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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영국의 대마 비범죄화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아직은 마약이 서구처럼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된 연예인들이나 유학생 등이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하여 국민적 비난이 일었던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흔히 비범죄화는 교통사고 과실 같은 경미범죄, 매춘, 호모, 낙태, 안락사, 국가보안법 위반 같은 정치범죄 등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도에 머물고 있으나, 마약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논의 자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 현실에서 마약의 비범죄화 문제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상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서구에서는 미국과 같은 마약 금압 정책 일변도여서는 여러 다양한 형태로 빚어지고 있는 마약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시각에서 마약의 비범죄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영국이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형태로나마 여기에 가세함으로써 그 성과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몇 차례로 나누어 영국의 마약 비범죄화 추진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마 합법화론 제기(1997년)

영국의 대마 역사

대마는 중앙아시아 원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경작된 동기는 섬유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4500여년 전부터 재배되었으며 기원전 1500년 경 유럽에 전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과거 많은 지역에서 로프 재료로 재배되었으며 헤멜 헴스테드 같은 도시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하기도 했다.

1563년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60 에이커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지주들은 반드시 대마를 재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5파운드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대마가 흥분과 도취의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헤로도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425년 경 스키티아 인들이 대마를 뜨거운 자갈밭에 심어 목욕물에 증기를 내어서는 그 속에서 "도취되어 소리지르는" 모습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주치의 러셀 레이놀즈는 대마를 여성의 월경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처방하였다. 그는 '란셋' 첫 호에서 대마를 정제해서 조심스럽게 관리만 해주면 가장 귀중한 등급의 약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870년 대마는 '미국 약전'에서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는 약으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마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불법화된 것은 1928년이었으며 당시 헤로인과 아편도 함께 불법화되었다. 1980년 폴 매카트니는 대마 소지 혐의로 일본에서 열흘 동안 감옥생활을 한 바 있다. 1993년 헴프코어 사는 국무부 측이 산업용 대마재배에 대한 규제를 풀었을 때 최초로 대마재배 면허를 획득한 영국 회사가 되었다. 같은 해 영국 국무부 마이클 하워드 장관은 대마 소지에 대한 벌금 최고액을 5백 파운드에서 2500 파운드로 인상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마침내 2002년 7월 영국에서 대마 비범죄화를 위한 대마 등급완화라는 일보 전진 조치가 이루어졌다. / 문성호
우선 영국에서 대마 합법화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7년이었다. 이미 1968년 영국 국무부의 대마의 효능에 관한 조사결과를 담은 '우톤 보고서'가 결론에서 "대마로 인해 폭력범죄, 공격행위, 반사회적 행동 등이 초래되거나 그와는 다르더라도 정상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의학적 치료를 요하는 중독이나 정신병을 초래하게 만든다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그 후 거의 30여 년 이상 재배, 생산, 소지, 의사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공급하는 등의 행위가 불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토지를 대마 재배, 제조, 공급, 대마흡연 등으로 쓰이도록 제공하는 것도 범죄로 규정되었다.

법적으로 이렇게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적이다시피 한 영국의 대마 사용자들에 의한 소비량은 1997년에만 해도 연간 8백톤에 이르며 금액으로는 35억 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B급 대마를 밀매하다 붙잡히면 최고 14년형을, 소지하다 붙잡히면 최고 5년형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5년 전인 당시 영국 국무부 연구결과에 따르더라도 16-59세의 대마 사용 인구는 그전 10년 동안 두 배로 늘어 약 4백만 명에 이르며 대부분 국민들이 습관성이 없는 대마 사용을 성장과정의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고 있음이 밝혀졌다. 대마가 불법임을 감안할 때 대다수 연구자들은 정부측 서베이가 실제 마약 사용자 수를 크게 밑도는 것으로 밖에 밝혀내지 못했다고 보았다.

1997년 11월 당시 공개된 영국의학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대마를 사용하는 의학적 동기가 있는 법인데 이에 대하여 경찰과 기소당국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치료 목적의 대마사용'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처방약을 통해서는 치료효험을 기대할 수 없을 때 대마 제품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증상들이 있다고 하는 의학적 조건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마 과용으로 인한 치명적인 위험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한다. 1997년 당시 동물실험 결과에 따르면 대마 과용으로 사람이 죽는데는 매우 많은 대마를 하는 사람의 1주 동안의 사용량보다 1백배 가량 되는 양, 즉 1.5 파운드 무게의 대마를 한번에 투약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영국 정부당국 역시 대마가 해로운 부작용은 거의 없다는데 동의하면서도, 대마로부터 시작하여 보다 습관성이 큰 마약 사용으로 가는 관문이 된다는 논리가 매우 강력하게 지배해왔다. 물론 그와 같은 논리가 연구 결과로 입증된 바는 없었다. 대마 합법화 운동 편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대마 같은 마약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한 점이야말로 국민들이 다른 지하 불법마약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2001년 총선 때도 그랬지만 1997년 총선 당시에도 노동당 선거강령에서 마약문제에 강력히 대처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던 당시 국무부 잭스트로 장관은 습관성이 없는 연성 마약 사용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대마의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에 대하여 '무책임'하다고 주장하였다.

1997년 당시 잭 스트로 장관은 "소량이 대마 소지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무책임하다고 보는 것은 밤이 지나면 낮이 밝아오는 것처럼 마약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정부의 마약퇴치 운동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웨스트 요크셔 자치경찰청장 케이트 헬라웰이 '마약퇴치정책 조정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미국식의 '마약퇴치 황제'와 같은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직책이다. 금년 7월 초 블렁킷 장관이 대마의 등급완화조치를 발표하자 그는 반기를 들고 항의의 표시로 마약정책 책임자 직을 사임하였다.

이렇게 영국정부는 대마 사용 척결을 위한 노력을 강력하게 계속하고 있었던 반면, 5년 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디펜던트지 일요판은 리차드 브란손과 폴 매카트니를 포함한 저명인사 동조세력 등과 함께 대마를 비범죄화 해야 한다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왔다.

대마 합법화를 위한 '국제대마회의 개최'(1998년)

1998년 9월 4일 런던에서는 마약전문가들이 모여 제1회 국제대마회의가 개최되었다. 즉 150명 이상에 이르는 과학자, 의사, 학자, 법조인 등이 모여 세계적으로 금방 닥쳐올 대마 비범죄화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마약 합법화를 지지하는 운동가들이 조직한 당시 국제회의는 각국 정부측에 대해 향후 10년 이내에 실질적인 비범죄화가 이루어질 것이므로 새로운 대마 규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런던 중심가에 있는 리젠트 대학에서 개최된 1998년 당시 국제대마회의는 영국의 마약시민단체 '릴리스'와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마약정책연구소 '린드스키스 센터' 공동주최로 개최되었었다. 당시 회의의 연사는 영국마약의존문제연구소 소속 니콜라스 돈 박사 및 암스텔담 대학의 피터 코헨 교수, 캘리포니아 대학 크레이그 레이너만 교수 등이었다.

영국의 마약문제 및 법적 자문을 해주는 시민단체인 '릴리즈'(Release)의 사무총장 마이크 굿맨 씨는 "대다수 저명 과학자, 의학자, 정책전문가들은 추가적인 마약피해를 예방하는 동시에 개인의 시민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대마 금압 정책에 대한 대안이 개발되어야 한다는데 의견들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 수준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비범죄화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국제대마회의의 목적은 대마 보급과 확산을 규제하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가를 정하는 데 모아지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대표단 소속의 타이 트리펫(Ty Trippet) 씨는 "대마 금압 정책은 이롭기는커녕 오히려 더 해롭다고 보아야 합니다. 달리 보면 전혀 범죄자가 아닌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어버리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며, 시민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침해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 정부측에 대해 대마규제에 대하여 새로운 접근법으로 전환토록 요청하면서, 각국 정부는 대마가 오남용되지 않으며 엉뚱한 사람들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시민들이 이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대마를 책임지고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대마는 금지 일변도의 대상이 아니며 비범죄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그 다음 영국이 바짝 뒤쫓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대마가 의료목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타이 트리펫 씨는 "영국에는 국민적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대마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고조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인디펜던트지 일요판에서 대마를 비범죄화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데 대하여 여론의 호응이 크게 일고 있는 사실을 들어, 향후 영국이 이 문제에 관한 한 다른 나라의 등대 혹은 봉화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징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의 상원이 1998년 후반기 이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그동안 영국정부는 일관되게 대마의 비범죄화를 반대해왔다.

스코틀랜드 자치경찰청의 대마 논쟁(1999년)

스코틀랜드 지역의 한 자치경찰청장은 1999년 4월 대마 사용이 계속해서 범죄로 다뤄지도록 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새로운 논쟁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다. 마약문제와 관련하여 대마와의 싸움은 이미 졌다고 지적한 당사자는 바로 스코틀랜드 로씨안 앤 보더즈 자치경찰청장 톰 우드 씨였다. 그는 에딘버러 회의 석상에서 중앙정치무대의 의원들은 대마 문제를 전혀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회의는 '스코틀랜드 범죄자 보호 및 재활 위원회'라고 하는 형사사법 관련 시민단체가 주최였다.

스코틀랜드 그람피언 카운티 통합자치경찰위원회 패트 차머스 위원장은 이 회의에서 마약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바보 얼간이 같은 마약 근절 메시지'는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으며 대마는 합법화되어야 하고 나아가 담배처럼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지역의회 수준에서나마 마땅히 이 문제를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며, "전국 규모의 토론회에서 마약문제와 대결할 마음이나 용기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은 전혀 없습니다. 이 문제를 제기했던 개개 정치인들은 소속당의 당수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어왔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회의가 끝난 후 우드 청장은 개인적으로는 패트 차머스 위원장 지적에 공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관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로씨안 앤 보더스 자치경찰청 대변인은 나중에 청장의 지적을 '명확히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드 청장은 당시 다른 기관들의 입장을 개진하는 전문가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하게 되었다면서 논의 진행에 보탬이 되도록 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참석자들이 대마와의 싸움이 이미 실패했으며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우드 청장은 그와 같은 견해에 공감을 표시하고 개인 자격으로 발언하게 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당시 해당 자치경찰청 성명은 당시 토론이 어느 정당도 대마의 비범죄화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한 학문적 논의"이며 "소득 없는 토론방향"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우드 청장은 경찰관들의 역할은 법을 집행하는데 있으며, 법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그람피언 자치경찰청 대변인은 경찰은 통제대상인 마약의 비범죄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마의 비범죄화 문제는 1999년 당시 보수당 측이 자유민주당 짐 월레스 당수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선거 쟁점이 되었다. 보수당 마약정책 담당분야 대변인 아나벨 골디는 대마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월레스 자유민주당 당수의 말을 듣고 '소름끼치는 무서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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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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