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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무원노조와 행자부

우리나라에서 경찰노조가 허용되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찰노조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 단체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미리 상상해 본다는 게 도대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의 경찰노조가 단체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어떤 수단을 동원하는가를 살펴보는 것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곧 합법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일반 공무원노조의 합법화 방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경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달나라 얘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현재 모두 국가공무원이며 지방자치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치경찰이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노조를 허용한다면 단체협상 파트너는 지방자치단체와는 상관없으며, 중앙부처인 경찰청, 행자부, 재정경제부 등이 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경찰노조를 허용해야 한다면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것과 병행하는 것이 그나마 중앙정부가 단체협상 파트너가 되는 과도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공무원노조 결성 및 합법화 과정에서도 여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행자부 밑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는 중앙 행정부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공무원노조 지지를 선언한 조승수 울산 북구청장에 대하여 행자부 측이 12일 경고조치한 데 대해, 조승수 북구청장을 비롯한 '공무원노조 기본권 쟁취를 위한 울산 공대위' 측은 이러한 행자부의 조치가 지방분권화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공대위 측은 행자부의 경고조치를 "행자부의 감사와 예산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협박에 가까운 망발"로 규정하고 지방자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행자부의 축소, 혹은 폐지 활동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승수 북구청장 역시 이번 경고조치가 지방자치 단체를 통제하려는 행자부의 구시대적 발상이며 '중앙관료의 수구적 저항'이라 규정하고 "행자부의 존재 자체가 바로 지방자치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므로 기구를 폐지하거나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노조가 결성되는 과정에서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행자부가 이를 경고하고 예산지원을 삭감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단체장의 지위를 무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 자체가 실상 "사이비" 지방자치에 불과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행자부의 경고조치는 그 흔한 무슨 위원회 심의와 결정 절차를 통하여 내려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치경찰과 경찰노조가 도입되는 경우에도 경찰청이 존폐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치경찰제를 실시하는 나라 치고 자치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중앙부처 단위로서 경찰청을 두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국도 미국도 경찰청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자 했을 때 경찰청의 존폐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되 FBI 같은 기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찰청은 이런 논의에서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법무부는 당시 만일 우리나라가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면 미국처럼 법무부 산하에 FBI 같은 조직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자치경찰제가 되어서도 여전히 국가경찰위원회 산하 경찰청을 존속시키거나 법무부 산하 FBI 같은 조직을 추가하는 것 모두 공론화 과정과 각계의 진지한 논의를 통해 결정토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경찰노조의 파국 해결절차

이제 우리나라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어 공무원 권익대변이라는 자기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상을 벌여야 한다. 미국경찰노조의 단체협상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허용될 경찰노조뿐 아니라 곧 합법화 될 것으로 기대되는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경찰노조의 단체협상에 있어서 양측이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일종의 "파국"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그럼 이때 파국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파국이 해결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 사기업 부문에서도 그러하지만 미국경찰노조는 이런 경우 흔히 파업에 돌입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용자 측에서 직장폐쇄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 및 특히 경찰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파업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많은 파국해결절차들이 만들어져 왔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조정 절차이다. 조정이란 양측이 중립적 제3자를 내세워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는데 합의하는 경우에 동원되는 일종의 자발적인 해결법이다. 미국의 노동부 산하 연방조정국 측은 조정업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 조정당국의 권고사항들은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사실확인 절차이다. 사실확인 절차란 일종의 조정과 유사한 것이다. 이는 중립적 제3자가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도록 돕는데 동원되는 자발적 절차이다.

셋째, 중재 절차이다. 중재란 제3자가 양측이 모두 받아들여만 하는 해결책을 결정하는 강제적 절차이다. 여러 주의 법에는 중재절차가 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흔히 특별노동법원의 형태로 되어 있다. 미시간 주의 경우 파국은 미시간 고용관계위원회 측이 그와 같은 특별노동법원의 역할을 맡도록 되어 있다. 네브라스카 주의 경우 노사관계위원회가 맡고 있으며 파업을 예방하기 위하여 강제적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경찰의 파업권 부여 논란

경찰노동운동에서 파업이란 가장 논쟁적인 차원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은 절대로 파업권을 가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파업은 경찰에게 비직업적인 것이며 국민들에게 중대한 위험을 야기한다고 본다.

실제로 영국 경찰노조는 파업권이 없다. 물론 영국경찰의 경우에도 봉급이나 수당 같은 근무조건 문제 혹은 경찰권한의 강화 요구 같은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위해 비번인 경찰관 수 천 명 혹은 수 만 명이 집결하여 시위하거나 행진하는 것은 파업과는 별개로 인정되고 있으며 흔히 실행에 옮겨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경찰노조 측은 경찰 역시 다른 노조와 마찬가지로 파업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한 사람이 노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노동하는 노동자로서 고용자에게 합의에 도달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최종 무기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경찰노조 지도자들이 파업에 반대하는 실제적인 이유는 해당 주에 있어서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지역주민들 여론이 경찰파업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의 대다수 주들의 법률들은 구체적으로 경찰의 파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러한 상황에서도 경찰의 파업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예컨대 뉴욕의 경우 공무원 파업을 금지하는 가장 강력한 법률을 가지고 있는 주들 중 하나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공랍학교 교사, 보건당국 노동자 등의 파업을 막지 못하고 있다.

미국경찰노조의 "준법행동"

미국의 경찰관들은 실제로 파업하는 대신, 가끔 비공식적 파업 혹은 "준법행동"을 벌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준법행동이란 통상적으로 각 경찰관들에게 맡겨져 있는 임무를 고의로 방해하며 사보타지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많은 미국의 경찰관들이 독감을 핑계로 하여 아프다고 주장하면서 업무에 나서지 않는 경찰의 비공식 파업을 일컫는 이른바 "블루 플루"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공식적인 경찰파업이 아니면서도 사실상 파업에 준하는 준법행동에 속한다.

미국경찰이 실제로 사용하는 준법행동 수단들을 보면 그 상당수가 경찰이 교통위반 딱지 끊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엄청난 교통위반 딱지를 끊음으로서 시 당국에 대해 압력을 가하기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재량권을 십분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실제 경찰파업 사례

미국에서 실제로 경찰파업이 일어나면 해당 커뮤니티에 대해 일대 위기가 닥친다. 볼티모어(1974년), 샌프란시스코(1975년), 뉴올리안즈(1979년) 등지에서 단행되었던 미국경찰파업은 폭력사태와 소요사태를 야기했었다. 많은 주들의 경우 상당수 경찰관들이 해당 커뮤니티에 대한 의무감에서 여전히 근무에 임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실제로 경찰파업을 단행했을 때 엄청난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발생하는 것은 비교적 매우 드문 편에 속한다. 미국에서 공립학교 교사들은 경찰보다 훨씬 더 자주 파업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으며 교사파업은 경찰파업보다 약 10배 정도나 더 자주 일어날 정도이다.

앞으로 미국에서는 경찰파업이 점점 더 드문 현상이 되어갈 지도 모른다. 경찰노조가 맨 처음 설립되었던 약 20여 년 전 당시 미국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경찰파업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노조 측과 경찰경영자 측은 파업으로까지 가지 않고도 양측의 입장차이를 어떻게 하면 더 좁힐 수 있는가에 대하여 비공식적 이해를 서로 잘 구해나가게 되는 경향이 많다.

우리나라 경찰노조

만일 조승수 울산 북구청장은 우리나라에도 행자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울산 북구 소속 지방공무원들의 공무원 노조 결성 및 단체협상 요구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가 노조 출신이지만 성숙한 노사 문화 만들기에 유리한 점은 있겠지만 그 역시 이제는 사용자로서 새로운 입장에서 단체협상을 풀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찰이 자치경찰제가 실시되고 경찰노조마저 허용하는 때가 온다면 그때의 경찰서장이나 지방경찰청장은 자치경찰노조와의 단체협상을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 역량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때 가서는 경찰노조를 단체협상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은 극히 초보적인 상식에 속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myhome.naver.com/ilpyung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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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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