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는 농부와 어린 딸.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있는 농부와 어린 딸. ⓒ 김남희

하늘은 푸르게 개었다.

인레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서 핀다야로 향한다. 사일롬이 운전하는 차에는 미국인 부부 토마스, 테미가 함께 타고 있다. 핀다야로 가는 길은 붉은 흙과 초록색 밭이 푸른 하늘과 선명한 색의 대조를 이루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사일롬은 운전하는 틈틈이 이것저것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곳곳에 차를 세워 사진을 찍게 한다. 아웅반 마을의 시장도 둘러보고, 우산 만드는 곳도 구경도 한 후, 마침내 핀다야 동굴로 간다.

언덕 위 숲 속에 자리잡은 동굴은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동굴 내부는 넓고도 길다. 8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어 미얀마 사람들에게 신성시 여겨지는 이 동굴은 그 규모와 시설이 놀랍다.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는 바깥의 찜통 더위를 잊게 해 밖으로 나가기가 꺼려진다. 천천히 동굴을 돌아본 후 바깥으로 나오니 금세 땀이 솟는다. 핀다야에서 돌아오는 길, 하늘가에는 무지개가 선명하게 걸려있다.

사일롬은 나를 깔로에 내려주고 돌아간다. 골든 깔로 여관에 단 하나 남은 창고 같은 방을 얻고 짐을 푼다.

핀다야 가는 길의 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
핀다야 가는 길의 들판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 ⓒ 김남희
핀다야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핀다야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 김남희

아침에 눈을 떠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새파랗게 개었다. 그 파란 하늘을 보는 순간 서둘러 일어나 내려왔다. 맑고 서늘한 공기가 마치 한국의 초가을 날씨 같다.

타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에 주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주인 할아버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놀라운 말씀을 해주신다.

멀리 보이는 언덕의 나무 건물을 가리키며 자기가 어렸을 때 저 건물이 일본군의 부대가 주둔하던 곳이었고, 그곳에는 한국인 여성들이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단다. 십대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라 선명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 우연의 일치인가.

미얀마에 들어온 이후 나는 재미작가 이창래의 “A Gesture Life"를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국계 일본인 구로하타가 미얀마의 양곤에서 의무관으로 복무하다 한국에서 끌려온 위안부 K를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곳 깔로에 일본인 부대가 있었고, 한국인 위안부들이 있었다니….

한때 이곳의 시장을 지냈다는 이 할아버지가 말한 ‘한국인 간호사들’이란 분명히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온 '정신대'일 것이다.

서둘러 식대를 치르고 할아버지가 알려준, 이제는 중학교로 변한 목조건물을 찾아 나섰다. 몇 번의 길을 묻는 멈춤 끝에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아이들과 똑같이 초록색 치마를 유니폼으로 입은 여선생들 몇이서 양철 도시락을 들고 퇴근하고 있다.

일본인 부대와 '한국인 간호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학교 건물.
일본인 부대와 '한국인 간호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학교 건물. ⓒ 김남희
교복을 입고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아이들.
교복을 입고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아이들. ⓒ 김남희

교정에 들어서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학교 안 정자에 올라가 비를 피하며 바로 눈앞의 나무 건물을 바라본다. 지상으로부터 1미터쯤의 공간을 띄운 채 세워진 단층 짜리 목조건물은 속절없이 비에 젖고 있다.

일본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이 60년 전 그대로의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자리가 한 개인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에 있어 그토록 지독한 비극이 일어났던 현장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건물의 나무틀 곳곳은 이끼로 덮여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아이들은 비가 내리는 중에도 운동장 곳곳을 뛰어다니거나 두서넛씩 둘러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빗줄기가 그치면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리라. 그곳에서 부디 이 역사의 현장에 대해 뭔가를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들어간 학교는 적막하다. 일자형의 목조건물 옆으로 콘크리트 건물이 ㄱ자형으로 붙어 있다. 아쉽게도 교실은 전부 문이 잠겼다. 정적이 감도는 텅 빈 복도에 서서 나는 괜히 코끝이 매워져 소설 속 하타와 ‘끝에’의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려 본다.

비 그친 후 초목은 더 푸르러지고, 남아있던 아이들마저 떠난 교정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 학교를 나와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이 건물이 언제 세워진 것인지,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부대를 아는지 물어보지만 그들의 대답은 신통치 않다. 그저 건물이 50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 정도다.

누군가를 통해 이곳에 머물던 일본군 부대와 한국인 여성들에 관해 더 들을 수 있기를 바랬는데…. 2차 대전의 끝 무렵,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

나팔꽃, 분꽃과 구절초가 피어 있는 길을 걸어 내려온다.

어느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밝은 빛을 드리운다. 우리 역사에 드리운 검은 구름은 언제쯤 가실지 문득 답답해진다.

노상에서 꽃을 다듬고 있는 상인.
노상에서 꽃을 다듬고 있는 상인. ⓒ 김남희
8천여개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미얀마인들에게 신성시 되는 핀다야 동굴.
8천여개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모셔져 미얀마인들에게 신성시 되는 핀다야 동굴. ⓒ 김남희

아침 일찍 울리는 맑은 종소리에 잠이 깼다.

이슬람 사원과 침례교회와 불교사원이 공존하는 이곳이라 어느 곳에서 치는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소리는 맑게 퍼져간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양군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자꾸 앞서간다.

16시간의 버스 여행은 길고도 지루했다. 새벽녘에 칠흑처럼 어두운 도로변에 몸을 숨기고 볼일 볼 만한 곳을 찾다가 늪에 빠졌다. 다리 전체가 끈끈한 진흙투성이다. 버스 안에 남은 물을 다 동원해 들이부어도 엉겨붙은 진흙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여겨진다. 문득 드는 생각.

아,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다!

아침에 양군에 도착한 후 숙소를 정하고 시내로 나간다.

내일이 현충일이라 대규모 시위가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도는 양군 시내는 어수선하다. 미얀마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사원 쉐다곤 파고다를 둘러본 후 국립묘지로 간다. 우리 역사의 또 다른 비극인 ‘아웅산 국립묘지 폭발 사건’의 현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입구에 서 있던 무장을 한 군인들이 나를 가로막는다. 오늘은 들어갈 수가 없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한다. 그 폭발 사건 이후 이곳은 일년에 단 한 차례 현충일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내가 매고 있는 사진기를 가리키며 사진 촬영도 절대 안 된다며 눈을 부라린다. 땡볕 아래 몇 번을 물어가며 힘겹게 찾아왔는데 결국 돌아가야 하다니…. 결국 위협적인 군인들의 태도에 질려 돌아 나오고 만다.

양군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국립묘지에 참배하며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리의 통일을 염원하며 보내고 싶었는데….

이제 내일이면 양곤을 떠나 다시 태국으로 향한다.

타나카를 바른 여인들이 수줍게 웃고, 구장나무 줄기를 씹는 사람들이 새카만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나라.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 아래 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땅. 총을 든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국립묘지 입구를 다시 돌아보며 기원한다.

이 땅에 민주화의 봄이 빠른 걸음으로 들이닥치기를….

일가친척을 전부 싣고 달리는(?) 경운기
일가친척을 전부 싣고 달리는(?) 경운기 ⓒ 김남희
아주머니가 우리의 총각김치와 똑같이 생긴 반찬을 만들고 있다.
아주머니가 우리의 총각김치와 똑같이 생긴 반찬을 만들고 있다. ⓒ 김남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