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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검찰의 수배해제 방침이 발표되자 유영업 수배해제 모임 대표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수배자의 몸으로 지난 2월 '한총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모임'(이하 수배해제 모임)을 결성, 활동해온 유영업(28·제5기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 대표는 25일 검찰의 발표 소식을 듣고도 내내 멍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기쁜 소식인데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상식에서 무대에 올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이해가 안됐는데 이제야 알겠다"며 "누구보다 국민과 부모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이날 검찰이 발표한 한총련 수배자중 불구속 수사 대상자 79명에 속하지는 않는다. 97년에 목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같은 해 한총련 의장권한 대행으로서 '한총련 간부'를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대표는 "검찰이 79명을 제외한 학생들에게도 관용조치를 베풀겠다고 했고 이번 검찰의 조치를 전향적으로 평가해 경찰에 출석, 필요한 수사에 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잠을 푹 자고 싶고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께 내 손으로 진지를 지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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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영업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지난 2월 수배자의 몸으로 공개 사무실을 개소했다. 어떤 심정이었나?
"20대가 저물어가고 30대가 돼가는데도 해 가는 줄 모르고 수배생활을 계속했다. 내가 과연 우리나라 국민인지 의심마저 들었다. 이런 답답한 심정을 공개적으로 알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배자 친구들을 모았다."

- 수배해제 모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수배자들)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매해 수배되는 부당함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배생활의 고통을 깊이 있게 알리고 싶었다.

또한 공개적인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수배 생활 중 항상 숨어 있어야 했다. 그랬기에 국민들이 더 오해하고 편견을 가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취지로 '공개 건강검진' '인터넷 사이트 개설' '수배자 가족 공개 상봉 행사' 등을 기획했다."

- 본인도 불구속 수사 대상(79명)에 포함되나?
"아니다. 나는 97년 목포대 총학생회장이었고, 한총련 의장 권한대행을 지냈으니 핵심간부였다. 전원 불구속 수사가 아니어서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검찰에서 발표한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쁘다. 향후 논의 후 결정하겠지만 경찰에도 출석할 의향이 있다."

▲ 지난 4월 '한총련 정치수배해제'를 촉구하며 촛불시위에 참가한 유영업 대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강위원 선배가 출소하고 같이 일해보자고 권유했을 때다. 그때 나는 잠시 생각해보겠다며 고사했다가 이후 수배해제 모임을 개설하고 같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생각난다.

7년이란 수배생활이 긴 만큼 사연도 많다. 경찰에 거의 잡힐 뻔 하다가 도망쳐 나온 일, 밤새 껌껌한 숲을 헤치고 산을 넘어 엉망이 된 옷 때문에 아무 집에나 들어가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했던 일(그때 그 집에서는 흔쾌히 옷을 빌려줬다)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지난 99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아버지는 길을 걷다가 나처럼 생긴 젊은이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영업인가?'라며 멈칫 하시다가 사고를 당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실신하시고 중학교 3학년이던 동생이 집에 없는 내 대신 수술 동의서를 썼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때만큼 괴로운 적이 없었다."

- 어떤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은가?
"시민사회단체와 수배자 부모님들에게 감사한다. 또 우리 카페인 '보이지 않는 창살'(cafe.daum.net/nofree2003)에서 찬·반의 많은 의견을 내주신 국민들께 감사한다. 한총련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거나 편견이 있던 분들과의 대화가 참 소중했다."

- 현재 심경과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6∼7년만에 일어난 획기적인 발표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너무 긴 터널을 지나왔다. 이제서야 출구를 찾은 기분이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일단 잠을 푹 자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다. 가서 내 손으로 부모님의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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