 까불기만 하고 공부는 못하고 큰일잇시다. 공부를 잘 해야 할 텐데 장난이 심하니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시다."

▲ 승완아,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해야지.
ⓒ 느릿느릿 박철
"승완이 할머니, 조금도 걱정마세요. 승완이처럼 좋은 성격을 가진 애도 없어요. 어디를 가도 또박또박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어른들을 보면 인사 잘하고, 그리고 늘 웃잖아요. 저는 승완이를 길에서라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공부 잘하는 것도 좋겠지만 승완이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아이예요. 이 담에 승완이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극구 승완이를 칭찬하자 승완이 할머니도 마음이 놓이는지 활짝 웃으십니다. 그런데 웃으시는 모습을 승완이 웃는 모습과 꼭 같습니다. 승완이가 할머니를 닮았나 봅니다.

열흘 전쯤 KBS-TV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내가 작년 5월 15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이래 봬도 이발 경력만 40년 넘었시다"라는 기사를 보고 그 기사를 영상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좋다고 하자, 한 차례 교동에 탐사를 왔다가 지난주 촬영 팀이 교동을 방문해서 이틀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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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뵈도 이발경력만 40년 넘었시다"

담당 작가와 PD가 나를 만나서 설명하길 신설 프로그램인데 "옛 생각이 나겠지요"(가제)라는 제목으로 방송에 나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프로그램의 컨셉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옛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풍경을 찾아 내어 소개하는 코너라고 합니다. 교동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대룡리시장은 60년대 이후 전혀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딱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거기에다 교동이발소는 옛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것입니다.

▲ 아저씨! 가르마를 7:3으로 해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사전에 줄거리를 만들어서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어린이가 하나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우리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마침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승완이를 집 앞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촬영감독은 손으로 넘버원 표시를 하며 승완이를 보자마자 대뜸 좋다고 합니다.

감독 말에 의하면 승완이는 얼굴 모습 자체가 연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즉석에서 승완이가 "옛 생각이 나겠지요"의 주인공으로 발탁이 되었고, 승완이 할머니도 덩달아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승완이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다가 승완이를 데리고 대룡리 교동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이고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는 내용입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승완이가 작대기를 툭툭 치며 동네 어귀에 나타났습니다. 긴장된 순간입니다. 카메라가 줌인하며 승완이의 동작을 하나 하나 따라갑니다. 촬영감독은 더 재밌는 장면을 잡기 위해 대 여섯번 다시 찍습니다. 그런데 승완이가 카메라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연기를 하는데 스태프 모두가 감탄할 정도로 능숙하게 연기를 합니다. 승완이가 집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빨래를 널면서 말씀하십니다.

"승완아, 할머니를 보면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해야지!"
"할머니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우리 승완이 착하다. 그럼 얼른 세수하고 장에 머리 깎으러 가자. 머리 깎고 할머니가 맛있는 자장면 사 줄게."


▲ 야! 나도 감독 한번 해보면 좋겠다.
ⓒ 느릿느릿 박철
거의 NG 없이 촬영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장면은 이발소 풍경입니다. 교동이발소에서 40년 동안 이발사를 하셨던 지광식 아저씨가 승완이 머리를 깎는 모습을 촬영하는 순서입니다. 조명을 켜고 그 좁은 이발소에서 두시간이 넘게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촬영하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광식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십니다. 중간 중간 담배를 피시며 TV 촬영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고 하십니다. HD-TV 카메라는 동작 하나 하나를 근접하여 촬영을 합니다. 거의 촬영이 끝나갈 무렵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빗으로 머리를 7:3으로 싹 넘기면서 지광식 아저씨가 대본에도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야, 이 녀석 봐라. 머리를 깎고 났더니 근사한데. 전혀 딴 사람이 되었네." 그랬더니 승완이 녀석이 자기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아이고, 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네!"합니다. 그래서 촬영을 지켜보던 모든 스태프들이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승완이에게 해당되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만 거의 다섯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장면을 반복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갑갑하여 싫증을 낼 텐데 성격 좋은 승완이는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고 재밌어 합니다. 방송작가랑 촬영감독은 승완이의 연기가 대단히 흡족했던 모양입니다.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는데 승완이가 헤어지기가 서운했던지 촬영감독 허리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헤어지면서 촬영감독이 승완이에게 한마디 합니다.

▲ 촬영을 마치고 스태프들과 함께. 교동 이발소 앞에서
ⓒ 느릿느릿 박철
"승완아! 오늘 네 연기는 일품이었다. 너 이 다음에 탤런트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잘했어!"

승완이는 우리 동네 얼굴 짱, 마음 짱 어린이입니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잔머리를 돌릴 줄 모릅니다. 보면 볼수록 귀엽고 붙임성이 있고, 승완이를 만나면 모든 근심이 다 물러갑니다. 승완이는 요즘 TV에 자기 얼굴이 나올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5월 말 쯤, TV에서 승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동의 명물, 추승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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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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