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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내린 비는 아침이 되자 어느덧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흐린 날씨와 빗줄기는 여전했다. 어제와 같은 아쉬움을 또 다시 느낄 수는 없었기에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퀼른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퀼른 구간을 운행하는 기차는 라인강을 따라 이동한다. 스위스 알프스 산속의 작은 호수에서 발원하여 독일을 가로지르는 라인강은 길이 1320km에 걸친 대하천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독일산업의 동맥 역할을 해온 라인강은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온갖 절묘한 풍경들로 유명한 관광루트이기도 하다.

특히 마인츠∼퀼른 구간은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멋진 고성들과 로렐라이 언덕 등을 거쳐가는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궂은 날씨는 어이없게도 유람선으로 향하는 발목을 붙잡고 결국 기차로 유람하는 차선책을 내세웠다.

프랑크푸르트-퀼른 구간의 열차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간략하게 라인강 유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마인츠 역에서부터 등장하는 여러 고성들은 멀리서 보기에는 공격이나 방어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영주들의 별장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 통행세를 걷거나 방어를 하기 위해 견고하게 세워진 성들이라 한다. 라인강의 통행세를 징수하기 위해 세워진 고양이성,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진 생쥐성, 프랑스군의 침입을 끝까지 버텨낸 마르크스 성 등 형형색색의 귀엽고 앙증맞은 성들이 라인강변을 따라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 라인강 유람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로렐라이 언덕이라 할 수 있다.

벨기에의 오줌싸개 소년상, 덴마크의 인어공주상에 이어 유럽의 3대 썰렁명소라 불리는 로렐라이 언덕은 라인강의 오른쪽 절벽에 위치해 있다. 133m 높이의 수면 위로 깎아세운 듯한 이 언덕은 미모의 여인이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공을 유혹해 물에 빠져죽게 하는 전설로 유명하다.

창문을 따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움직임에 3분 정도 시선을 고정시키다보면 어느새 로렐라이 언덕을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광고에서 보여지는 짧은 영상의 효과처럼 순식간에 지나친 로렐라이 언덕의 슬픈 전설은 오히려 더 긴 여운으로 남는다.

코블란츠 역을 지나 퀼른 역에 가까워질수록 창밖의 빗물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멈춰버린 빗방울과 함께 잠시 후 퀼른에 도착함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오자 저멀리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퀼른대성당의 쌍둥이 첨탑이 그 드높은 기상을 뽐내며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라인랜드 지방의 수도 퀼른은 독일에서도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퀼른이란 지명은 식민지를 뜻하는 라틴어의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고대 로마가 이곳을 식민지의 중심으로 삼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로마제국시대 이래 2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퀼른은 현재 미디어의 본거지로서 국제적 수준의 다양한 박람회를 개최하는 국제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특히 유럽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 쾰른대성당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향수브랜드 오데코롱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독일 고딕건축의 상징 퀼른대성당은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영국의 세인트폴에 이어 유럽 3대 성당의 하나로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퀼른대성당이 완성되기까지는 1248년 카롤링 힐더볼드 성당의 폐허 위에 세워지기 시작하여 1880년 빌헬름 1세가 참여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지기까지 650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 독일고딕건축의 상징 퀼른대성당
ⓒ 홍경선
성당의 외관은 그 명성과는 달리 괴물처럼 보였다. 다 타들어가 불에 그을린 것 같은 검은 자국이 성당의 전면을 둘러싸고 있었 딱딱한 이미지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갠 오후의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규모가 워낙 엄청났기에 칙칙한 성당의 색이 풍경의 전부인 마냥 보였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두 개의 첨탑은 그 웅장함에 고개를 뒤로 젓게 만든다. 이는 퀼른 시내 어느곳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채광창이 있는 첨탑의 거대한 쌍탑이 정면에 배치되어 있어서인지 성당의 본체는 마치 이 탑에 종속되는 듯이 보였다.

바라보기만해도 숨이 턱막힐 것 같은 성당의 거대함은 카메라렌즈에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제껴야 157m라는 성당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으니 그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신앙이 깃든 성당의 경건함에 고개를 숙이는 행동이 아니라 고개를 뒤로 제껴야 하는 정반대의 행동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길이 144미터, 폭 86미터나 되는 성당의 내부는 검소한 독일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듯이 매우 단조로워 보였다. 화려한 모자이크와 내부장식으로 온갖 치장을 한 산피에트로나 세인트폴과는 달리 5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마기의 성전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창에 둘러싸인 단일공간의 통일을 이루고 있었기에 화려하진 않지만 성당의 거대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입구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보거나 관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워낙에 성당의 규모가 큰 이유도 있겠지만 내부의 건축양식 때문이기도 했다. 고딕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궁륭·입구·창 등에서 첨두형 아치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첨두의 각을 넓히거나 좁혀서 넓이와 높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성당 안의 공간 구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십자가 모양의 성당내부는 외관만큼이나 웅장해보였다.

▲ 퀼른대성당의 뒷모습
ⓒ 홍경선
입구 정면으로 십자가의 세로변 회랑을 따라 걸으며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했다. 강인해보이는 딱딱한 느낌의 구조에는 왠지모를 경건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쉽사리 걸음이 빨라지질 않는다. 144m나 되는 길이는 무언가 발목을 붙들고 있는 듯이 쉽게 좁혀지질 않는다.

성당의 엄청난 규모에 달라붙은 시선에 붙잡힌 두 발목은 한걸음 한걸음 그저 더디기만 했다. 정면의 물결 모양의 조그만 첨두형 아치가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하자 커다란 제단이 나타났다. 제단 뒤로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유리상자가 놓여있었다. 그 안엔 마기의 성전이 들어 있다고 한다.

본당 뒤쪽의 성녀 마리아와 성 피터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은 상승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후기 고딕양식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창이 높아서인지 채광이 풍부했기에 성녀 마리아와 성 피터의 삶이 더욱 간절히 다가왔다.

성당 정면 오른쪽엔 하늘로 향하는 509개의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며 엄청난 성당의 높이를 발로 재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지막 509개째 계단을 밟고 나자 아름다운 라인강의 모습과 퀼른의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기차 안에서 본 퀼른의 모습과는 또 다른 정상에서 맛본 감동이었다.

▲ 퀼른시내지도
ⓒ 홍경선
고딕식 성당 건축의 일반적인 특징중의 하나인 상승감을 극대적으로 표현한 퀼른대성당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을 연상시킨다. 성당의 첩탑이 하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퀼른의 하늘이 낮아서인지 아니면 성당의 높이가 워낙 높아서인지 첨탑은 금세라도 하늘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인간의 교만으로 지어진 바벨탑은 공든탑이 무너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퀼른대성당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며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신앙 아래 독일 국민은 물론 세계각국의 많은 신자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바벨탑의 붕괴와 함께 인간들의 언어는 혼잡되어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사방으로 흩어져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경건한 신앙으로 하늘에 맞닿아 있는 퀼른대성당은 하나님을 믿는 전세계의 신자들을 하나로 묶으며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하늘의 번영과 영광이 퀼른대성당을 통해 퀼른과 독일은 물론 전 유럽으로 울려퍼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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