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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인레 호수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낚는 어부.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인레 호수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낚는 어부. ⓒ 김남희

인레 호수(Inle lake)로 떠나는 날. 버스 출발 시간은 아침 7시인데 새벽부터 누군가 거칠게 방문을 두드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4시.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여니 트럭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며 재촉을 한다. 아직 짐도 안 쌌는데 배낭을 집어 들며 마구잡이로 짐을 나르려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 “분명히 5시 반 픽업이라고 해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니 출발 시간이 바뀌었다는 말 한마디뿐이다. 결국 세수도 못 하고, 짐들은 배낭에 되는 대로 쑤셔 넣고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픽업 트럭에 올라타니 사위는 아직 어둡다. 너무 황당해서 누군가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은데 말이 통할 듯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말이 통한다한들 무얼 할 수 있을까?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내가 살아온 방식과 상식에 기대어 “왜?”라고 묻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식으로 다가오는 이 나라들에서 따지고, 권리를 주장하고, 목청을 높이는 일은 체력만 낭비하는 소모전으로 끝나기가 일쑤다. 매사에 따지기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 분개하고, 남 탓하기 좋아하던 나로서는 사람 되는 수업 한 번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이곳저곳 들러 잠이 덜 깬 사람들을 더 싣는 사이에 날이 밝아온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20분. 7시 출발이라던 버스는 5시 반 정각에 시동을 건다.

방망이를 두드려가며 빨래하고 있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손자.
방망이를 두드려가며 빨래하고 있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손자. ⓒ 김남희

냥쉐에서 세상과 안녕할 뻔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서두른 탓에 자리에 앉자마자 병든 닭처럼 졸기 시작한다. 인레를 한시간쯤 남겨두고 갑자기 버스가 서더니 한참이 지나도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목을 빼 창밖을 내다보니 엄청난 행렬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내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니 노스님의 영결식이란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화려하게 단장하고 상여와 각종 마차 행렬을 따른다. 영결식이라기보다는 축제 같은 모습이다. 행렬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다가 버스로 돌아오니 버스 차장이 애타게 나를 찾아 주변을 헤매는 중이다.

인레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이곳에서 냥쉐(Nyaungshwe)마을까지는 다시 픽업 트럭이나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대기하고 있던 택시 기사들이 “냥쉐!”를 외치며 호객행위에 나선다. 부르는 값은 3000쳇(한화 3500원).

“너무 비싸요. 픽업 트럭 타고 갈래요.”
“픽업은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한참 기다려야 하고, 가는데 시간도 많이 걸려. 택시 타고 가지.”
“저,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아요. 그냥 기다릴래요.”

짐을 내려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장기전 태세로 돌입하니 착하게 생긴 총각이 500쳇까지 가격을 내린다. 택시에 올라타고 5분쯤 달렸을까, 엄청난 굉음과 더불어 몸이 흔들리는 충격에 졸다가 번쩍 깬 나. 중앙선을 넘어-사실 중앙선은 없다!- 마주 오던 트럭과 우리 차가 부딪히는 바람에 차가 선 것이다. 거의 이 세상과 안녕할 뻔한 순간이었다.

인레로 가던 길에 만난 노스님의 영결식 장면.
인레로 가던 길에 만난 노스님의 영결식 장면. ⓒ 김남희
다행히 내가 탄 쪽 문이 심하게 찌그러지고, 차가 멈추는 정도로 사고는 그쳤고 다친 사람은 없다. 차에서 내린 운전사는 차를 고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지만 고집 센 황소처럼 발을 바닥에 붙인 차는 꼼짝 않는다. 한참을 만지고, 열어보고, 들여다보며 궁리하던 젊은 운전사. 부속품을 구하러 시내에 다녀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별 수 없이 가방에서 책을 꺼내 길가에 주저앉는다.

1시간이 넘어서야 빈손으로 돌아온 운전사가 자신이 타고 온 다른 차를 가리키며 이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라고 한다. 택시비를 내미니 “미안해요. 결국 픽업 트럭 타고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렸네”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다.

택시를 갈아타고 냥쉐 마을 아쿠아리우스 인에 도착하니 양곤에서 만났던 니콜라, 에바, 바바라, 마티스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은 문 연 지 두달밖에 안 됐지만 깨끗한 시설과 친절함으로 입소문을 타 이미 유명해진 곳이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이 딸린 깨끗한 방이 4불이고, 정원에는 해먹(그물침대)과 그네 의자가 걸려 있고, 탁구대도 놓여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애들과 어울려 탁구 한 게임을 치고 다같이 네 자매 식당(Four Sisters Inn)으로 몰려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하루가 간다.

남판 시장 앞에 대어진 수많은 배들.
남판 시장 앞에 대어진 수많은 배들. ⓒ 김남희

호수에서 모든 것을 얻는 인레 사람들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가니 훌륭한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토스트와 과일주스와 오믈렛, 차 미얀마 전통 스낵 미모. 과일 접시에는 바나나, 파인애플, 배, 망고, 구아바가 놓여 있다. 숙박비에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미얀마에서 받아보는 가장 훌륭한 아침상차림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 주변을 돌아본다. 선착장 부근의 절 마당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주변을 걷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배를 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엔진 없는 배로 주변 마을을 돌아보는 데 두 시간에 700쳇(800원)이란다. 흥정할 일도 없는 가격이다.

작은 조각배에 올라타니 배는 좁은 수로 사이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가고, 태양은 숨바꼭질하듯 잠시 고개를 내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곳 인레는 발로 노를 젓는 사공들이 유명하다더니 과연 마치욘 아줌마도 한 손으로 담배를 피며 동시에 발로 노를 젓는 놀라운 기술을 보여준다.

물길 양쪽으로는 나무로 지은 판잣집들, 집 앞에는 낚시하는 남자들과 목욕하는 여자들이 보인다. 낚시하는 사람들 옆으로 다가가 들여다보니 옆에 놓인 양동이 안에 손바닥만한 작은 물고기 너댓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낚싯대라고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나뭇가지에 실을 매달고 지렁이를 끼운 게 전부다.

팔뚝 길이만 한 나무 낚싯대 하나 손에 들고 하염없이 물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을 보자니 크기와 색깔이 다양한 여러 개의 낚싯대를 걸쳐놓고 낚시하는 우리 나라 강태공들이 생각난다.

남판 장에 나온 파우족 여인들.
남판 장에 나온 파우족 여인들. ⓒ 김남희

한국여자 못지 않은 신식 미얀마 여자 '마치욘'

“여보, 오늘 저녁 반찬이 없네.” 부인이 부엌에서 소리치자 “그래? 잠깐만 기다려. 고기나 몇 마리 낚아오지” 남편이 대답한다.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낚은 고기를 밥상으로 들고 가는 남편 모습을 상상해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물가의 작은 절과 작은 학교를 둘러보고, 가내수공업으로 담배를 마는 곳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 마치욘 아줌마가 자기 집으로 가자며 이끈다. 아줌마 집에 들러 과일과 차를 마시며 잠시 쉰다. 올해 마흔 살인 마치욘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결혼을 안 했냐고 물으니 “결혼하면 평생 집안일만 하고 애나 키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삶이 싫어”라고 답한다. 게다가 무능력하고 게으른 남자를 만나면 삶이 얼마나 꼬이겠느냐며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이 일이 좋다고 한다. 미얀마에서 보기 드문 아줌마다.

마치욘의 집을 나와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정원의 그물 침대에 누워 까뮈의 <페스트>를 읽는다. 몇 줄 읽다가 잠이 들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이마를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아이들과 어울려 탁구를 치고, 주인 아저씨 내외와 저녁을 먹는다. 이렇게 단순하고 게으른 삶이 어디 있을까. 행복하다!

남판 장에서 값어치를 알 수 없는(!)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
남판 장에서 값어치를 알 수 없는(!)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 ⓒ 김남희
11km의 너비에 22km의 길이인 인레 호수 주변으로는 토마토와 마늘, 양파, 콩 등을 경작하는 17개의 마을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제법 규모가 큰 마을에서는 돌아가며 7일장이 서는데 오늘은 남판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다.

일출을 보고 장에 가겠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바바라, 마티스와 배를 타고 호수로 간다. 호수의 한 가운데 정박한 작은 배에 앉아 있는 지금, 하늘은 아직 구름에 덮여있다. 고물에 물결이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힘겹게 산등성이를 넘어서고 있는 햇살의 기운이 조금씩 거세지는 이른 새벽.

호수 양편을 가로막은 산들로 인해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해를 볼 수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 신선한 새벽공기와 고즈넉함이 좋기만 하다. 일출을 본 후 바로 남판 시장으로 가니 이미 사람들이 몰고 온 배로 선착장이 가득 찼다. 배와 배 사이를 뚫고 나가 배를 대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지도 않을 물건을 흥정하며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배를 타고 대장간으로 이동. 이어지는 코스는 실크 직조공장과 담배공장을 지나 은공예방, 우산 공장 찍고, 그 사이 작은 절 하나와 수상 정원을 거치며 끝도 없이 계속된다. 결국 규모와 품목만 다를 뿐 계속되는 ‘쇼핑 유도 관광’이다.

실크천을 직조하는 공장에서 실을 감고 있는 남자.
실크천을 직조하는 공장에서 실을 감고 있는 남자. ⓒ 김남희

카렌족 여자들 목을 늘리는 건 '돈'

십여 군데를 다 둘러보니 오후 두 시. 숙소로 돌아와 한숨 자고 난 후 주인 아저씨께 카렌족들이 사는 마을이 어디냐고 물으니 이곳에서 가깝다고 한다.

미얀마의 소수부족인 카렌족은 어릴 때부터 목에 거는 목걸이의 무게로 인해 늘어난 긴 목의 여인들로 유명하다. 숙소에서 일하는 직원인 쉔민을 따라 나서니 뜻밖에도 마을 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긴 목을 가진 카렌족 여인 다섯명이 우리 앞에 와서 서더니 어색한 포즈를 취한다.

민속촌처럼 만들어진 큰 마을에서 자유롭게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산 깊은 곳에 산다는 이 부족들 중 다섯 명의 여인을 이곳으로 데려와 집과 음식을 제공하고,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게 하는 대신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에 한단다. 나가서 돌아다니면 공짜로 사진이 찍히니까!

이들이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이 곳에 머물면서 관광객들이 오면 포즈를 취하고, 몇 가지 기념품을 파는 일이 전부다. 이 모든 끔찍한 일을 지휘한 주인공은 이곳에서 가장 큰 호텔을 소유한 중국인이란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잔인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걸까? 자유를 상납한 대신 얻는 세 끼의 밥에 이들이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체념이 담긴 저토록 슬픈 눈을 보이진 않을 텐데….

게다가 함께 온 스위스인 페터의 말에 의하면 저 무거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목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어깨뼈가 눌려 내려앉아 상대적으로 목이 길어 보이는 거라고 한다. 또 목걸이를 빼면 목뼈가 부러지기 십상이어서 나중에는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다고 한다. 일인당 3$의 입장료를 내고 이곳에 들어섰던 페터와 나는 동물원에 온 듯한 슬픔과 죄의식을 안고 돌아와야 했다.

어린 비구승들이 탁발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마을을 돌며 탁발하는 스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린 비구승들이 탁발을 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마을을 돌며 탁발하는 스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김남희

깔로로 떠나는 트럭을 놓치고 인레에 눌러앉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는 정적 사이로 조금씩 스며든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듣는 빗소리가 정겹다. 집 떠나와 이런 편안함을 느낀 게 얼마만인가.

오늘은 깔로로 떠나는 날인데 떠나기가 싫어진다. 푸짐한 아침을 먹고, 거실에 모여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비 그친 후에 또 탁구를 치고, 점심까지 얻어먹고 난 후에야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꾸린다.

주인 사일롬이 차로 픽업 트럭 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 픽업을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와 숙소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놀라운 건 매일 그날의 투숙객 명단과 수입 액수 등을 적은 똑같은 8장의 서류를 작성해 관청과 이민국과 관광국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단다. 경찰서에서 불시에 방문해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투숙객수를 속인다거나 해서 세금을 횡령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단다.

사일롬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픽업 트럭에 올라탄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고, 활짝 웃어주고, 먹을거리를 나눠준다. 오늘이 보름이라 절마다 꽃을 바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더니 이 트럭도 절만 보이면 차를 세운다. 차가 서면 사람들이 다 내려서 잠깐씩 예불을 드리고 나온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내려 부처님께 합장을 하고 잠시 앉았다 나오는 일을 반복한다. 결국 시간을 많이 지체해 깔로행 버스를 타는 곳에 내렸을 때는 막차 시간 5분전이다. 하지만 버스 정거장 앞에서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도 차가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물어보니 이미 다 끊겼다고 한다. 결국 다시 픽업 트럭을 타고 냥쉐로 돌아온다. 떠날 때 주인 아저씨께 “가까운 날에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래요"라고 말하고 떠났는데 그게 좀 일찍 실현된 셈이다.

담배를 말고 있는 어린 소녀. 미얀마의 어린이 노동 착취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담배를 말고 있는 어린 소녀. 미얀마의 어린이 노동 착취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 김남희
다시 돌아온 나를 보더니 숙소의 아이들과 사일롬이 내가 했던 그 말을 상기시키며 웃는다. 짐 풀고, 다시 탁구 치고, 네 자매 식당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이곳에 온 이후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주인 아저씨에게 공짜로 얻어먹어서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내가 여러 사람의 저녁거리를 사 온 거다.

이곳 인레는 주민의 대부분이 샨 족인데 샨 족의 음식은 한국 음식과 비슷한 것들이 많아 입맛이 무섭게 살아난다. 큰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먹는 저녁밥의 풍성함. 또 두 그릇을 비웠다!

다음날은 숙소에서 일하는 본조를 가이드로 트레킹에 나섰다. 감기 때문인지 열이 올라 드러누워 있는 나를 본 사일롬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라며 일부러 본조를 붙여준 거다.

길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Hello!"를 외치며 다가와 나팔꽃을 한 송이씩 건네준다. 나팔꽃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한송이를 건네주고 다시 꺾어와 또 건네주는 아이들 덕에 내 손은 순식간에 한다발의 연보라색 나팔꽃으로 가득 찼다. 외국인에게 꽃을 꺾어 건네는 이 어린 마음들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도 내게는 아무 것도 없다. 늘 손쉽게 물질적인 보상만을 생각하는 내 마음의 가벼움이 부끄럽다.

한 시간 남짓 질퍽거리는 흙길을 걸으니 타인 동굴 암자가 나온다. 명상 동굴이라는 이곳에는 한 노스님이 머무르고 계시는데 본조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앉아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사이 나는 동굴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동굴 안의 부처님께 어린 꼬마들이 건네준 나팔꽃을 바친다. 꽃은 그새 시들어 있다. 젊음도, 사랑도, 우리의 생명도 이렇듯 쉽게 사그라져 가겠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이 찰나적인 피어남과 시들어감이 새삼 서글프다.

집 앞에서 호숫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하는 여인들.
집 앞에서 호숫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하는 여인들. ⓒ 김남희

가난에 쫓겨 고지대로 올라가는 소수부족

동굴을 나와 산에 오르니 하늘과 경계를 지운 채 넘실거리는 인레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소수부족 파우족이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이다.

수많은 부족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동남아에서는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부족들이 모여 산다. 파우족 역시 호수 주변의 산등성이에 집을 짓고 빈약한 밭작물로 가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본조가 파우 마을 아이들에게 길을 물은 후 어디선가 사들고 온 과자를 나눠준다. 흙투성이 옷자락을 힘껏 벌려 과자를 받아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괜히 눈물겹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본조가 가방 속에 넣어온 바나나 몇 송이를 꺼내 볕 바른 둔덕에 앉아 먹는다. 늘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조용조용 걸어 다니는 본조는 숙소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다. 숙소에 머물 때는 늘 영어를 하는 사일롬이나 쉔민과 어울리고는 했기에 본조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햇빛이 내리쪼이거나 비가 내리면 우산을 건네주고,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 주고, 못 하는 영어로나마 뭔가 얘기해 주려고 애쓰는 본조의 마음이 참 고맙다. 네 시간 남짓 트레킹을 하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열은 내리고 몸은 한결 가볍다.

인레에 머무르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집에서 머무는 것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나갔다. 호수를 낀 마을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에 기댄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처럼 보살펴준 사일롬과 본조, 쉔민의 마음 씀씀이에 빚 진 것일 거다.

강제적으로 바깥 세상과 격리된 탓에 전통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아직은 물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누는 기준이 아닌 이곳 미얀마가 언제까지 오래된 삶의 방식을 지켜갈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이 얼굴들이 오래도록 변치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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