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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왕위앙의 산들
ⓒ 홍경선
라오스란 나라의 조그만 마을 왕위앙의 어느 동굴에서 생명을 담보로 군대에서나 해보았던 포복의 세가지 동작을 모두 사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탈출할줄은 몰랐다. 온몸이 흙투성이다. 샌들마저 달랑거리기 시작한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자전거를 숨겨놓은 곳으로 돌아왔다.

몽족 모녀가 지나간다. 자그만 키에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 꼬마아이와 소녀같은 엄마의 등뒤엔 광주리가 메어져있다. 호박같은 것을 잔뜩 싣고 사이좋게 지나가며 낯선 이방인의 눈빛에 경계하는 듯한 몸짓이 소박해보인다. 이곳의 풍경은 정말 계림과 흡사했다. 아니 중국의 계림보다도 양수오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림처럼 정형화된 계림의 풍경보다는 소박한 이곳의 풍경이 더 나은 듯 싶다.

하늘은 산중턱에 걸터앉아 구름을 붙들고 있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산끝자락에 서있으면 하늘의 구름들을 만져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오고가는 길목마다 과수원 길이 펼쳐져있고 연신 사바이디를 외쳐대며 반가워하는 꼬마아이들의 천진난만에 마음마저 풍요로워진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들을 향해 손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뭐가그리 우스운지 수줍어하며 답례를 한다. 이미 상업화되어 왠지 모르게 메말라있던 계림과는 달리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다.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3시간여를 달려온 길이었다. 스쳐가는 풀내음이 정겨웠다. 푸른 들판에서 축구를 하는 동네 꼬마녀석들의 모습이 정겹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멋지게 슛을 날려보고 싶다. 울퉁불퉁 시골길을 달려가는 동안 높게 자란 코코넛나무 아래로 늘어선 마을의 풍경에 정신이 팔려 얼마나 달렸는지도 모른채 대나무다리에 도착했다.

▲ 정겨운 시골마을 왕위앙
ⓒ 홍경선
대나무다리 밑의 쏭강의 수위는 얕았다. 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누런 쏭강이 이들의 생활용수로 쓰이고 있으니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이들의 모습이 정겨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어가고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도 어느정도 식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쏭강 튜브레프팅'을 하러갔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물이 굉장히 차가울 것이라 했다. 동굴탐험에서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어이 래프팅을 하러 갔다.

커다란 튜브를 차위에 실은 뚝뚝은 쏭강상류의 래프팅 장소로 향했다. 운전사는 계속해서 오늘은 너무 늦어 금세 추워질테니 내일 다시 오라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쏭강의 흐름에 충고를 던져버리며 자신만만하게 래프팅 장소에 내렸다. 튜브를 어깨에 멘 채 강가로 다가갔다. 한무리의 꼬마들이 이제 막 목욕을 끝마쳤는지 옷을 입고 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적나라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수줍은 꼬마녀석들은 얼른 몸을 숨기기도 했다.

커다란 검정튜브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강가로 다가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나보다. 뒤쪽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발바닥이 물속에 닿고 커다란 튜브는 쏭강위에 뜨기 시작했다. 서서히 수면에 닿는 면적이 많아질수록 내려가는 기온. 물은 정말 차가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튜브위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까지 다시 걸어내려오기에는 먼길이었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닿는 쏭강의 감촉이 너무 찝질했다. 누런 강의 색깔도 그렇거니와 생활용수로 쓰이는 물의 용도가 왠지 불안해보였다. 물에 젖어 몸이 점점 밑으로 내려간다. 어느덧 튜브아래로 엉덩이가 깊숙이 쏭강에 박혀버렸다. 출렁거리는 물살의 움직임에 따라 몸도 덩달아 출렁거린다. 그럴때마다 쏭강의 차가운 물결이 몸을 쓰다듬는다. 춥다. 몸이 점점 떨려오기 시작한다. 어느새 입마저 덜덜 거린다. 차가운 기운이 엄습해온다.

하지만 튜브위에서 펼쳐진 그림같은 쏭강의 경치에 몰입하니 어느새 추위는 사라졌다. 구수한 시골마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아름다운 강변의 경치를 천천히 둘러보며 운치라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두둥실 쏭강의 물살에 몸을 의지한 채 밑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물살이 머무는 곳에서는 튜브마저 움직이질 않는다. 그저 주변을 맴돌뿐이다. 하는 수 없이 노를 젖기 시작했다. 노라고 해봤자 손바닥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손으로 젖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신고있던 샌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물에 닿는 면적이 넓어져서 그런지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샌들의 움직임에 가속이 붙은 튜브는 잘도 떠내려간다.

잠시 일어나보니 물이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강가 여기저기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그들 주변으로 하얀 비누거품이 일어난다. 누군가 실례도 했을 것이다. 그런 쏭강의 물결위를 이렇게 좋다고 떠다닌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사를 건넨다. 사바이디∼

라오스는 '사바이디'의 나라였다. 친절한 미소의 나라 라오스. 치마속으로 살짝 물을 끼얹으며 수줍게 목욕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정감있다. 그 옆에서 자랑스럽게 발가벗은 꼬마녀석들이 힘차게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둥둥 떠다니는 거품방울들의 움직임을 따라 나역시 흘러간다. 저멀리 앞쪽으로 서양녀석들이 독수리 오형제 마냥 떠내려간다.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자연의 흐름을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 또한 정겹다.

한가하게 떠다니다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노란 물체가 쏜살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카약을 타고 있는 관광객들이었다. 절묘한 노질로 점점 나와의 간격을 줄여온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샌들노를 열심히 저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둥근 튜브는 그 크기만큼이나 느렸기에 어느새 선두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한시간 가량 두둥실 떠내려 왔을까. 어느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강가 레스토랑 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쏭강의 경치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쏭강 경치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 역시 그들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은 이내 쏭강의 물살에 가라앉힌 채 유유히 흘러가는 튜브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며 마지막 종착지를 향해갔다.

▲ 새벽녁 왕위앙의 거리
ⓒ 홍경선
어느덧 해가 지고 왕위앙에도 밤이 찾아왔다. 한밤에 나선 왕위앙의 거리는 또다른 세상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레스토랑들의 불빛은 밤 깊은 줄 모르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맥주잔을 기울이며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는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특히 '론리플래닛'이라는 공통된 가이드책자의 영향탓인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서양인이었다.

나 역시 시원한 비어라오를 맛을 잊지못해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한국인의 방문에 반가워서인지 가게주인이 '라오라오'라고 하는 라오스의 전통주를 선사했다. 와인잔에 나온 포도빛의 술. 정말 독했다. 고량주를 마신듯한 느낌이 목구멍에서부터 전해진다. 어느덧 몽롱해지는 정신속에 왕위앙에서의 모든 일들이이 슬라이드처럼 스쳐지나갔다. 순박한 미소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시골마을 왕위앙. 이곳에서 겪었던 한낮의 선명했던 기억들이 취기와 섞이며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다. '사바이디'라는 외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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