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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똘레도의 좁은 골목길을 지도를 보고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단지 똘레도 대 성당(catedral)을 이정표 삼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낙천적인 스페인 사람들의 친절함은 뜨거운 태양에 의해 건조해진 마음마져 축축히 젖게 만든다.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의 시민들답게 저마다 무척이나 친절했다. 이곳에선 마드리드의 떼강도도 바르셀로나의 소매치기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정지해버린 시계마냥 도시도 사람들도 모두가 한결같았다.

똘레도의 중심에 우뚝 솟아있는 대성당은 그 웅장한 규모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길이 113m, 폭 57m에 이르는 성당의 규모는 세계3대 성당이라 불리우는 산피에트로나 세인트폴대성당, 쾰른에 견줄만큼 거대했다. 이 조그만 중세의 도시에 이렇게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 성당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이 대사원은 페르난도 3세의 명령에 의해 1226년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493년에 완성한 것이라 한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되면서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똘레도 대성당
ⓒ 홍경선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화려했다. 전형적인 고딕식 건축물답게 정면에 대칭되는 두 개의 거대한 탑이 서 있는데 그 모양이 각기 다르다. 그 중 하나는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발사될 것 만같이 높은 첨탑이었는데 고슴도치처럼 삐죽삐죽한 파란 지붕이 인상적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또 다른 탑은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애를 보낸 세계적인 화가 엘그레꼬의 아들이 세웠다는 8각형의 돔모양을 하고있었다. 그안에 무려 18톤이나 되는 종이 들어있다고 하니 그안에서 울려퍼질 종소리의 울림이 어떨지 궁금할 뿐이다.

각기 다른 두 첨탑 사이로 밀라노의 두오모처럼 전면벽에 다양한 성상들을 조각해놓은 본관이 있다. 특히 본관 중앙에 있는 면죄의 문 양쪽으로 왼쪽의 시계의 문과 오른쪽의 사자의 문 등 3군데로 나누어져 있는 성당입구가 이색적이다.

▲ 대성당 외벽의 그리스도상
ⓒ 홍경선
거대한 외부의 모습만큼이나 내부 또한 화려하고 웅장하기만했다. 본당의 우측엔 보물실이 있고 높이 3m, 총중량 200kg에 이르는 성병 헌치대가 놓여있는데 모두가 금은보석 등으로 세공된 것이라 한다. 또한 엘그레꼬나 고야 등 대가들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살며시 들어오는 빛에 의해 그 선명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카톨릭 국가여서 그런지 성당내부는 다른 곳보다 어두웠다. 오로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들어오는 빛만이 어둔 성당을 밝혀주고 있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기도소리와 함께 더욱 숙연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성당을 나와 다시금 똘레도의 골목을 거닐었다. 오랫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 칼의 제조가 발달해서인지 여기저기 중세시대의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칼이나 갑옷, 투구등을 파는 수공제품 가게들이 많았다. 햇빛에 반사되는 검의 예리한 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유난히 눈부신 빛을 내뿜는 검을 집어 카멜롯의 전설에 빠져들었다.

그순간 검은 아더왕의 에스칼리버가 되어 평화의 빛을 내뿜는다. 또 하나의 검을 들어 란슬롯의 무용을 흉내내었다. 이제 양손에 쥐어진 두 명검은 아더왕의 전설을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든 암흑의 마왕에 의해 두칼을 빼앗겨버리고 다시금 현실에 눈을 떴을 땐 주인이 나와 칼을 살거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건넨뒤 시내관광의 중심인 소꼬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현대적인 건물인 맥도널드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 중세의 시간 속을 정신없이 헤매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맥도널드라는 현대적인 공간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있으니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빛바랜 황토색 건물은 어느새 세련된 주황색으로 변해버렸고 한가로이 거닐며 중세의 향기를 듬뿍 마시던 느림의 미학은 패스트푸드라는 음식으로 얼룩져버렸다.

198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톨레도 구시가지. 칼이나 금과 같은 특산품에서부터 거리곳곳에 산재해있는 역사적인 유적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모든 것이 영화 속에서 봄직한 중세의 모습 그대로였다.

1560년 펠리페 2세의 마드리드 천도로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기 전까지 1000여년동안 에스파냐 왕국의 정치·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인구 6만의 도시 똘레도는 단지 걷는 것 자체에 그 진정한 매력이 숨어있는 도시였다.

두 건물사이의 오래된 골목길에서 양손을 뻗으면 두 벽에 닿는 손끝에서 과거의 흔적이 느껴진다. 손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중세의 향기는 어느새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과거 이 지역에 살았던 무어인의 자손 회교도들과 경제권을 쥐고 있던 유태인들 그리고 그들을 몰아낸 스페인 기독교들의 흔적을 엿 볼수 있게 하였다. 그들의 치열했던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손끝에 묻어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의 흐름과 급속한 경제의 발전은 도시 전체를 한순간에 바꾸어 놓을수 있다. 하지만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건물의 개조를 금지시킨 이들의 노력이 오늘날 똘레도와 같은 세계적인 역사의 도시를 만든 추춧돌이 아닌가 싶다. 과거의 문화와 유적을 지킬줄 아는 사람들, 오랜 역사의 정취를 한껏 맛볼수 있는 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6월 26일에서 8월 26일까지 다녀온 유럽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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