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생들의 등교거부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청도 이서고 한 교실. 학생들이 없는 교실엔 참고서만 나뒹굴고 있었다
학생들의 등교거부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청도 이서고 한 교실. 학생들이 없는 교실엔 참고서만 나뒹굴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경북 청도 이서고등학교(청도군 이서면 소재). 지난 22일 오후, 평소엔 학생들의 하교길 웃음으로 소란스러웠을 학교 교정은 황량했다. 학생들의 모습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운동장 귀퉁이에서 대형 굴삭기가 '드드더~' 요란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학교 건물 2층에 마련된 방송실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학생들 10여명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방송실 한가운데 테이블 위로 학생들이 직접 만든 피켓이 놓여있었다. 피켓에는 '현 재단은 퇴진하라'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청도 이서고등학교 1·2학년 재학생 400여명은 지난 18일부터 등교거부에 돌입했다. 수능을 치른후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3학년을 포함한다면 이 학교 학생들 전원이 일주일째 등교를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3년째 겪는 학내 분규... 학생들 "더이상 못 참겠다"

이번 이서고 학생들의 등교거부는 3년 넘게 갈등을 겪고있는 학내사태에 대한 '더이상 못 참겠다'는 학생들의 입장 표명인 셈이다.

@ADTOP@
청도 이서고 학생들이 학교 내 방송실에서 26일 열리는 교육청 시위를 준비하며 모여 있다
청도 이서고 학생들이 학교 내 방송실에서 26일 열리는 교육청 시위를 준비하며 모여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청도 이서중·고 사태는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1월 이서중·고 구 재단이 현 재단으로 재단 변경 과정에서 '재단을 매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전교조 교사들과 재단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관련기사 참고)

그후 양측은 재단측이 지난해 1월 김은숙, 이선관 교사를 해임한 데 이어 지난 4월 박정홍 전교조 이서중고 분회장을 비롯한 교사 3명을 해임하고 3명에게 감봉 등 징계처분을 내리면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당시 징계에 대해 재단측은 해당 교사들이 '학생들을 선동하고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던 이서중·고 사태는 지난 6월 9일 재단과 교사측이 '해임 교사 복직' 등 총 11개항의 합의서 작성으로 화해 '무드'를 맞게 된다. 하지만 이서중·고의 학교 정상화를 바랐던 바람과는 달리 이서중·고 사태는 '합의서 이행'을 놓고 재단과 교사측의 마찰로 또다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학교 재단 "칼 들이댄 합의 무슨 의미있나?"


청도 이서중·고 사태가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6월 재단과 교사들 사이에 약속했던 합의사항 이행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재단이 '합의사항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전교조 교사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이서중고 정상화교사협의회 측은 "지난 6월 합의 이뤄진 후 11개 항목 중 약속이 지켜진 것은 복직 문제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상화교사협의회는 "재단의 성실한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했지만 재단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재단측을 비난했다.

결국 최근 교사들의 보충수업 거부로 사태가 악화되기에 이른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교사들의 보충수업 거부는 재단 이사장과 교사들간의 면담 과정에서 있었던 이사장의 발언이 화근이 됐다.

지난 11월말 재단 이사장인 서아무개씨는 교사들에게 지난 6월 합의에 대해 "(전교조 교사들이 재단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재단 측 한 관계자는 "사실 맞는 말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당시 상황으로서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강제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동안 재단측도 당시 합의를 나름대로 지키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의 등교거부 등에 대해 재단측은 "교사들이 배후 조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단 관계자는 "학생들이 '관선이사 파견' 같은 내용을 알기나 하냐"며 "교사들이 플래카드에 내거는 주장과 다른게 없다. 결국 교사들이 학생들을 배후 조종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생들과 교사들은 이러한 재단측의 주장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학생들은 "도대체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말만 듣고 따르는 기계로 보느냐"고 따졌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배후 조종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교사들만 치명타를 입을 것이 뻔한데 굳이 학생들을 선동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따졌다.

합의 이행 문제로 또다시...

결국 지난 11월부터는 재단측이 '목에 칼을 겨눈 채 작성된 합의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합의서 이행에 난색을 표명하자, 교사들은 지난 12일부터 '보충수업 거부'로 맞대응을 시작했다. 이서중·고 사태가 '제2의 파동'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젠 조용하던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3년동안 끌어왔던 학내 분규에 대해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 학생들의 '집단' 행동은 2학년 재학생이 학내 분규에 대한 학생들의 등교거부를 묻는 설문조사로 시작됐다.

당시 설문조사를 주도했던 이서고 2학년 전대일(17)군은 "다시 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이제는 더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날 설문조사를 시작하면서 문과반 학생들은 전원이 등교거부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전군은 "그동안 학교가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학생들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들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 같아 동참하는 분위기가 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18일부터 시작된 등교거부는 1·2학년 재학생들이 주도했지만, 이후 3학년 '선배'들도 후배들을 지원하게 된다. 3학년의 경우 학생회 간부들이 중심이 돼 후배들을 도와주기에 이른다.

학생회 간부인 3학년 김해숙(18)양은 "처음에는 후배들이 괜히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많아서 등교거부를 막았다"면서 "하지만 후배들이 등교거부를 결심하고 나서는 선배로서 후배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불안한 학교 생활 물려줄 수 없어"

@ADTOP_1@
ⓒ 오마이뉴스 이승욱
재학 기간 내내 학내 갈등을 지켜봐야 했던 김양은 "고 1때 학급 실장을 맡았는데 그때 학생회 간부들이 교장실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학교 정상화를 부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 이후 고등학교 생활 내내 학내 갈등으로 불안한 생활을 견뎌내야 했지만 이젠 더이상 후배들에게 그 생활을 물려 줄 순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서고 학생들은 재단과 전교조 교사들간의 갈등으로 비춰지면서 교사들에 대한 야속함도 있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김양은 "재단과 선생님들이 끼리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재단이든 선생님들이든 야속하게만 느껴졌다"며 "선생님들이 막상 보충수업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우리가 왜 이런 피해를 봐야 하냐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의 마음도 지난 6월 합의이후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재단과 그동안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재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2학년 학생회 간부인 전미영(17)양은 "학교의 문제를 알면 알수록 근본적인 원인이 재단측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재단측이 선생님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단이 약속한 거 왜 안지키나?"... '관선이사 파견' 해법

또 학생들은 "재단이 합의를 했으면 지켜야 하는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또다시 문제를 낳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겐 어떤 이해를 당부한 적도 없었다"고 재단측의 태도에 대해 꼬집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서고 학생들은 오히려 학생들이 등교거부를 하겠다고 하는데도 재단측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학생들을 무시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생들은 이서중·고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관선이사 파견'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현 재단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재학생 90%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등교거부에 돌입하자 대부분이 귀가하고 나머지 학생회 간부들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학생회 간부들은 포털사이트의 '카페'(http://cafe.daum.net/skyIso. '이서고 정상화를 위해')를 이용해 '현재 상황과 계획'들을 공지하고, 학생들은 회원으로 가입해 학교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쏟아낸다. 현재 이 카페의 회원수는 대략 480명 정도.

인터넷 '카페' 통해 의견 교환... 교육청 시위도

이서고 학생들은 등교거부와 '온라인' 활동뿐만 아니라 오늘(26일) 오후 2시 30분부터는 관할 기관인 경북도교육청 앞에서 '관선이사 파견'을 촉구하는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서고 학생들은 이번 시위에서 학생들의 참여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참여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과연 이서고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얼만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3년 넘게 끌어온 이서중·고 사태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관련
기사
[5월 보도] 청도 이서중고 사태, 새 국면 맞나



청도 이서고 재단퇴진요구 등교거부
/한창호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