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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조는 독립군, 경찰은 일경"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노조가 법외노조 형태로나마 설립되었다. 하지만 경찰은 노조 설립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 오히려 공무원 노조 진압을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공무원 노조원들을 잡아들이는 법집행의 악역을 맡고 있다.

공무원들의 인터넷 공간인 다산방의 경찰방에는 며칠 전 경찰에게도 공무원 노조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호소"라는 아이디의 이 공무원 노조원은 공무원 노조가 살아야 경찰도 살 수 있다며 "정권의 하수인 역할"은 그만하고 "참 공직사회개혁"을 함께 하자고 촉구하면서 "오늘(4월 6일) 또 노명우 동지를 연행하셨더군요"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마치 독립군을 잡아들이는 왜정 때 일경이 연상된다며 경찰의 공무원 노조 동참을 간곡히 호소하였다.

이에 한 경찰관은 경찰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어 곧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는 주 5일 근무제 대상에조차 끼지 못하고 있다며 경찰이야말로 "밤새고 동원되어서 시간당 몇 백 원 받고 근무 서야하는 말도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 시간외, 야간 수당 제대로 못 받는 직업 1 순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경찰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답변을 달았다.

이 경찰관은 지금 공무원 노조에 경찰관 동참을 호소하는 것은 "(선택권 없는) 수저를 보고 왜 너는 나를 잡는 거냐?"라는 수저론을 내세우며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너그러이 봐주시고 저희도 공무원인 것 잊지 말아 주시고 염치없지만 저희도 신경 써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나마 같은 공무원끼리 법외 공무원 노조원과 노조가입 대상에서 법적으로 제외되어 있는 경찰간에 이렇게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는 나지막한 대화를 엿듣는 것은 그들의 힘찬 연대가 조만간 가시화될지도 모른다는 그야말로 가느다란 가능성을 점쳐보게 한다.

하지만 공무원 노조가 "대한민국 최악의 직업"인 경찰을 과연 어떻게 신경써 줄 수 있을까? 일반공무원 역시 실상 법외노조 형태로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낱 "수저"에 불과한 상태 아닐까? 노조운동사에서 무임승차론이나 혹은 노동귀족론 등이 갖는 부정적 의미를 처음부터 갖게 되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 노조가 합법화되면 가입대상에 경찰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단체협상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경찰 중에서 과연 누가 공무원 노조에 이런 요청을 할 것인가? 현재로서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공무원 노조가 합법화되고 난 후에나 경찰노조 설립 움직임이 경찰 내부에서 싹터 나올지도 모른다.

미국경찰노조 단체협상

경찰노조가 아예 불법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수십 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미국경찰노조의 단체협상은 기본적으로 전국 수준이 아닌 개개 노조와 해당 지방자치단체나 자치경찰국 측과 해당 자치경찰노조 대표 사이에서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체협상 역시 많은 참가자들이 참여하며 각기 다른 여러 단계들을 거쳐야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경찰노사관계라는 주제로 열린 미국의 어느 한 전국 규모의 심포지엄에서는 이 단체협상이라고 하는 게 일년 365일 내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미국경찰노조의 단체협상 절차의 공식적인 참가자는 한편으로는 경찰노조 대표 및 다른 한편으로 사용자 측 예를 들면 해당 도시 지방자치단체의 대표, 이 양측이 된다. 바로 이 양측은 협상대표팀이 된다.

미국에서 공무원 부문 그중에서도 특히 경찰과 관련하여 다른 비공식적 참가자들도 있다. 경찰국장의 경우 일부 사안에 대하여 발언권이 있으며, 단체협상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경영 팀에게 자신의 경찰국 관리와 운영이라는 경영권을 제약할지도 모르는 어떤 사항에 대해서도 양보하지 말도록 촉구하게 된다.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 의원들은 경찰관의 봉급과 수당과 관련하여 예산 편성에 동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공식적 참가자 범주에 속해 있다.

일반 지역주민들 역시 비공식 참가자에 속한다. 미국의 경찰노조 단체협상의 많은 사례들에 있어서 주민들의 세금인상 반대로 인해,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제시하고 경찰노조가 요구하는 봉급과 수당 인상을 위한 단체협상안 합의에 대해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곤 한다.

협상 단계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경찰노조 단체협상은 여러 단계들이 포함된 매우 폭넓은 절차이다. 첫째 협상준비 단계이다. 양측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결정하며 특별제안들을 개발해내고 협상 대표팀을 꾸린다.

둘째 공식적 협상 단계이다. 양측 협상 대표팀들이이 만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셋째 파국 단계이다.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때 파국이 오게 된다. 이 파국이 다시금 조정을 거쳐 해결되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단체협약서 관리

일단 단체협약서가 조인되면 이때부터는 단체협약서 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는 연속되는 과정으로 일년 365일 계속되는 과정이다. 양측은 일반적으로 별도의 단체협약 관리자를 두도록 하고 있다.

일상적 수준에서 보면 단체협약서 상의 용어를 둘러싸고 견해차가 있게 되며 특정 이슈가 망라되어 포함된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경찰국장은 네 번째의 새로운 순찰팀을 신설 운용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경찰노조 측은 그 방안은 해당 경찰관은 다른 시간대에 노동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국장은 네 번째 새로운 순찰팀을 창설하는 것은 경영권에 속한다고 대꾸할 것이다. 양측은 이와 같은 이견을 비공식적으로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비공식 대화에서도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단체협약서에 따른 고충처리 절차로 이행하도록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단체협약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공식적인 고충처리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이 고충처리 절차의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미국 경찰연구소가 출간한 마이클 레이스빅과 로버트 클리스멧 공저의 '경찰노조 관련법').

미국경찰노조 단체협상의 고충처리 절차

고충 건이란 타운, 마을, 도시 혹은 카운티 지방자치단체 측이 경찰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조정 해결되도록 해야하는 문제제기이다.

제1단계 : 고충 건 제기는 경찰노조, 경찰관이 경찰국장이나 경찰국 제1부국장에게 서면으로 해야 하며 제기 후 10일 이내에 서면으로 경찰노조에 답변토록 해야 한다.

제2단계 : 이 답변에 대해 경찰노조나 경찰관이 만족하지 않을 경우 경찰국장의 답변 사본과 함께 고충 건을 타운, 마을, 도시 혹은 카운티 시장에게 서면으로 다시 제기해야 하며 제기 후 10일 이내에 시장은 서면으로 경찰노조 혹은 경찰관에게 답변토록 해야 한다.

제3단계 : 그래도 고충 건이 해결되지 않으며 고충 건이 이른바 단체협약서의 명시적 조항을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이 위반하였다는 고발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 경찰노조는 고층 건을 서면으로 [미국중재위원회]에 중재위원회 규정과 훈령에 따라 고충 건을 조정하기 위한 중재자 선정을 요청해주도록 하는 중재 제기를 할 수 있다.

중재자 측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으로서 단체협약 양측에게 구속력을 가진다. 중재자의 중재료와 제반 비용은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과 경찰노조 양측이 똑같이 부담토록 한다.

중재자 권한의 한계

중재자 측은 단체협약 조항의 어느 조항에 대해서도 첨가나 변경을 가할 권한이 없으며, 이 단체협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을 구속하고 있는 법률, 규정, 훈령 등과 충돌하거나,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우게 만드는 어떠한 결정도 내려서는 안된다.

중재자에 대한 보수는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에 대하여 서면의 고충 건에 대한 처리업무 개시 2주전 이상으로 소급하여 지급될 수 없다.

시간의 제한

서면 고충 제기 건 사본이 고충 건을 제기하게 만든 행위, 사태나 사고 등이 발생한 지 2주 이내에 타운, 마을, 도시 또는 카운티 측에게 제시되지 않는 경우 혹은 고충 건이 서면으로 경찰국장 또는 지정된 경찰국 제1부국장에게 서면으로 고충 건을 제기한 제1단계의 기일이 지난 이후 60일 이내에 미국중재위원회 측에 제출되지 않는 경우, 해당 고충 건은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며 중재 제기권은 소멸하는 것으로 본다.

미국의 경우 경찰관 징계절차와 관련된 모든 분쟁은 공무원법 제75조에 따라서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경찰노조, 경찰권력의 한 축

실상 이런 미국경찰노조 단체협상 과정은 우리나라 일반 기업체 혹은 공공노조의 단체협상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단체협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온갖 역동적인 측면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할 것이다.

미국에서 단체협약서 관리는 미국경찰노조 운동이 미친 가장 중요한 영향과 파급효과들 중 한가지 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즉 경찰노조는 바로 단체협약을 통해서 경찰국장의 권한을 크게 약화시켰던 것이다. 경찰국장은 어떤 사항들은 단체협약서가 명시적으로 금지시켰기 때문에 이를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된 것도 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항들의 경우에는 단체협약서가 애매 모호하게 되어 있어서 경찰국장은 경찰노조와 비공식적인 조정과 해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도 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간에 미국의 각급 경찰국장들은 일부 사항들에 대해서는 이제 경찰노조와 권한을 나누어 가져야만 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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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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