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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26일 프랑스 깐느 뤼미에르 극장.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현장에 있는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한국기자들은 숨소리를 죽이며 감독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물 잔을 한 모금 마실 찰나 드디어 임권택 감독의 이름이 장내에 울려 퍼지고, 조선시대 말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취화선>은 그렇게 55년 깐느 영화제 무관의 한을 풀어주었다. 한국의 장편영화가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깐느(CANNES)는 프랑스 남부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중의 하나로써 니스와 함께 모나코에서 마르세유까지의 지중해 연안을 나타내는 코트다쥐르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해변이 낀 아름다운 휴양도시의 이미지보다도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로 더욱 친숙하다.

매년 5월마다 열리는 깐느 국제영화제는 세계적인 영화제로서 해마다 많은 감독과 유명배우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으리으리한 별장과 요트들이 항구마다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거리곳곳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활기 넘치는 도시이다. 인구 7만의 조그만 도시를 가득 메운 그들은 오히려 주인인 마냥 거리와 해변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 흠뻑 젖은 체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모나코를 출발한 기차에 몸을 실은 지 40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프랑스 남부해안의 여유로운 풍경에 취해 잠시라도 시선을 돌릴 틈이 없던 순간이 지나고 '깐느'에 도착함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경쾌한 발걸음으로 역사를 벗어났다.

대표적인 휴양도시답게 화창한 날씨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시가지를 가득 메운 낮은 건물들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바람의 움직임에 몸을 의지하다보면 어느 샌가 해변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해변에 대한 기대는 먼저 펼쳐지기 시작한 'BOULEVARD DE LA CROISETTE'로 인해 잠시 유보되었다. 깐느를 대표하는 유명대로인 이곳은 깐느영화제에 참석하는 유명영화인들이 머무는 고급호텔과 부티크들이 즐비한 거리이다. 이곳 주민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화려한 외관의 호텔들은 해마다 이곳을 찾는 스타들로 만원이 된다고 한다.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깐느시는 갈수록 부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은 왠지 지울 수가 없어 보인다.

한 호텔 정원에 마련된 노천레스토랑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우아하게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금발의 미녀와 갈색머리 정장의 신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비록 들리지 않았으나 남자를 바라보는 여성의 그윽한 눈길이 왠지 모르게 시선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간신히 시선을 떼어 옆을 보자 반짝이는 금색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의 앞을 장식한 금장은 '지옥의 묵시록', '패왕별희', '펄프픽션', '언더그라운드', '로제타', '어둠속의 댄서' 등 역대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의 제목이었다. 그 계단을 밟고 최고의 수상작을 거머쥔 승리자들이 기쁨에 흥겨워하며 하나둘 호텔로 들어갔으리라.

거리의 서쪽 끝은 잡화점이나 빵집과 같은 서민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불과 몇백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공간이 존재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일생에 한번도 보기 힘든 해외 유명스타들을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이곳 사람들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리 곳곳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은 바로 그 유명한 깐느 영화제를 개최하는 회장(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이었다. 이미 영화제가 끝난 8월이라 입구의 문은 닫혀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어느새 전세계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된 명소로 자리잡은 이곳은 총 6층 건물로 되어있다. 내부는 큰 홀 3개, 중간 홀 6개, 작은 홀 24개로 이루어져있고 입구 아래로 빨간 융단이 깔려있는 계단이 나있다. 화려한 빨간색이 풍기는 묘한 매력에 이끌려 천천히 그 위로 올라섰다. 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설 때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수갈채 소리. 그 환호성에 잠시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빨간색이 주는 묘한 충동은 그렇게 나를 영화제 속으로 이끌고 있었다.

'깐느영화제'는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다. 무솔리니의 출현과 함께 베니스 영화제가 개최되자 프랑스 정부는 그 반대의 의미로 1939년 9월 1일 1회 개최를 목표로 칸 영화제를 기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2차대전의 발발로 영화제는 연기되었고, 이후 1946년 9월 20일, 임시 정부의 승인 아래 18개국의 영화를 모아 영화제를 개최했다. 그 후 1972년부터 세계의 영화들로 확대하면서부터 매년 영화제 참가자가 늘기 시작했고, 점차 영화산업의 집결지가 되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라 한다.

▲ 샤론스톤의 손도장
ⓒ 홍경선
▲ 로만플란스키 감독의 손도장
ⓒ 홍경선
회장 앞 광장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감독과 영화배우들의 손모양이 그대로 찍혀있었다. 샤론스톤, 우마서먼, 존트라볼타 등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는 물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로만 폴란스키 등 명감독들의 손모양을 찾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동안 빠져있었다. 특히 간신히 찾아낸 샤론스톤의 손모양은 그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 바닥만 보고있으니 피로가 금방 찾아왔다. 광장 주변엔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잠시동안 휴식을 취하기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맞은편의 해변에 시선이 닿자 좀전의 피로는 씻은 듯 깨끗이 잊은 체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깐느 해변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또다른 목적지였다. 해변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었기 때문에 뜨거운 햇살에 일광욕을 하는지 저마다 깔판을 깔고 누워있다. 해변 한켠에선 발리볼을 하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났고 조용한 파도는 모래사장과 선을 긋기라도 하듯이 살며시 몰려들고 있었다. 몇그루의 야자수를 빼고는 우리나라의 해변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단지 피부와 머리색만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미코노스의 파라다이스해변의 기억이 떠올라 뜨거울 것만 같았던 백사장은 미지근했다. 한가로이 피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틈 사이를 살며시 걸어보았다. 혹시나 보일 것만 같은 누드차림의 여성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마음속의 평온함과는 달리 선글라스 속의 두 눈은 바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시선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곳에서도 전라는 물론 반라의 여성들도 발견하지 못했다.

▲ 깐느해변
ⓒ 홍경선
깐느의 바닷물에 잠시나마 발을 담궈보았다. 차가운 감촉이 발 전체로 스며든다. 하지만 밀려나가는 파도와 함께 그 감촉마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파도와 함께 쓸려나가는 모래처럼 깐느에서 맛본 이국의 풍경도 이젠 추억 속에 담아야했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을 붙들고 서둘러 니스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니스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마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피부색도 머리모양도 다양했다. 마치 파리의 다양한 인종이 이곳 남부에까지 내려온 것만 같았다. 한참을 차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가도가도 똑같은 해변의 모습이 끝없이 펼쳐졌다. 바로 그때 깐느의 모래해변이 자갈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문득 내리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그렇게 이름 모를 간이역에 무작정 내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괜시리 늦장을 부리며 여유로움을 즐기고픈 마음이 생겼다. 동전을 던지면 앞과 뒤 서로 다른 모양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둘 다 저마다 특성있는 모양으로 시선을 자극한다. 마찬가지로 니스의 해변은 깐느완 달리 자갈로 이루어져있다. 투명한 바닷물에 자갈의 모양과 색까지 선명히 드러나는 해변이다. 칸느와 니스 두 곳의 해변을 비교하는 것은 동전을 던지는 놀이만큼이나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내린 그곳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니스해변의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은 오직 짙푸른 바다와 자갈뿐이었고 관광객보다는 가족단위로 놀러온 내국인이 자리를 깔고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어느덧 해가 지고있었지만 나무 한 그루 없는 평범한 해변에 그렇게 앉아있었다. 파도가 밀려오고 다시 나간다. 그럴 때마다 발끝으로 자갈이 모여드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빠져나가고 만다. 하지만 곧이어 새 자갈들이 텅빈 공간을 가득 메우게 되고 그나마 버티고있던 녀석들은 깨끗이 몸을 씻는다. 그렇게 반복적인 파도와 자갈의 움직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순간 영화 '노킹온 해븐스도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두 청년이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바닷가. 한번도 바다를 구경하지 못한 그들에게 있어 바다는 곧 천국이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간 것이다. 거친 파도와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더 이상은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 입을 모아 속삭이던 그들은 결국 천국의 문을 두드리면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 영화 '노킹온헤븐스도어'의 한장면
죽음을 앞둔 이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준 바다. 단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파도의 움직임과 차가운 바람만이 불어올 뿐인데 그들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찾은 탈출구. 바다는 그렇게 하얀 병실의 닫힌 공간이 아닌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과 지평선 마냥 끝이 없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나 역시 어느덧 여행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여행의 끝자락에 잠시 멈춰선 체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많은 도시를 방문하며 겪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언젠간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을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생생한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주위는 너무나 고요했다. 아직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대화도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도 간간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파도의 움직임만이 반복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파도는 그곳 해안의 모든 자갈을 옮기고 있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난 지금 그렇게 떠내려가지 않은 체 묵은 때를 벗겨내는 자갈이 되어 지나온 순간과 앞으로 남은 여정을 떠올리며 그대로 멈추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작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머물고 싶은.

덧붙이는 글 | 2002년 6월에 떠난 두 달간의 유럽여행 중 프랑스 '깐느'와 '니스'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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