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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모든 길은 프랑크푸르트로 통한다는 말이있다. 유럽의 관문으로 독일의 항공 및 육로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과 상업의 도시이기도 하다. 독일 남쪽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가에 들어선 인구 60만명의 프랑크푸르트는 이미 12세기부터 유럽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견본시장을 세우는 등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해왔다. 우리에겐 괴테의 고향이자 프랑크소시지로 익숙해진 이 도시엔 독일 최대의 공항이 있는가하면 금융과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뱅크푸르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매년 많은 세미나와 국제회의가 개최되는가 하면 많은 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에 박람회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다른 도시보다는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파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한 프랑크푸르트는 아침부터 세찬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거친 빗줄기로 가득찬 거리는 마치 강물이 범람한 듯했다. 물살을 가르며 숙소에 도착하고보니 비에 젖은 몰골이 물통에 빠진 생쥐같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니 야간열차에서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어지는 듯 했다. 침대에 누워 빗줄기가 약해지기만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줄어드려 하질 않는다. 오히려 바람마저 거칠게 불어대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침대위에 누운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작고 아담한 방의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얼마후 눈을 떠보니 날씨가 개었다. 하지만 비에 젖어서인지 햇살은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날씨가 안좋으니 마음마저 우울해진다. 흐린 날씨는 깔끔하고 앙증맞은 독일 집들의 모습과 거리마저 퇴색시키고 있었다.

언제 또다시 거친 비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내 여행에 대한 흥미마저 떨어뜨렸다. 볼 것 많고 즐거운 여행길에 발길을 동여맨 흐린 날씨가 밉기만 했다. 우울한 날씨만큼이나 침울해진 기분에 우산을 손에 쥐고 터벅터벅 빗물에 젖은 거리를 헤매다 보니 어느새 뢰머광장에 도착했다.

뢰머광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뢰머(시청사)를 비롯하여 주변건물들이 15세기 독일 건축양식을 띄고 있어 중세독일의 독특한 멋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 계단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인 뢰머
ⓒ 홍경선
중앙의 유스티티아상을 중심으로 고풍스런 문양과 파스텔풍 색깔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뢰머광장의 건물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뢰머(구시청사)이다. 무엇보다 계단모양의 지붕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건물 중앙의 지붕은 7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져있고 양옆으로 6개의 계단이 놓여있는데 마치 계단을 밟고 지붕위로 올라갈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동화속에 나올법한 파스텔톤의 적색을 띠고있는 건물벽도 인상깊었다. 2차대전때 파괴되었던 건물을 원형 그대로 복구시킨 것이라 한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속에 들어온 뢰머의 모습에선 복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의 완벽한 재현으로 오늘날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뢰머는 15세기 초에 프랑크푸르트 시의회가 사들여 시청사로 개조해 사용하기 전까지는 귀족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부는 다른 건물들보다 고풍스러워보였다. 15세기 당시 뢰머에선 신성로마제국의 역대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렸다고 한다. 2층의 넓은 홀 카이저자르가 그곳이다. 156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황제 대관식이 거행된 이래 황제의 넓은 방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이곳에선 대관식은 물론 성대한 연회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52개나 되는 실물크기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모두들 당시 유럽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었다. 즉 이곳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권력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뢰머광장의 앙증맞은 교회
ⓒ 홍경선
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뢰머광장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노란 조명마저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자 고풍스런 멋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건물들의 1층엔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었다. 비만 내리지 않았으면 노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 은은한 향을 음미해 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중세적 분위기를 풍기며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6세기를 거슬러올라 15세기 중세독일을 만나볼수 있는 기회마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건물들의 한가운데에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 상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서있었다. 오른손엔 날카로운 검을 왼손엔 천칭을 들고 있는 그 모습에선 공과 사를 철저히 분별한 채 공정한 판정을 내리려는 다분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위로 감아올린 머리모양과 왼발을 살짝 들어올리며 서있는 모습과 펄럭이는 옷주름의 곡선에선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성미가 느껴진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운 판사의 모습에 반해 금방이라도 죄를 인정할 것 같은 피고가 된 느낌이다.

▲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
ⓒ 홍경선
여신의 발 아래로는 작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이단으로 만들어진 분수대의 물줄기가 비와 함께 쏟아져 내리며 해질녘 뢰머광장의 분위기를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비맞은 태양은 보이질 않고 노란 조명등만이 광장을 밝히고 있었다. 광장에 세워진 15세기 독일양식의 건물들 때문인지 비가 내리는 날의 칙칙함은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다. 안좋은 날씨에도 이 정도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는데 화사한 햇살이 비추는 맑은 날씨라면 얼마나 멋져보일까?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뢰머광장의 아름다움마저 빼앗아간 궂은 날씨가 미운 한편 동화속 그림같은 독일 건물들의 모양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빗줄기 역시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하루종일 날씨가 안좋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욱 크게 남았다. 왠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근처 pub으로 향했다. pub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별차이 없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은 것 빼고는 다들 똑같이 바에 앉아 옆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목구멍에 전해지는 맥주의 시원함에 아쉬움이 녹아내린다. 차가운 빗줄기보다도 더 차가운 독일 맥주의 진한 맛에 허전함마저 이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럴땐 담배생각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해진다. 살짝 주워들은 어색한 독일어로 담배한개피를 빌리면서 옆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서로 담뱃불을 교환하며 월드컵 얘기를 양념삼아 조금은 친해질수 있었다. 자신들이 이기긴했지만 그래도 한국팀의 선전엔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연달아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던 그가 자신이 마시고 있던 술을 추천했다.

아펠바인. 프랑크푸르트의 명물인 아벨바인은 사과로 만든 와인으로 252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보통 4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내는 susser, 맑고 부드러운 맛을 전해주는 heller, 탁하고 황금빛이 도는 alte, 알콜도수는 약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취해버리는 rauscher등이 그것이다.

혀 끝에 닿는 첫 맛은 사과쥬스와 비슷했다. 혀끝으로 달콤함이 전해지면서 시나브로 입안이 화해지는 느낌이 전해진다. 알콜농도 5%에서 전해지는 아벨바인의 사과향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촉촉함을 더해준다. 촉촉이 입안을 적시는 달콤함에 매료되어 연거푸 세잔이나 마셨다. 자기내들의 특산물을 잘도 마셔주는 한국인 여행객의 행동에 흡족해했는지 다같이 잔을 들어올리며 건배를 해주었다. 한순간에 15%의 알콜이 몸속에 녹아흐르고 서서히 취기가 전해져오자 비에 젖은 우산을 접는 것처럼 미련없이 아쉬웠던 비오는 날의 하루를 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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