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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책방. 새책방 없는 헌책방은 없습니다. 그런데 뒤집어서 헌책방 없이 새책방만 있어도 책 유통과 문화에서 한 쪽 구멍이 막히기에 이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지요. 모든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 개인연구가와 개인연구가가 아니라도 소중하고 좋은 책을 개인으로 사서 갖고픈 이에겐 절판되거나 더는 유통되지 않는 책들을 헌책방에서만 찾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에게도 헌책방 역사가 조금씩 깊어갑니다. 그래서 새책방에서도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을 헌책방에서도 만나기도 합니다. 꾸준히 사랑받는 아름다운 책들은 새 책이나 헌 책을 가리지 않고 잘 팔리지요. 갓 나와 반들거리고 깨끗한 책이 좋다면 새 책으로 사고, 돈이 좀 궁하거나 다른 사람 손길과 때탄 책을 더 정겹게 여기는 사람은 헌 책을 살 수 있지요.

이런 것도 사람 성격이 아닐까 싶어요.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 <객주> <장길산> <임꺽정>처럼 긴 이야기를 한 권씩 푼푼히 모은 돈으로 사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푼푼이 돈을 모아서 사기 어려운 이는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며 한 권씩 "누군가가 애틋하게 읽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내놓아" 나온 책을 찾아서 짝을 맞추어 읽습니다. 좀 철이 지났다 싶어 헌책방에 짝맞게 다 나오기를 기다려서 사는 사람도 있고요.

이 세상에 사람만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과 모든 생명체가 어울려야 삽니다. 사람은 환경 안에 있는 임(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린 사람만이 마치 가장 뛰어나고 환경을 지배하고 파헤쳐도 좋은 양 생각합니다. 이런 못나고 가벼운 생각을 책 한 권을 애틋하게 읽으며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어느 헌책방에서 보고 겪은 일입니다. 이 날은 명절을 맞이해 아이를 이끈 젊은 가시버시가 여러 쌍 찾아왔지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책을 참 좋아합디다. 그런데 하나 같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책을 마주하는 모습은 다 다르더군요. 어느 아이는 헌책방에 와서 자기가 다 본 책을 `휙'하고 아무 데나 내팽개칩니다. 책꽂이에서 꺼내본 책도 그냥 아무 데나 쌓아두고요.

이 아이 부모는 헌책방 임자분에게 책값이 뭐 그리 비싸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부모가 비싸다고 한 책값은 `한 권에 천 원을 줘도 비싸다'는 거였더군요. 헌책방 임자분은 책은 저마다 제 값어치가 있기에 그 값어치를 함부로 깎아서는 안 되며, 이 곳-헌책방-에 있는 책은 내 재산이기도 하고 내 자신이기도 한데 그렇게 막말을 하지 말아달라, 책을 볼 마음가짐과 생각을 갖추지 않았으면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그 부모는 자신이 고른 책이 꼭 쓸모가 있었는지 그런 말을 듣고 이런저런 말다툼을 하면서도 책을 사갔습니다.

그 부모와 아이가 가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젊은 가시버시가 들어왔죠. 그런데 이 부모가 데려온 두 딸아이는 앞서 온 아이와 사뭇 다릅디다. 동생이 자기가 본 책을 가지런히 제자리에 두지 않으니 언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 주면서 조막손으로 잘 갈무리하기도 하고 자기들 마음에 든다는 책을 두 손으로 가슴에 꼭 안고 책방 안을 이리저리 헤집습니다. 앞서 온 아이보다 적어도 서너 살은 더 어린 아이들이었건만 책을 보는 몸가짐은 아주 다르더군요.

3.

추운 겨울입니다. 눈도 많이 왔습니다. 거님길을 걷는 일도 힘이 들지요. 책방도 다니고 눈온 거리를 구경하려고 서너 시간 얼음길을 걷다 보니 허리가 욱씬욱씬 쑤십니다. 눈도 많이 온 겨울에 헌책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곳저곳 다녀 보았습니다.

어느 헌책방은 많이 온 눈이 녹으면서 책으로 스며들어 난롯가에 책을 펼쳐놓고 말립니다. 날도 추워지니 책방 문도 꼭 닫고 책방 안에 하나 피워둔 난롯가에 책손님들이 옹기종기 둘러 서 있습니다. 날씨 추운 날 책을 보자면 손도 시렵고 뱃속도 허전하지 않을까 싶어 국화빵을 사들고 어느 헌책방에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날이 추운 탓인지 문을 좀 늦게 여는 어느 헌책방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그 모습을 담기도 했죠.

이제 <헌책방 사진이야기> 셋째 이야기를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 * 사진은 이오에스-5 사진기에 조리개값 1.8인 50미리 렌즈를 써서 찍었습니다. 눈 내린 헌책방 모습을 삼각대 없이 찍으면서 조리개값을 1.8로 해서 감도 400이나 3200 짜리 흑백필름을 썼고요. 때깔 있는 사진도 모두 감도 400 필름으로 찍었습니다. 헌책방은 빛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감도 100이나 200 필름으로는 플래쉬를 터뜨려야만 찍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일이 있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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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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