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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카르스트 지형의 산들과 고즈넉한 시골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방비엥'을 떠나 '루앙프라방'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산들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쏭강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느 정도 낯익은 마을을 벗어나자 슬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버스는 그후 7시간 내내 꼬부랑길을 마치 곡예를 펼치듯이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을 선에 딱 맞게 잘도 지나가는걸 보니 운전사가 베테랑인가 보다.

길의 곳곳에 움푹 패인 곳에서 속도를 늦추며 살짝 피해 가는 등 그 좁은 도로에서 거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수준이었다.

▲ 고즈넉한 시골마을 방비엔
ⓒ 홍경선
라오스 여행의 백미는 아무래도 어디선가 본듯한, 하지만 아직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녹아드는 창밖의 풍경이 아닌가 싶다. 고산족들의 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풍경. 사람사는 모습이 이렇단 말인가. 너무나 신기하게도 하늘과 맞닿은 높은 도로가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름하여 고산족. 그들은 고산족 특유의 복장을 한체 높은 도로 위에 몇 채의 집을 짓고 삼삼오오 모여 벼타작을 하고 있었다. 멀쩡한 평지를 두고 어쩌다 이 높은 산 위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렇게 높은 도로 그것도 가장자리에 보금자리를 튼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왠지 애처로워 보였다. 원래 이들은 '라오퉁'족으로써 이땅의 주인이었는데 중국남부의 난짜오 왕국에서 살다가 왕국멸망 후 이곳으로 이주해온 '라오줌'족에 의해 이렇게 산지로 쫓겨나 화전농업이나 수렵 등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힘이 약한 민족의 비애라고나 할까. 하지만 현대사회에서조차 이렇게 멀리 높은 산위에까지 밀려난 체 힘들게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의 표정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볏짚을 늘어놓은 체 벼 타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서 볏짚을 도로 위에다 펼쳐 놓은 뒤 탁탁 터는 형식으로 행동을 취한 다음 그 자리에 일렬로 쫙 깔아 햇볕에 말리고 있다. 어린 꼬마아이부터 어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몇몇 아이들은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새총을 쏘기도 하고 반갑다며 손을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함이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자칫 지나가는 버스에 파편이 튀기거나 심지어 치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좁은 틈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위험의 연속이다.

높은 산 위의 도로주변엔 닭과 칠면조, 돼지 같은 동물들도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받으며 몸을 씻고 있다. 저만치 조그만 몸집으로 무언가 등에 잔뜩 실은 주머니를 짊어지고 가는 꼬마녀석들이 스쳐지나간다. 표정 하나하나가 그저 밝은 뿐이다. 단지 지나가는 차들만이 행여나 그들이 다칠까봐 연신 크렉션을 눌러댄다.

이보다 더 높은 곳 해발 1000∼1500m 이상의 고지대에는 '라오쑹'족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세기말 무렵부터 중국에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인들과 많이 닮아보였다.

차가 높은 산길을 계속해서 올라갈수록 치열한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로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산의 곳곳에 화전 밭을 일구는 모습이 보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들 고산족들의 삶, 하지만 그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왜이리 평화롭고 정겨워 보이는지.

창밖의 풍경은 마치 영화 '하이랜더'에 나오는 스코틀랜드의 산악지대와 같았다. 여기저기 높게, 그리고 넓게 펼쳐진 산마루 위에 살짝 걸터앉은 구름은 너무도 하얗고, 하늘은 또 파랗다. 그냥 보고 있노라면 맘이 절로 편해지는 전원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아름답지만 눈물겨운 삶의 현장이 드러나는 꼬부랑길을 한참동안 달렸을까?

▲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멈춘 버스 앞에서
ⓒ 홍경선
오후 한시 삼십분쯤 되자 점심식사를 위해 잠시 정차했다. 산 정상부분에는 휴게소인 마냥 여러개의 식당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저만치 앞쪽으로는 여전히 고산족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콜라와 카레로 허기진 배를 떼우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고산족 아이들이 다가와 적선을 했다. 애써 그들을 떼어내며 미안한 마음에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도와주기에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꼬부랑길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며 한참을 좌우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을까? 오랜 산길운행을 끝내고 드디어 슬슬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한참을 돌아 내려갔을까 어느덧 직선도로가 나오더니 세계문화유산 '루앙프라방'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1000년 역사의 고도, 백만마리 코끼리의 나라로 불리우는 고대왕국 '란쌍'의 수도인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것이다.

199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루앙프라방은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역사적인 볼거리가 풍부하다. 멀리 동서로 길게 흐르는 메콩강 아래로 깔끔하게 정돈된 아름다운 고도시의 숨결이 전해진다. 주변경치도 고풍스런 집들과 코코넛 열매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버스에서 내리니 뚝뚝 기사들이 어느새 다가와 게스트하우스로 안내하겠다고 난리다. 라오스 대부분의 지역과 마찬가지로 루앙프라방엔 정규 대중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흥정 후 그들이 데려다주는 숙소에 짐을 푼 후 거리구경에 나섰다.

숙소에서 조금 못미쳐 커다란 사원이 나왔다.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오래된 '왓 위쑤나랏'이란 곳으로 1513년 '위쑤나랏 왕'때 지어진 사원이라 한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 어둑해지려 하고 있다. 본전 안에서는 경을 외는 소리가 들린다. 여러 승려들이 합창을 하고 있다. 옆에 난 문틈으로 살펴보니 중앙에 거대한 불상과 함께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본전 맞은편에는 수박모양의 커다란 탑이 있다.

둥그런 모양의 불탑 안엔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탓 막모(수박불탑)'라고 부른다. 잘 꾸며진 정원 곳곳에는 커다란 탑들이 세워져 있으며 하늘높이 솟은 야자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야자수 숲을 돌아 본전 뒤쪽으로 가니 승려 한 분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 루앙프라방 구시가지의 단편
ⓒ 홍경선
나이 20세. 이름 Ly.

루앙프라방엔 공부하러 왔으며 2주 뒤에 '우돔싸이'로 간다고 한다. 방으로 안내하는 그를따라 조그만 문틈으로 들어가니 같은 승려분들 몇 명이 모여있다. 모두들 낯선 이방인에 대해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반가워했다.

8평 남짓한 공간에는 책상, 선풍기, 침대 등이 놓여있고 벽엔 축구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축구를 대단히 좋아한단다. 대부분 앳되보이는 것이 나이가 어린 승려분들 같았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후 사원에 들어와 불교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라 했다. 전문학교는 아니고 사원이 곧 학교역할까지 병행한다고 한다. 물론 일체의 비용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루앙프라방에는 약 500명정도의 수행승들이 있다고 하는데 대략 5∼6년 정도 공부를 하고 졸업 후 각자 다른 할 일을 한단다.

20세 이전의 수행승들을 novice 라하고, 20세 이후의 승려들을 mong이라 한다. Ly 역시 두달뒤에 집에 돌아가면 마을에서 mong이 되는 기념잔치를 벌여준다고 한다. 그의 소망은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미얀마의 '양곤'에 있는 불교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라 한다. 불교대학에선 세계최고라 하는 그곳은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선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그전에 대사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인터뷰와 필기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이곳 루앙프라방에도 단 두 명만이 시도했다고 하는데 이 사원에서는 자기가 유일하다면서 은근히 자랑스러워한다. 어쨌거나 학위를 받기위해(이들 말로는 불심에 대한 자신의 수양을 증진시키기위해) 미얀마까지 가려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서로 e-mail을 교환하면서 기본적인 한국어를 영어로 적어주었는데 잘도 따라했다. 특히 '이쁘다'라는 단어를 알려달라면서 수줍게 웃는걸 보면 어느 나라의 어떤 신분이건간에 남자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비어라오 두 병을 사다 마셨다. 역시 시원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 지난밤의 피로와 갈증을 한번에 풀어주는 듯했다. 루앙프랑방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밤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언뜻 우리네 시골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겨운 시골의 인심이 묻어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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