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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가우디의 세계를 처음 엿본 것은 우연히 지나치게 된 람브라스 거리의 어느 골목에서였다. 거리 한쪽 구석에 무대 장식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곳을 지도를 보고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중교통수단 보다는 무턱대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행습관에 이미 길들여졌기 때문에 골목마다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다. '구엘저택' 역시 그렇게 발견한 곳이다.

람브라스 거리 한쪽 구석의 골목에 거대한 몸을 숨기고 있던 '구엘저택'은 가우디의 후원자이자 평생지기였던 '구엘 바시갈루피'의 의뢰로 신축된 건물이다. 198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외관은 까사바트요나 까사밀라처럼 요동치듯 물결치는 독특한 모양은 아니었다. 평범한 외관에 자칫 실망할수도 있으나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가우디의 천재적 예술감각에 놀라게 된다.

▲ 구엘저택
ⓒ 홍경선

먼저 포물선 모양의 입구에는 가우디의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새장식이 달려있다. 1층에는 마굿간으로 향하는 현관과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현관이 나란히 있으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1층 중앙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하면 두개의 큰 아치문이 나오는데 이 문들은 마치 조각을 해 놓은 듯한 기하학적인 격자무늬를 한 철재로 되어있다. 2층에는 거실과 응접실 그리고 커다란 홀이 있는데 이곳은 당시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음악가들의 데뷔장소였다고 한다. 3층에는 조그마한 사무용 방과 넓은 식당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중앙의 수직적 공간은 커다란 포물선 모양의 돔으로 채워져있고, 중앙 거실은 빛을 받아 앞뒤로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처럼 자유스러운 공간 활용과 기능적인 실내 인테리어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기에 때로는 궁전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 구엘저택의 입구장식
ⓒ 홍경선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가우디의 세계에 좀더 깊이있게 다가가기 위해 성가족성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가우디 탐방에 나선 것이다. 까딸루냐의 뜨거운 태양이 하늘 중간에 머물 때쯤 성가족 성당을 벗어나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공원에서 듬쁙 받은 채 그라시아 거리로 오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어버렸다.

바르셀로나의 Paseo de Gracia거리 43번지에는 뼈로 만든 집이라 불리는 '까사바트요'가 있다. 까사바트요(Casa Batllo : 바트요 저택)의 설계는 '요셉 바트요'가 가우디에게 바르셀로나 그라시아가에 위치한 그의 집을 완전 보수하는 것을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공상과학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건물의 외관은 가우디의 상상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 카사바트요
ⓒ 홍경선

건물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익룡이 유유히 떠다니는 짙푸른 바다와 같았다. 지붕의 기복있는 선은 용의 척추를 보는 듯했고 여러 색깔의 조각 타일과 돌들로 뒤덮인 중앙 전면은 거친 비늘과도 같았다. 특히 호박을 닮은 발코니에는 네 개의 독특한 기둥이 버티고 있는데 이는 해골의 뼈마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자연 친화적이었던 가우디에게 있어 인체의 뼈만큼이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리라.

또한 각 창문은 가우디가 직접 설치, 감독한 컬러 유리로 되어있는데 이는 햇빛에 반사되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빛을 띠고 있다. 이 창문은 여닫이 창인데 가운데 창살이 없어 한꺼번에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채광이 건물 내부로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으며 저택 안에 있는 사람은 건물 중앙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요동치듯 부드러운 외벽의 곡선과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창문은 뜨거운 태양이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묘사하고 있었다.

▲ 카사바트요의 발코니
ⓒ 홍경선

카사바트요에서 몇 불록 떨어지지 않은 곳엔 '까사밀라'가 있다. 가우디의 마지막 민간 건축물인 까사밀라(Casa Mila : 밀라저택)는 일종의 아파트로 1910년에 완성되었다. 여타 가우디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첫 눈에 물흐르듯 유연한 곡선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198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또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마치 출렁이는 바다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는 듯한 외관은 하얀 석회암과 특이한 기둥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밀라부부의 지시로 천평방미터가 넘는 거대한 공간에 주거용으로 지은 이 건물은 옥상까지 모두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출입구와 매표소가 있고 그 옆엔 커다란 서점이 있는데 이곳에는 가우디와 관련된 각종 서적과 새나 곤충, 해골 등 각기 개성있는 작품모형들로 가득했다. 이것들은 가우디의 흔적을 엿보려는 방문객들의 손길을 붙잡으며 그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건물 안에는 가우디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 한 무료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의자와 장롱, 식탁, 탁자와 같은 가구에서는 그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것이라 한다. 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인체구조에 바탕을 둔 것이 많은데 이는 평소 해부학에 남다른 괌심을 가졌었던 청년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라 한다. 독특하고 화려한 외관에만 충실한게 아니라 사용자에게 있어서도 편안함과 안락을 동시에 추구할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건물 내부의 벽은 배치의 자유로움을 주기위해 유선형으로 고안했다고 한다. 특히 이 벽들은 기복이 심한 부조형태를 띠고 있는데 각 방마다 햇빛이 들어와서 그런지 반사되는 모습이 상당히 다이나믹해보였다. 평범함을 싫어하는 그만의 스타일이 강조된 독특한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각 방의 문이나 창문에는 가우디 작품의 전매특허인 타일, 부서진 대리석, 깨진 병조각 등이 장식되어 있다. 특히 발코니의 난간은 가시덩굴처럼 생겼는데 이는 바디아 지방의 우수한 철 주물 장인들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일일이 세공한 것이라 한다.

▲ 카사밀라
ⓒ 홍경선

이들 두 저택은 세속적인 인간보다는 상상속의 요정들이 모여사는 것이 더 나을 듯 했다. 건물에서 풍겨나는 만화적인 이미지는 자연과 더불어 살던 그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베어있었다.

어느덧 무작정 찾아간 가우디의 건축물 탐방도 그 막을 내렸다. 해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까사밀라의 요동치는 물결이 마지막 햇빛에 반사되어 출렁거렸다. 유난히 부드러운 곡선이 많은 가우디의 작품들은 그렇게 보는 시간과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역사상 그 누구도 상상못할 작품들을 만들며 독창적인 세계를 이끌어온 안토니오 가우디. 천재를 시기해온 하늘의 질투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새벽미사를 위해 성당에 가다 기차에 치어 생을 마감한 그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다.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씩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건축한 모든 것들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SF영화나 만화에서나 봄직한 건물들을 현실로 옮겨놓았다는 것은 19세기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볼 때 가히 기적같은 일이 아닐수 없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자자하다. 도심 전체에 산재해 있는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상상을 뛰어넘는 독창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자연친화적인 건축관으로 재활용품을 건축자재로 이용하며 자재비를 절감했던 그의 검소함 역시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건축가다운 모습이 아닐 수없다. 주변엔 항상 친구들이 많았지만 자신만의 건축세계에서 고독한 투쟁을 벌여왔던 그였기에 작품의 화려함 뒤엔 왠지모를 고독이 묻어있다. 고독한 천재의 향기는 바르셀로나의 밤거리에서 그렇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가우디 건축물 찾기

성가족성당 : 버스 19,20,34,45,47,50,51,54번
지하철 : Sagrada Familia 하차

구엘공원 : 버스 10,24,31번
지하철 : Lesseps 하차
주소 : Larrard St.

구엘저택 : 버스 14,59번
지하철 : Drassanes 하차
주소 : Nou de la Rambla St.3

카사밀라 : 지하철 : Diagonal 하차
주소 : P.de Gracia 92

카사바트요 : 지하철 : Pg.de Gracia
주소 : Passeig de Gracia43


덧붙이는 글 | 2002년 6월에 떠난 두달간의 유럽배낭여행 중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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