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북 군산시에 소재한 기아특수강(현 세아제강) 해고자 이재현, 조성옥씨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굴뚝. 이재현씨가 기자와 통화중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전북 군산시에 소재한 기아특수강(현 세아제강) 해고자 이재현, 조성옥씨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굴뚝. 이재현씨가 기자와 통화중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그동안 인도적 조치 운운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던 회사측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1주일간은 가족들의 음식물까지도 막았습니다. 그 후 가족과 대책위의 강한 항의를 받고 겨우 음식물 반입은 재개되었지만, 그밖의 물건들은 두 달이 넘는 지금까지도 막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휴대전화 배터리는 물론이고,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요청한 보온용품도 막아왔습니다.

회사는 가족들이 올리는 음식물의 속 내용까지 젓가락으로 휘저어 뒤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이 이에 항의하면 음식물도 못 올리게 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부터 모든 음식물 반입을 스스로 거부합니다." (2월 23일 기아특수강 해고노동자 이재현, 조성옥)


보이는 것은 군산 앞 바다와 황량한 공단이 전부. 기아특수강 해고노동자 2명이 회사 내 50M 높이의 굴뚝에서 죽음을 무릅쓴 채 119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당해고'라며 13년째 원직복직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재현(44)씨, 같은 사유로 10년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성옥(42)씨가 굴뚝농성을 결행한 것은 지난해 11월 6일 새벽. 3월 1일로 농성 119일째이다. 이들은 조합활동과 관련한 이유로 91년과 94년 각각 해고돼, 1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 원직복직 요구 시위를 벌여왔다.

조합활동이유 해고, 기아특수강 최근 세아에 넘어가

이들의 해고 사유는 불법유인물 배포. 이씨는 조합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와 관련해, 조씨는 임금교섭과 관련한 노사합의에 항의해 조합원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의 해고문제는 법적으로 이미 끝난 상태다. 조합활동의 일환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방노동위, 중앙노동위 등에서 모두 패소했기 때문이다.

군산공단에 위치한 기아특수강. 사진으로만 봐도 굴뚝이 아찔하다. 50미터 위에서는 바람에도 굴뚝이 흔들린다.
군산공단에 위치한 기아특수강. 사진으로만 봐도 굴뚝이 아찔하다. 50미터 위에서는 바람에도 굴뚝이 흔들린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생업을 접고 본격적인 복직투쟁에 나선 것은 지난 해부터. 97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이 회사가 매각절차를 통해 세아 컨소시엄과 계약체결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막노동과 사회단체 등을 전전하며 10년 넘게 벌여왔던 이들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3자 인수 전 복직문제를 마무리짓지 못하면 더 미궁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 테이블마저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은 지난해 11월 6일 새벽 감시자의 눈을 피해 50미터 높이의 굴뚝 난간을 타고 기어올랐다. 새로운 일자리를 마다하고 10년 넘게 복직투쟁만을 벌여온 이들에게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 굴뚝에 올라가는 유일한 통로는 철제 계단. 그러나 계단은 굴뚝 중간쯤에서 끊겨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들은 미리 사다리를 준비했었다. 이때는 아직 늦가을 기운이 남아 있던 때.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한복과 몇 가지 농성물품이 전부였다. 그리고 119일째를 맞았다.

유례 없는 폭설이 계속됐던 지난 겨울. 군산기상대는 설 전후였던 1월 17일부터 26일까지 무려 10일간 폭설과 비가 지속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22일 최저기온은 영하 14.7℃, 최대풍속은 31.7M였다. 설날이기도 했던 이날, 이들은 가족과의 통신마저 두절돼 있었다.

혹한 속 통신수단마저 끊겨, 사측 "원직복직 어렵다"

굴뚝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고자들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핸드폰이었지만 파장을 우려한 회사가 휴대폰 배터리의 반입을 차단해왔기 때문이다. 폭설이 계속된 지난 설 연휴. 불빛도 없는 공단의 한 굴뚝 꼭대기에서 이씨와 조씨는 그렇게 살아 남았다.

전북지역 사회단체들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지만 경영진과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굴뚝농성자들은 회사측이 가족들의 음식물 내용까지 확인하자 지난 달 23일부터는 아예 단식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달 26일 사장과 첫 대면이 이뤄졌지만 원직복직은 어렵고 하청업체 취직을 권해주겠다는 입장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24시간 응급차가 대기중이다. 교대를 위해 응급차가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멀리 굴뚝이 보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24시간 응급차가 대기중이다. 교대를 위해 응급차가 정문을 빠져나가고 있다. 멀리 굴뚝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굴뚝 밑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매트리스를 깔아 두었고, 응급차가 교대로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또 현장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조명을 켜놓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있다. 회사는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까지 설치했다가 최근 철거하기도 했다.

현장 접근은 농성 해고자 이씨의 부인 정미례씨와 조씨의 부인인 독일인 아내 코넬리아(41)씨만 가능하다. 단식 이후 물품반입이 재개됐으나, 책이나 신문 등은 금지품목이다. 가족들은 굴뚝 밑에서 줄을 이용해 생수와 간단한 옷가지를 전달하고 있다.

농성 장소는 가운데가 굴뚝으로 돼 있어 해고자들이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폭 90㎝ 정도의 둘레 난간뿐이다. 굴뚝에는 농성을 알리는 플래카드 몇 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굶어 죽겠다'는 글씨만이 선명하다. '동사 실험중인 마루타'라고 불리는 농성은 3월 1일로 119일, 단식 8일째를 맞고 있다.

기아특수강 해고자 전북 대책위원회(위원장 문정현 신부)는 3월 3일(수)부터 릴레이 동조단식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몇 차례 취재요청을 끝내 거부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달 27일에 이어 29일 밤 이재현씨와 핸드폰 통화를 시도했다.

- 단식 1주일째인데 건강상태는 어떤가?
"괜찮다. 버틸 만하다. 출근시간에 맞춰 조합원에게 인사도 하고 해 왔는데 단식하면서부터는 자제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는다."

- 농성장 구조는 어떤지 설명해 달라.
"대략 50M 높이이고 중간에 굴뚝이 있다. 둘레는 폭 90㎝ 정도의 난간이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잘 공간은 안돼 발을 대고 양쪽으로 한 사람씩 눕는다."

- 가지고 있는 농성물품은 어떤 것이 있나?
"담요나 침낭, 옷가지들이 있다. 또 식수와 필기구 등이 있다. 반입이 재개돼 조금 나아졌다. 비닐 움막식으로 바람을 막고 있다. 배낭하나씩을 매고 왔는데 가득 넣는다고 넣었다."

"음식물 못 올리게 하는 것으로 가족들 협박"

- 왜 단식이라는 극한의 방법을 취하게 됐나?
"부당해고로 1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투쟁해 왔지만 회사측은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또 110여일이 넘도록 나서지 않고 있다. 회사측은 음식물을 못 올리게 하는 것으로 가족들을 협박했다. 가족들은 우리들 때문에 회사 눈치를 봐왔다. 그런데 회사는 올려보내는 밥까지 젓가락으로 휘젖는 비열한 행위를 해 왔다. 당사자들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 법적으로는 끝난 문제 아닌가?
"법적인 문제는 정리됐지만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이 노동조합인데 당시 어용집행부에서 우리들의 해고를 합의해 줘 버렸다. 법원에 가더라도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어용노조가 많던 시절에 이뤄진 해고는 사실상 법적인 의미가 없다.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탄압을 막을 수 있다."

- 10년 넘께 싸울 만큼 그렇게 중요했나?
"자존심의 문제이다. 나는 부서 대의원이자 노조간부였는데 노조간부가 설문조사를 한 것을 이유로 해고됐다. 조성옥씨는 회사측의 노조에 대한 부당한 개입에 항의해 유인물을 돌린 것으로 해고됐는데, 10년 전 복직각서 써 놓고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용납할 수 없다."

- 그동안 추위를 어떻게 견뎠나?
"설 연휴때 폭설이 내려 가장 힘들었다. 침낭 속에서 참는 것밖에 없었다. 해고생활하면서 당했던 것 생각하면서 밤새 참았다."

"아들 초등학교 졸업식 못봐 미안...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점 있을 것"

- 가장 힘든 시간은 언제인가?
"밤이다. 여긴 불도 안 들어오고 또 (밤 되면)생각이 많아진다. 추울 때 특히 바람이 불 때는 굴뚝이 흔들려 잠을 설치기도 한다. 가족도 생각나고... 아들 하나 있는데 초등학교 졸업식을 못봐 제일 미안하다."

- 단식까지 하는 상황에서 계속 이어갈 수 있겠나?
"힘들기는 하지만 10년, 13년째 투쟁해 왔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아니면 없다. 끝까지 버티면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 해결이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회사는 예상했던 것이고, 원하지 않게 가족들과 주변 분들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제일 그렇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주익 한진중공업 위원장에서도 봤지만, 최소한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해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인 것 같다. 굶어 죽어서라도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전북지역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쓰고 있는 회사 맞은편 콘테이너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정면 오른쪽이 조성옥씨의 부인 독일인 코넬리아,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이재현씨의 부인 정미례씨이다.
전북지역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쓰고 있는 회사 맞은편 콘테이너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정면 오른쪽이 조성옥씨의 부인 독일인 코넬리아,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은 이재현씨의 부인 정미례씨이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회사는 스스로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컨테이너에서 만난 농성자 가족들

조성옥씨의 부인인 독일인 코넬리아(41)씨. 학생시절 배낭여행 길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97년 기회를 찾던 그녀에게 일자리가 하나 생겼다. 그녀는 현재 군산대학교 독일어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남편 조씨를 만난 것은 5년여 전. 당시 해고자 신분이었던 조씨가 매형이 운영하던 서점일을 대신하고 있을 때였다. 자상한 조씨는 그녀에게 좋은 말벗이 됐다.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실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씨와의 사이에 4살난 딸 '아리랑'과 생후 9개월된 아들이 있다. 아리랑은 지금도 아빠를 찾는다고 한다. 굴뚝을 잘 모르는 딸은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다'고 말한다. '아빠가 언제 내려오냐'고 할 때가 가장 가슴 아프다. '농성'. '집회'라는 말을 한국에서 처음 들어봤다고 한다.

생후 6개월된 아들을 돌봐오던 남편 조씨는 굴뚝농성에 들어가기 며칠 전 '당분간 아이를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고 한다. 결혼 전 남편이 복직투쟁을 얘기할 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도 이만큼 처절한 것인지는 몰랐다고 고개를 떨군다.

무엇보다 농성자 가족들을 애태우는 건 회사측의 태도 때문. 그나마 있던 침낭도 눈비 속에 다 젖었지만 회사는 옷가지는 물론 핸드폰 배터리를 올려달라는 가족들의 요구마저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음식물 반입도 가족들 항의에 의해 굴뚝농성에 들어간 뒤 5일째만에 처음 이뤄졌다.

"올라가는 밥 속까지 젓가락으로 뒤져"

이재현씨의 부인 정미례씨는 "복직협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다"며 "그동안 가족이 해온 일이라고는 물이나 밥을 올려줄 수 있게 해 달라고 투쟁해온 것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정씨는 "올라가는 밥 속까지 젓가락으로 뒤졌다"며 "개밥도 아니고 감히 농성자 가족들한테 할 수 있는 행위냐"고 말했다.

대책위원회 대표인 석일(47) 목사는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과 통화만큼은 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며 "막다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석 목사는 "폭설과 한파를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며 "회사의 처사를 보면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말한다.

죽음을 넘나든 농성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침낭등 몇 가지 물품들에 의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노상농성이나 다름없다. 농성장소인 굴뚝은 원형으로 돼 있어 반듯이 눕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다. 23일부터는 음식물 반입도 거부하고 있다. 가족들은 "50M 높이에 매트리스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한다. / 이국언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