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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그득한 논에는 햇빛에 반사된 산 그림자가 드리웠다.
ⓒ 박철
교동섬에는 모내기가 얼추 끝났다. 이제 뒷마무리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일단 모내기를 마쳤으니 숨을 돌릴 만하다. 모내기를 마친 논마다 여린 모들이 세상 구경을 나온 것처럼 인사를 하고, 물이 그득한 논에는 햇빛에 반사된 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늘은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교동 주민들을 위해서 군의관들을 중심으로 의료봉사단을 조직하여 대민 의료 지원을 하러 오는 날이다. 그리고 오후 2시 30분부터는 해병대 군악대가 작은 음악회를 열기로 되어있다.

교동은 섬 지역이어서 교통이 불편하고 병원 시설이 부족하다. 또한 많은 분들이 강도 높은 농사일로 인하여 만성적인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70세 이상 된 노인들도 농사일에 동원된다.

농촌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자 젊은이들은 자연히 농촌을 떠나게 되었고, 편히 쉬어야 할 노인들이 논일이며 밭일을 하시게 된 것이다. 기계도 일정 기간 사용하고 나면 수명이 다하여 고장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침을 맞고 가지런히 누워계시는데 내외도 하지 않으신다.
ⓒ 박철
주로 많은 질병이 골격계 질환이다. 허리, 무릎, 다리 등등. 한군데씩은 다 아프다. 농번기 때는 아프다고 쉴 수도 없고, 농사일이란 게 다 때가 있으니 쉬엄쉬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온몸이 고장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 농사일로 인해 생긴 질병인데도, 농민들은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아침부터 면사무소 임시 진료소에는 환자들로 북적댄다. 교동에서 8년째 살다 보니 사람들 얼굴이 익숙하다. 군의관을 비롯한 봉사단원들이 친절하게 환자들을 맞이했다. 진료 과목은 크게 한방과 양방이다.

침 시술을 하고 있는 군의관에게 잠시 소감을 물었다.

"주로 환자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보니, 양방으로 해결해도 되는 것을 침을 맞고 싶어 하시지요. 저희들이 지난 주부터 볼음도, 주문도, 오늘 교동까지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데 섬사람들이 다 순진하고 때가 묻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청정 지역답게 사람들도 맑고 깨끗하십니다. 오전에만 벌써 35분을 시술했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요. 아무래도 시간적인 제약을 받다보니 깊이 있는 진료 행위를 할 수 없지요. 그것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진료를 받고 나오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차례로 만나 보았다.

▲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방 시술을 받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신다. 이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
ⓒ 박철
"예전부터 무릎이 아팠시다. 일 할 때야 죽기 살기로 하니 아픈 걸 잊어 먹다가 일만 끝마치고 나면 무릎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시다. 너무 아파서 모를 새기는 일도 못하겠시다. 걷지도 못하겠는데…."

"침을 맞고 나니 기분이 개운하고 좋시다. 나는 4년 전부터 양쪽 엄지발가락에 마비가 왔는데 큰 병원에 가 보았더니 당뇨병과 고혈압이 원인이래요. 그러니 어쩌겠시꺄."

- 어르신, 해병대에서 의료 봉사를 나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고맙지요. 군의관 의사 양반이 내 손자뻘 되는 나이인 것 같은데 싹싹하고 사람이 좋시다. 교동에 가끔 왔으면 좋겠시다. 의료보험이 있어도 늙은이들이야 기동력이 없으니 인천이나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갈 수 없시다. 그러니 아파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아픈대로 살 수밖에 없시다. 참 고맙시다. 아침 일찍 왔다가 사람들이 많아서 집에 다시 갔다가 이제 와서 침 맞고 가는 거예요. 그나저나 빨리 나았으면 좋겠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침을 맞고 가지런히 누워 계시는데 내외도 하지 않으신다. 그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한쪽에서는 해병대 장병들이 양방 군의관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슬쩍 들은 말이 "자네는 살 좀 빼야겠어!"였다.

▲ 왼쪽이 주종화 소령.
ⓒ 박철
마침 오늘 대민지원의 총책임자인 해병대 청룡부대 정훈공보실장 주종화 소령을 만났다. 키가 훤칠하고 미남이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응해 준다.

- 어떻게 해서 의료 봉사를 하러 오시게 되었나요?
"예전부터 군부대는 주로 민간 지역을 벗어나 외곽 지대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외곽 지대인 격(格)오지에 살고 있는 민간인들은 의료 혜택을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요즘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군부대는 전문의 출신인 군의관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대민 지원 차원에서 격오지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해 왔습니다. 그런 일환으로 일년에 전반기 후반기로 나누어 강화 지역 7개 섬을 차례로 방문하여 대민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럼 오늘 오후에 있을 작은 음악회는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나요?
"작은 음악회는 올해 처음 시작했습니다. 제가 정훈공보실장으로 보직을 받고 나서 의료 대민 지원을 나가면서 좀 더 지역 주민들과 친밀감을 갖고 군과 민이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우리 청룡부대에 있는 군악대를 중심으로 15인조 빅밴드를 조직하여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마다 작은 음악회를 실시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부대장에게 건의를 드렸더니 기꺼이 허락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에 주로 해병대 병력들이 주둔하고 있는데 해병대 장병들 위문공연을 겸해서 해병대 장병들이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 좋은 일을 하십니다. 앞으로 또 다른 대민 지원 계획이 있으십니까?
"네, 올 가을부터는 농기계 수리 전담반을 조직해서 의료 봉사와 함께 농기계 수리를 병행하려고 합니다. 군부대에 군무원들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박철
▲ 교동 주민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음악회에 열중하고 있다.
ⓒ 박철
- 이렇게 섬 오지를 다니며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지역 주민들이 모두 부모님 같고, 형님, 누님 같은 분들이지요. 너무나 보람되고 좋습니다. 봉사단원들도 모두 좋아하지요. 그동안 군부대 특성상 민간인들에게 많은 통제가 있었지요. 그래서 군과 민이 일체감을 갖기 어려웠는데 저희들의 이런 작은 활동으로 지역 주민들이 우리 군인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면사무소 강당은 해병대 중대본부 장병들과 지역 주민들로 가득 찼다. 해병대 15인조 빅밴드가 각자 조율을 하며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드디어 사회자가 등장하여 거수 경례를 한다.

"필승! 여러분의 부름 받고 달려온 해병대 제2사단 청룡부대 군악대 작은 음악회 사회를 맡게 된 상병 김○○입니다. 저희 청룡군악대에서는 오지에서 해병대 상승불패의 정신을 가지고 궂은 환경을 이기시는 해병대 대원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이렇게 작은 음악회와 위문 공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주체할 수 없는 끼가 끌어 오르는 분들은 무대에 나오셔서 즐겁게 흔들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 우리도 구경하면 안 되나요? 동네 꼬마들. 우리도 빨리 군대에 가고 싶다.
ⓒ 박철
청룡부대 빅밴드가 능숙한 솜씨로 귀에 익은 곡은 연주하는데 수준급이다. < Gimme Gimme Gimme >, < Beautiful Sunday >, < Toccata > 등…. 곡이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온다. 동네 주민들은 신기한 듯 빅밴드의 연주에 빠져든다. 15명의 단원 중 홍일점으로 여자 단원이 한 사람 끼어 있다. 트럼펫을 연주하는데 해병대 병사들의 눈길이 여자 트럼펫 주자에게 쏠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빅밴드가 준비한 12곡의 연주가 모두 끝났다. 이제부터는 해병대 장병들의 노래 자랑 시간이다. 더러 귀에 익은 노래도 있지만, 모르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잠자고 있던 해병대 병사들의 끼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현란한 춤과 노래를 열창하는데 조금도 어수선한 느낌이 없다.

방금 전, 해병대 장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빅밴드의 여자 대원이 찬조 출연을 하여 소찬휘의 < Tears >를 부르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을 한다. 해병대 병사들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난다. 노래를 마친 여자 대원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계급은 하사였다.

▲ 해병대 병사들의 시선이 여자 트럼펫 주자에 쏠리고 있다.
ⓒ 박철
▲ 오메, 좋아 죽겠네. 해병대 병사들의 끼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 박철
- 군에 입대한 지는 얼마나 되셨고 입대한 동기는?
"작년 7월에요. 어려서부터 마음으로 해병대를 동경해 왔어요."

- 트럼펫은 언제부터 배웠나요?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요. 처음부터 해병대 군악대에 지원에서 들어왔어요."

- 부대에 있을 때에도 인기 짱 이겠네요?

그냥 웃음으로 대답한다. 얼굴이 참 밝다. 동생 삼았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해병대 장병들의 노래 자랑이 이어졌다. 주민들도 나와서 해병대 병사와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아버지와 아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 같다. 코끝이 찡해진다. 흥겨운 한마당이 펼쳐졌다.

▲ 기분이 최고조인 모양이다. 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동생들 아닌가.
ⓒ 박철
내가 결혼을 늦게 해서 아들 둘이 이제 고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데, 다 내 아들 같다. 늠름하고 마음이 든든해진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명치 끝에서부터 묵직한 것이 올라온다. 해병대와 교동 섬사람들이 하나 되던 날, 참 고맙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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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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