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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회(五松會)'사건의 희생자들이었던 채규구, 전성원 씨 등 관련자 7명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되찾았다.

민주화 보상심의위는 오송회 사건에 연루된 9명 중 조성용(66), 전성원(47), 박정석(58), 채규구(51), 이옥렬(49), 엄택수(51), 황윤태(51) 씨 등 7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이른바 오송회 사건은 군산제일고교 전·현직 교사 9명이 모여 김지하 시인의 시집 '오적'을 낭송하고 시국에 관한 토론을 한 모임을 이적단체로 보아 국가보안법을 적용, 지난 82년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오송회 사건은 지난 80년대 정치, 사회 등 시대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한맺힌 20년의 세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겠지만 그들은 '빨갱이'로 낙이찍힌 채 살아왔다.

심지어 이들 중 주모자로 인정돼 고문과 7년간의 수감생활을 했던 이광웅 씨는 감옥에서 겪었던 고통 때문에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출소한지 5년만에 자신의 시처럼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오송회 사건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지난 1982년 11월 2일 저녁무렵 군산제일고등학교 근처 시강에서 당시 교사였던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황윤태, 이옥렬 씨는 우연히 어울려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사라는 사람이 들이닥쳐 조사할 것이 있다며 이광웅 선생을 강제로 연행해 갔다.
이어 5일에는 강상기 씨가 전북도경 대공분실로 연행돼 갔으며, 사흘뒤 8일에는 황윤태, 이옥렬, 엄택수, 채규구 씨가 차례로 불려 들어갔다.

심문과정에서 수사관들은 서로를 이간질 시키는 수법을 동원하는가 하면 포승줄과 쇠파이프 등을 보여주며 갖은 협박과 고문을 자행했다. 강상기 씨는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는 책을 통해 당시 수사관들이 자행했던 고문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다음은 강 씨의 당시 기록이다.

"완전히 나체로 만들어 두 손목을 묶고 무릎에 깍지를 끼우게 해 쇠파이프를 무릎과 팔사이에 넣은 채 공중에 띄워놓고 양쪽 엄지손가락에 전깃줄을 감고 하는 전기고문, 이와 동시에 얼굴에 수건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부어 호흡을 가로막은 물고문, 이른바 수사관들의 말대로 비행기 고문, 통닭구이 등의 고문을 하면서 '네가 무슨 불만이 있어서 정부를 비판하였느냐? 빨리 큰 것 하나 내놓아라!'라고 다그쳤다.

또 '앞으로 이광웅이로부터 들은 불순언동이 없으면 2차, 3차로 계속 고문하겠다. 이것은 맛만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하며 수사관은 나갔다. 그때 수사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바닥에 놓인 쇠파이프를 들어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분노가 끌어 올랐다. 또 내가 석방돼 나가면 너의 일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강 씨의 경우는 나은 편.
주모자로 몰린 이광웅 씨와 박정석, 전성원 씨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고문은 검찰에 송치된 1982년 12월13일까지 무려 40여 일간에 걸쳐 계속됐으며, 말할 수 없는 공포상태, 의학적으로는 파라노이아 상태에서 조작된 허위진술에 동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들은 '빨갱이'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12월8일 전북도경의 발표내용은 9일자 전국 도하신문의 1면과 사회면, 사설란을 장식했다. 내용은 이렇다.

'전북도경은 고교 교사를 중심으로 불온이념 서클인 오송회를 조직, 용공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암약해온 오송회장 이광웅 씨 등 군산 모고교 교사 8명과 모방송국 방송과장 조성용 씨 등 모두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이 동조세력인 고완곤, 고환규, 최정식 씨 등 동료교사 3명을 같은 혐의로 입건하고 안춘기 씨를 훈방했다.'

이외에도 언론들은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을 노려 수업중 슬쩍 용공사상 주입' 등 갖가지 용어를 사용해 이들의 진상을 왜곡 보도했다. 그 와중에 6개월만인 83년 5월 하순 전주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가 있었다. 보안법사상 유례없는 감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전주지법 이보환 부장판사는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씨만을 제외한 6명을 선고유예로 석방시켰다. 이 당시 당사자들은 내심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광주에서 열린 2심에서 관련자 9명의 형량이 많게는 3년에서 적게는 1년까지 추가됐다.
대법원에서 조차 상고가 기각되고 선고유예로 풀려났던 일부 교사들은 다시 잡혀 갔다.

세월이 흘러 5공 정부가 물러나고 6공 정부가 들어선 88년 2월까지 7년여동안 이들의 암흑같은 시간들은 계속됐다. 그 후 88년 2월27일 '전원사면복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햇볕을 보게 됐으며, 20년만인 오늘 민주화 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한편, 이 오송회 사건으로 5년간의 옥고를 박정석 씨는 현재 학원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성원 씨는 전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또 황윤태 씨는 음료회사 대표로 이옥렬 씨는 건설회사, 채규구 씨는 교사, 엄택수 씨는 미술가, 조성용 씨는 전북여성중등교육원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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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 조금씩 글을 쓰고있고 kbs라디오 리포터로 활동하였고 지금은 군산청소년성문화센터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따뜻한 소식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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