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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스켈리와 레니에3세의 결혼식
1956년 어느 유명 여배우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다이알 M을 돌려라(Daial M for Murder)', '갈채(Country Girl)' 등으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할리우드 스타 '그레이스켈리'와 모나코 왕자 '레니에 3세'가 바로 그들이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는 꿈속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를 얻었고, 부족할 것 없는 신출내기 왕자도 만인의 연인이자 금발의 미녀였던 은막의 스타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부족할 것 없는 둘의 결혼은 전 세계인의 축복을 받았고 세기의 결혼이라는 명예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성 팬들은 더 이상 스크린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출연작이었던 '상류사회(High Society)'처럼 왕족의 신분으로 격상되며 스크린을 떠났기 때문이다.

모나코왕비 '그레이스켈리'가 선택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 모나코. 국명은 모나코 공국(Principaute de Monaco, Principaity of Monaco), 수도는 모나코(Monaco)이다.

다른 나라의 도시 정도 크기밖에 안돼는 이 조그만 나라는 프랑스의 남부 해안, 지중해에 접해 있다. 서쪽으로 15km만 가면 프랑스의 '니스'가 나오고 동쪽으로 8km만 가면 이탈리아의 국경이 나오는 소국 모나코.

국경선의 총 길이가 4.4km라니 왠만한 마라톤 코스보다도 짧은 길이다. 하지만 세계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이루지 못할 진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바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과 징병제도가 없다는 것.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빛나는 꿈의 낙원인 것이다.

모나코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니스에서 출발한 몬테카를로행 기차는 프랑스남부의 푸른 바다를 끼고 유유히 지나간다. 덜컹거리는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해변.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 파도를 헤치며 바다로 뛰어드는 연인들, 저마다 가슴 끈을 풀어놓은 채 일광욕을 즐기는 여인들 등 나체해변으로 유명한 니스의 풍경이 스치듯 지나갔다.

가끔씩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역에 정차할 때면 마치 고기 집 벽에 걸린 야한 달력의 사진들 마냥 봉긋한 가슴을 드러낸 채 해변을 활보하는 서구여성들의 몸매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들의 모습만큼이나 창 밖으로 여유로운 해변의 풍경이 그대로 실려 들어온다.

니스에서 불과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이기 때문에 기차는 눈 깜짝할 사이 모나코에 도착했다. 창 밖의 화려한 볼거리에 매료된 체 20여분의 소요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마치 공항과 같은 세련된 기차역은 카지노와 그랑프리로 유명한 이 조그만 나라의 위상을 첫눈에 가늠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주 수입원이 이곳을 찾는 전세계 수 백만명의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일때니 첫인상은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밝은 형광등 조명아래 기나긴 통로를 지나자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평균온도 25.5의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여서 그런지 그리 무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였다.

간이역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모나코 시내 지도를 손에 들고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샌들 아래의 발바닥으로 뜨거운 아스팔트의 기운이 전해졌지만 전후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느긋하게 이곳의 경치를 머릿속에 저장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전체면적이 1.95㎢밖에 되지 않은 이 조그만 나라를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돌아다니기엔 너무 사치스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찾아간 곳은 대공 궁전(The Palace of the Prince)이었다. 1191년 제노바의 명문 '그리말디 家'가 프랑스의 원조를 받으며 이곳에 진출하여 집권한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등 외세의 침입에 항거하며 독립주권국의 생명을 끝까지 버텨냈던 곳이다.

처음엔 길이 800m, 높이 60m의 암석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이 요새의 역할을 해 온던 것을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궁전을 지어 요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모나코의 전경
ⓒ 홍경선
나라의 크기가 일반 도시만하기 때문에 궁전 역시 화려함과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일반 시청사 건물 만한 크기에 누런 황색의 건물색과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색과 하얀색의 이분법으로 그려진 모나코 국기만이 궁전의 위용을 간략하게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마침 궁전의 작은 뜰에선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고 있었다. 정오에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은 비록 작고 초라했지만 절도 있는 근위병의 모습만은 여타 유럽의 근위병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공궁전은 모나코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그런면에서 요새로서의 기능만은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궁전 뒤로 돌출된 기암괴석이 언덕처럼 올라와있는 산맥이 펼쳐져 있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와 접해있다. 항만위로 수많은 돛들이 하늘로 치솟아있다. 크고 작은 요트들로 가득한 선착장이 마치 자동차경기장의 레일 마냥 둥근 곡선모양으로 조성되어있고 언제 출발할지 모를 하얀 요트들은 그 화려한 외관으로 모나코항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항만위로 주황색 지붕의 별 장군이 들어서 있고 그 주변으로 높다란 빌딩들이 숲처럼 시가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로 하얀 구름이 살며시 걸려있고 그 사이로 높다란 산맥이 병풍처럼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산맥 아래로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 수많은 빌딩 숲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하얀 요트들이 수놓은 항만이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산줄기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시선이 향하는 이곳은 높다란 성채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물샐틈없이 굳게 지키듯 각 위치마다 커다란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성채를 공략하려는 스페인, 프랑스군의 선단에 포격을 가하려는 듯 당시에 쓰였던 포탄이 피라미드 형식으로 9단이나 쌓여있다.

▲ 모나코 대공궁전의 포대
ⓒ 홍경선
궁전 앞 광장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모나코 그랑프리로 유명한 도시답게 많은 카레이스 관련 물건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 틈새로 그레이스켈리의 사진들이 간간이 보였다. 흑백 사진 속의 그레이스켈리, 그 단아한 외모와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빨려들듯했다. 레니에 3세와의 결혼식 장면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걸려있었다. 그들의 결혼으로 세간에 널이 알려진 만큼 이곳의 주요 관광수단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을 바라보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은 잠시나마 슬픔을 자아냈다. 1982년 9월 모나코 근교의 여름별장에서 왕궁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모나코왕비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도, 우아한 왕비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을 정지시킨 사진 몇 장만이 당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광장 뒤로는 많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그림엽서에서 봄직한 모나코왕가의 문양이 선명히 찍힌 건물들로 가득한 그 거리를 따라 몇 걸음을 옮겼을까. 커다란 선인장들로 가득한 정원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들로 가득 메워진 공원과 접한 그곳엔 멀리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요동치는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 모나코 왕가의 문양
ⓒ 홍경선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보았는가. 핀란드로 향하는 바이킹라인에서 바라보았던 북대서양의 푸른 바다도, 포르투갈의 로까곶에서 내려다본 대서양의 넘실대던 파도의 하얀 거품도, 그리스 에게해의 짙은 바다도 이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진 않았다. 타오르는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려는 듯 끝없이 펼쳐진 모나코 앞 지중해의 푸른 물결은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바다는 그저 고요히 넘실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망대 아래로는 조용한 계단이 이어져있다. 온갖 종류의 선인장과 나무로 둘러싸인 계단 한 켠의 작은 공간엔 다정한 연인들이 하나뿐이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가 제공해주는 그늘을 벗삼아 눈앞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누군가 말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그들 역시 서로의 마음을 눈앞의 저 바다처럼 조금의 망설임없이 모두 다 받아주기를 약속했던 건 아닐까. 그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 그 벤치에 앉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또 한 쌍의 연인들이 서있었다. 아무래도 연인들만의 명당이 아닌가 싶다.

계단을 내려오니 요새 위에서 바라본 항구가 나타났다. 항구 뒤로 활기 넘치는 모나코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자 이제는 익숙해진 유럽의 풍경에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무료함에 젖게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럽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두루 돌아다닌 사람들에게 모나코는 그리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거리의 풍경과 그리 놀라울만한 문화적, 역사적 유적도 딱히 없는 이 나라는 카지노와 그랑프리 그리고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켈리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으로 유명할 뿐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찾아온 그리말디家 재정의 악화는 결국 이 나라가 독립 주권국을 지탱하기 어려운 경제적 난국을 초래했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1863년 샤를3세에 의해 시행된 카지노사업은 오늘날 전세계 백만장자들의 손과 발을 묶어두기 시작했다.

카지노 사업의 대성공으로 숙박시설, 극장시설 등이 정비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관광국가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광보다는 휴양국가라 함이 더 옳을 듯 싶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에 몸을 식히다 지루해질 때쯤 잠시 이곳에 들러 카지노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다 가는 그런 휴양코스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돈많은 부유층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게다. 정장차림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카지노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거리의 부랑자나 두 눈이 충혈된 흑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비록 세금을 내지 않고 징병제도 없는 꿈의 낙원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마도 부르주아만의 유토피아적 산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그저 그레이스켈리의 흔적과 샹송 '모나코'의 감미로운 선율이 떠오르는 그런 나라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작은 나라가 가져다주는 묘한 매력이 달콤하고 또 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니스와 칸으로 오갈 수 있는 길목에 버티고 있는 모나코의 매력, 즉 서로 상반된 두 해변의 풍경에 지칠 때 쯤 잠시 들러 이렇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소국 모나코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2년 6월에 시작한 두 달간의 유럽여행 중 모나코에서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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