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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와디 강에는 알록달록한 돛을 단 배들이 지나다닌다. 밍군 가는 길.
이라와디 강에는 알록달록한 돛을 단 배들이 지나다닌다. 밍군 가는 길. ⓒ 김남희

오늘은 밍군(Mingoon)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다. 이라와디강 서쪽 상류에 위치한 밍군은 만달레이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가야 한다. 보타파야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불탑을 조성하고자 했지만 완성을 보기 전에 죽는 바람에 미완성의 불탑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작은 여객선에는 서양인 관광객들만 가득 찼다. 강 저쪽으로는 화려한 색깔의 돛을 단 배들이 천천히 지나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은 뱃전에 와서 부딪히며 따갑게 튀어 오른다.

선착장에 내려 곧게 난 길을 따라 걸으니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밍군 파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높이 150m의 세계 최고 높이의 불탑이 되었을 밍군 파야는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압도적이다.

정면에 작은 문이 있어 들어가 보니 불상을 모셔놓았다. 허물어진 탑 우측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탑의 꼭대기다. 이곳에서는 강변을 끼고 늘어선 집들과 하얀 칠을 한 사원과 사원의 황금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미완성 불탑

공동 우물가로 목욕을 하기 위해 나온 모자(왼쪽). 교복을 입고 타나카를 바른 여고생들의 웃음이 곱다. 밍군.
공동 우물가로 목욕을 하기 위해 나온 모자(왼쪽). 교복을 입고 타나카를 바른 여고생들의 웃음이 곱다. 밍군. ⓒ 김남희
탑에서 내려와 천천히 걸으면서 마을을 돌아본다. 길옆으로는 손님을 실은 우마차가 지나가고,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선 마을은 평화롭다. 시간이 과거 60년대의 한 지점에서 멈춘 듯 모든 것이 적당히 낡고 오래되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커서 무게만 90톤이 나간다는 밍군 벨도 둘러본다. 신븀 사원에서 만난 한 무리의 젊은 스님들은 외국인인 내게 자꾸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니, 스님 맞아? 속세의 아녀자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말이야?’웃음이 나오지만 그 와중에도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머뭇거리는 기색이 완연해 밉지가 않다.

결국 함께 사진을 찍고, 나도 스님들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와 밍군 탑 옆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쉰다. 나무 위에서 쉬던 아주머니들이 위 쪽 그늘로 올라오라며 자리를 만들어준다.

온 몸에 끈적이며 달라붙는 아열대의 더위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어디 에어컨 나오는 카페 없나?' 절로 에어컨과 팥빙수가 생각나지만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지. 열병 환자처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쉬다가 다시 배를 타고 만달레이로 돌아온다.

짐도 싣고, 손님도 싣는 밍군의 우마차. 시속 5km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짐도 싣고, 손님도 싣는 밍군의 우마차. 시속 5km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한다. ⓒ 김남희
오후에는 같은 숙소에 머무는 스웨덴 커플 올드리카, 마이클과 만달레이 언덕에 올라간다. 픽업 트럭을 타고 가는 내내 마이클이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노골적으로 자랑한다.

스웨덴에서는 출산 유급휴가가 여성 18개월, 남자 3개월이란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당연히 전부 무상 의무교육인데 학교 급식비까지 일체 국가 부담이다. 대학은 4% 장기 저리 융자를 해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융자를 받아 대학을 다니고 취직한 후에 갚아나간다고 한다.

병원 치료는 전부 무료, 이빨치료는 년 21일 한도 내에서 무료. 약값은 300불 이상이 나올 경우 전액 국가 부담.

이렇게 한 가지씩 자랑하고서는 꼭 "한국은?" 하고 되묻는다. 아무리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해도 사회보장 제도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구축된 북유럽에서 온 마이클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단 이렇게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세금도 높다. 평균 34%를 내고, 연수입이 5만5000달러를 넘는 경우 수입의 45%가 세금으로 나간다고 한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강변 뒤로 유베인 다리가 보인다. 아마라푸라.
배들이 정박해 있는 강변 뒤로 유베인 다리가 보인다. 아마라푸라. ⓒ 김남희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을 많이 버는 전문직일수록 갖은 수단을 다해 최소한의 세금을 내고, 얄팍한 월급장이만 투명한 유리지갑인 우리나라의 처지에 새삼 한숨이 난다. 에릭슨에 근무하는 마이클은 한국, 일본의 회사들과 함께 일을 한 경력이 길다.

그래서 한국 요리도 좋아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 그가 못 참아 하는 한국 문화는 저녁 식사가 2차, 3차로 계속 이어지고, 마지막은 꼭 노래방으로 몰려가 본인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한 채 노래를 시키고야 마는 문화란다.

아, 정말 대단한 한국인들이다. 외국 회사와 거래하면서도 한국의 접대 문화, 음주 문화를 이렇게 전파시키다니….

만달레이 언덕에서 만달레이 대학 영문과 학생 세 명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 중 유일한 여학생이 청바지를 입고, 커트머리를 하고 있다. 미얀마에 온 후 처음 보는 청바지 입은 여학생이다.

내가 "미얀마에서 청바지 입은 여자는 처음 본다”고 말했더니 옆의 남학생들이 얘는 미얀마 여자가 아니라며 웃는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엔 질색을 하셨는데 이제는 그냥 둔다며 이 옷이 편한 걸 어떡하냐고 웃으며 반문한다.

'외국인 현장 학습' 테스트

쪽배를 탄 사공이 강을 둘러보고 있다. 아마라푸라.
쪽배를 탄 사공이 강을 둘러보고 있다. 아마라푸라. ⓒ 김남희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는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따라오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이름이 뭐냐, 가족은 몇 명이냐, 결혼했느냐, 언제 미얀마에 왔느냐, 미얀마를 좋아하느냐,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 장래 희망이 뭐냐 등등….

"What is your ambition?"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정말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곤혹스러웠다. 외운 문장을 실습하는 듯 똑같은 억양과 반복되는 문장, 공격적인 질문 태도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내 대답이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못 알아듣는 눈치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질문이 마침내는 성가셔지고 내려오는 길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멀리서 바라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보낼 뿐, 구제해 줄 생각은 않는 마이클과 올드리카.

나중에 알고 보니 만달레이 언덕은 외국인을 만나 영어연습을 하기 위해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란다. 만달레이 여고생들의 ‘외국인 현장 학습’ 테스트를 가까스로 통과한 다음날, 마이클, 올드리카와 아마라푸라(Amarapura)로 간다.

아마라푸라로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보다 더 예쁜, 티크로 만든 나무다리를 보기 위해서다. 픽업 트럭으로 40분쯤 달리니 아마라푸라다.

바로 강변으로 가 유베인 다리를 둘러본다. 1.2km의 긴 다리가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차는 못 다니고, 자전거도 웬만해서는 끌고 지나가야 한다. 다리 위 곳곳에는 간식거리를 팔거나 낚시를 하고, 의자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다리 하나만으로도 아마라푸라는 참 어여쁜 곳이다. 다리가 바라보이는 강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만달레이로 돌아오는 픽업에 오른다.

강변의 물 좋고(?) 전망 좋은 카페. 아마라푸라.
강변의 물 좋고(?) 전망 좋은 카페. 아마라푸라. ⓒ 김남희
숙소로 돌아와 이른 잠자리에 든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45분.어제 미리 예약해놓은 릭샤를 타고 마하무늬 파고다로 간다. 부처님 세안식을 보기 위해서다.

언젠가 이곳 대웅전의 불상 얼굴이 검게 변한 후 큰 재앙이 일어났단다. 그 이후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부처님 얼굴을 씻기는 세안식을 거행하는 데 그 의식이 볼 만하다고 해 새벽잠을 설쳐 가며 나서는 길이다.

이른 새벽인데도 불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태국과 대만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미얀마 사람들이다. 세안식의 절차는 꽤나 복잡해 보인다.

먼저 전통의상을 입은 일군의 사람들이 제단을 닦고 치우며 준비를 해 놓은 후, 미리 신도들로부터 받은 수건을 한쪽에 쌓아놓는다. 그후 세안식을 거행할 스님이 제단으로 올라오면 수건을 한 장씩 건네준다.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 아마라푸라.
자전거를 끌고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들. 아마라푸라. ⓒ 김남희
그 수건을 받아 스님이 부처님 얼굴을 닦고 한쪽으로 치우면, 다시 다른 수건을 건네준다. 얼굴을 닦는 스님 옆으로는 두 사람이 커다란 부채를 들고 세안식 내내 스님에게 부채질을 해준다.

마하무늬 사원에서 매일 새벽 거행되는 부처님 세안식. 만달레이.
마하무늬 사원에서 매일 새벽 거행되는 부처님 세안식. 만달레이. ⓒ 김남희
형식과 격식을 갖춰 매일 새벽마다 진행되는 세안식. 새벽부터 찬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예불을 드리고, 자기의 수건을 바쳐 그 수건이 부처님 얼굴을 닦는데 쓰이는 영광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불심 지극한 미얀마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이 의식이 조금도 성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 역시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을 잊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욕망과 어리석은 마음과 화내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자기를 구원하고 중생을 구원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돌이켜볼 때 이 의식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직 법에 의지해 법만을 따르라고 했던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게 아닐까? 하긴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고, 부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이 세상이 이런 아수라일 리가 없겠지.

절을 나오며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스름한 미명 속에 붉은 장삼을 수한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기 위해 공양그릇을 들고 길게 늘어서 있다.
부디 성불하기를….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중얼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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