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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사와 세계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준 자료는 유네스코에서 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의 등록기준에 속한다. 또한 뛰어난 미적 양식을 지녔다거나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예술적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의 유적 역시 이 기준에 포함된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일단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면 물적 양적 지원은 물론 전세계 관광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보존되는가 하면 그 도시에 얼마나 많은 세계문화유산이 있는지에 따라 관광수입이 달라진다. 그만큼 세계문화유산은 문화예술사적으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는 동시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까딸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 역시 문화유산이 많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현대와 과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 도시에는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데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이들의 흔적을 엿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이는 천재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이다. '구엘공원', '까사밀라', '구엘저택' 등 3개의 작품이 1984년 한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니 그의 예술적 존재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구엘공원
ⓒ 홍경선
안토니오 가우디 코르네(Antoni Gardi Cornet)는 1852년 지중해 연안의 스페인 까딸루냐 지방에서 구리세공업을 하는 부친 밑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있어 유일한 친구는 자연이었다. 지중해연안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자연과 벗이 되어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하늘, 바다, 나무, 식물, 곤충 등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을 존중하며 이해해온 그는 환경을 매우 중요시하는 건축가였다. 주 건축재료로 타일, 도자기, 벽돌과 같은 재활용품을 주재료로 사용한 것은 물론 조그마한 식물이나 지형이라도 될 수 있는 한 보존하는 범위에서 설계와 시공을 했다. 특별히 누구에게 사사받은 적이 없는 그에게 있어 최고의 스승은 바로 지중해의 푸르른 자연이었던 것이다.

1874년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교에 입학한 그는 재학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거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1878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는 그의 인생에 전화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가우디 최고의 후원자 '에우세비오 구엘 바시갈루피(Eusebio Guell Bacicalupi)와의 만남이었다. 바르셀로나의 유능한 사업가이자 학문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그는 가우디의 천재적 작품성에 매료되어 스스로 그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후 그들의 관계는 단순히 건축주와 건축가의 경계를 뛰어 넘어 예술에 대한 공감대로 똘똘 뭉친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

▲ 성가족 성당의 성상조각
ⓒ 홍경선
가우디 작품의 특징은 초월성에 있다. 시대의 양식과 형식을 초월한 그의 작품은 과거는 물론 동시대의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는 오히려 미래지향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벗삼아 살아왔던 그였기에 사물을 관찰하는 눈 역시 남들과 달랐다. 고정관념을 파괴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선 곧은 선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하나같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틀에 박힌 2차원적 평면구조에서 3차원적 입체구조로 끌어올린 그의 독창성은 단순히 기하학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변형에 또 변형을 줄 수 있는 '구(球)'와 같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외관에만 충실하여 부실하게 지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반복적인 설계와 모형작업을 통해 완성도를 최대로 높였기에 오늘날까지 완벽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첨단 장비를 동원한 구조계산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니 99%의 노력으로 1%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살린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 천공을 가르는 네개의 첨탑
ⓒ 홍경선
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전세계 건축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가우디'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가우디의 흔적은 바르셀로나 도심 곳곳에서 살아숨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그 유명한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이다. 민박집이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오고 가며 쉽게 접할 수 있었다.

1882년부터 지어진 이 성당은 이미 가난한 신자들의 민간단체인 '산 호세 협회'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을 1884년에 가우디가 인계 받은 것이라 한다. 그후 그는 1926년 6월 7일 불의의 사고로 죽기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건설작업에 매달렸다.

성당은 한눈에 보기에도 거대한 외계우주선이 발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흉측한 괴물이 서있는 듯한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성당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한 안쪽의 107m 높이의 쌍탑과 양측의 98.4m 높이의 첨탑은 마치 옥수수가 녹아 흘러내리는 듯했다. 각 탑을 잇고 있는 작은 통로는 보기만 해도 아찔했는데 옥수수 알갱이를 빼어먹은 듯이 속이 비어있었다.

▲ 성당 뒷면의 개구리 장식
ⓒ 홍경선
처음 성당이 지어질 당시에는 네오 고딕양식이었는데 가우디가 공사를 맡고나서부터 그만의 독특한 신비주의가 결합되어 이처럼 초현실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특히 가우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곳은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성당의 정면부였는데 전체적으로 서서히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이 왠지 모를 비장미를 비치고 있다.

정면의 입구는 모두 3개의 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믿음의 문', '희망의 문'. '사랑의 문'이라 일컫는다. 각 문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이 생생한 성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고드름처럼 살며시 내려앉은 외벽이 이 성상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어 경건함이 묻어나온다. 전형적인 아치모양이 아닌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정면부에선 마치 성당이 살아 숨쉬는 듯한 생동감이 전해진다.

성당의 뒷면에는 어린시절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던 개구리, 달팽이, 도마뱀 등의 조각들이 장식으로 달려있었다. 용암이 녹아 흐르다 굳은 것 같은 정면과는 달리 뒷면은 깔끔한 네오고딕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와 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성상에서는 여전히 변함없이 개성 넘치는 그만의 세계가 표현되어 있었다.

▲ 구엘공원내의 나선형 기둥
ⓒ 홍경선
성가족 성당은 독창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펼쳐왔던 그의 모든 역량이 집중 투입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12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건설될 부분은 170m 높이의 중앙탑과 그 뒤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탑이라는데 이것이 완성되기까지는 앞으로 몇 십년은 더 걸릴 것이라 한다.

이처럼 무려 2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초월하며 건설계획을 짤 수 있는 것은 자신도 알지 못할 먼 훗날을 기약하며 설계와 시공을 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내다보는 천리안적 안목을 갖춘 가우디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가우디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놀란 입을 다물 수 없던 나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구엘공원(Parque Guell)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 3번 lesseps역에서 하차하여 배낭을 매고 가는 관광객들의 뒤를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니 주택가 사이로 높은 비탈길이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 얼굴엔 달구지 땀이 물흐르듯 흐른다. 방문객들을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날 따라 고장이 났는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늘만큼 높은 계단을 걸어올라 가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목에서 심한 갈증이 느껴질 때 쯤 되어서야 비로소 비탈길을 넘을 수 있었다.

▲ 신전 앞의 용 조각상
ⓒ 홍경선
하지만 그곳 어디에서도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통 언덕마냥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길이 나있는 곳으로 좀 더 올라가보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멀리 성가족성당의 옥수수탑이 보인다. 가까이서 봤을 때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건물이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하늘 저만치 아래에 서있는 것이다.

하늘이 높고 푸른 것인가, 이곳의 지대가 높은 것인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몸을 적신다. 땀에 젖은 몸이라 그런지 더욱 시원했다. 멀리 언덕 아래로 바둑판 같이 깔끔하게 정리된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언덕을 내려와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 걸으니 야자나무들이 무성한 광장이 펼쳐졌다. 드디어 구엘공원에 다다른 것이다. 넓은 광장에는 가우디 특유의 색유리 모자이크로 꾸며진 벤치들이 즐비했다.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아무렇게나 붙인 듯한 난간은 그렇게 광장을 두르고 있었는데 파랑, 초록, 노랑 등 다양한 색으로 알맞게 구워진 도자기들의 불협화음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넓은 광장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가족 단위는 물론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선 그늘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낯선 모양의 벤치와 예쁘게 꾸며진 광장의 모습에 그저 신기해하며 즐거워할 뿐이었다.

▲ 신전 앞의 카멜레온 상
ⓒ 홍경선
198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엘공원(Parque Guell)'은 처음엔 미래에 주택을 지을 목적으로 조성된 대단위 임대주택단지였다 한다. 하지만 돌멩이 투성이에다가 물도 부족하고 경사마저 상당히 기울어 있었기 때문에 공사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게다가 자금상의 문제에 직면하자 공원으로 용도변경을 하여 오늘날과 같이 이곳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처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광장 아래에는 거대한 도리아식 신전이 있었는데 이는 평소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의 요청에 의해 지은 것이라 한다.

신전 안은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은 온통 구워 붙인 타일조각들로 가득했는데 색깔과 모양이 모자이크처럼 조화를 이루며 빛을 내고 있었다. 신전입구 옆으로 광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그 기둥들의 경사진 모양이 가관이었다. 그 앞에 서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데 거대한 광장의 무게를 꿋꿋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가까이서 보면 그냥 커다란 바위를 서로 이어붙인 듯하나 점점 거리가 멀어지면 각 기둥들이 마치 위로 말려올라가는 듯한 나선형으로 보인다.

신전 입구아래의 계단에는 세 개의 분수들이 놓여있었는데 각 분수마다 기이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전 바로 앞의 분수는 아라곤 왕의 휘장이 표현되어 있다. 두 번째는 세라믹 재질로 된 용의 조각상이 물을 토해내고 있는데, 이는 아폴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해 땅속에 매장된 뱀과 용이 그속에서 물을 지키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착안한 것이라 한다. 마지막 분수는 양다리를 각각 계단 주변에 바짝 붙인 채 무지개빛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카멜레온이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입에서는 물이 흘러나오는데 가끔씩 어린아이들이 물을 받아먹기도 한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오니 입구 양쪽으로 두 채의 집이 들어서 있는데 이중 하나는 1906∼1926년동안 가우디가 살았었다고 한다. 그렇게 후문으로 들어와 정문으로 나간 구엘공원은 마치 동화 속 요정들의 마을에 왔다간 느낌을 준다. 공원을 화려하게 수놓은 모자이크조각들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들의 깨진 조각들을 재활용하여 꾸민 것이라 한다. 이처럼 구엘공원은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중시했던 가우디의 건축이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그렇게 한낮의 뜨거운 햇살아래서 환상적인 구엘공원의 정취에 취해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모자 아래로 뜨거운 기운이 전해져 내려오는걸 보니 얼굴이 많이 익었나보다. 강행군을 한 것 같아 '그라시아 거리'로 가기 전에 차가운 음료로 잠시 목을 축였다. 예전부터 특별히 가우디의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이곳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무작정 거리를 헤매이면서 스치듯 우연히 바라본 기묘한 건물들을 통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된 것 뿐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가우디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몸으로 느끼게 되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문이 열리는 듯 했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한시대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배낭여행이 발산하는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2002년 6월에 떠난 두달간의 배낭여행 중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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