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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방을 찾아갈 때 느낌

지하철 5호선 목동역에서 내려 영등포여상쪽으로 나오면 헌책방을 서너 군데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찾아가지 못하다가 눈이 펑펑 쏟아지기 앞서인 지난 흙날(토요일, 6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찾아갔습니다. 사무실 갈무리를 하느라 눈길둘 일도 많고 할 일도 많으며 일도 나날이 늦게 끝나다 보니 책방을 찾는 일도 퍽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헌책방에 가서 반가운 책을 만나면 다시 기운이 나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엔 신문을 보다가 조재수 씨가 남-북-연변을 아우르는 낱말책을 펴냈다는 소식(신문광고로 봄)을 보고 참 기뻤답니다. 볼 만한 `새 책'이 없다고 느끼던 때였던 만큼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더구나 남북 분위기가 많이 좋아지긴 하면서도 좋아지는 분위기를 북돋우는 살가운 책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더 반가웠답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빚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더불어 `새 책'으로 나왔는데도 빛을 받고 새책방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들 손길과 눈길을 기다리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고요.

헌책방이라 하여 좀 더 쉽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헌책방은 <수현헌책방> 아주머니 말씀처럼 `늘 여유있게 찾아갈 수 있기'에 오랜 세월을 거치며 우리 삶을 북돋우고 아름답게 이끌어온 값진 책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거꾸로 사는 재미

<수현헌책방>은 자그맣습니다. 열 평도 되지 않습니다. 한 대여섯 평 될까요? 글쎄, 넓이를 보며 평수를 헤아리는 눈썰미까지는 없지만, 참 자그마한 헌책방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네요. 자그마한 가게 복판에 넓직하게 난장이 책장과 책판을 놓았고 난장이 책장을 뺑 둘러 어린이책과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참고서를 두었으며 그 위에 잡지와 만화책을 얹어 놓았습니다. 가까이 학교가 여럿 있기에 교과서와 참고서도 한쪽 벽을 채울 만큼 많이 있지요.

책방이 작아서 금세 책을 다 돌아보겠지 싶었으나 그렇지 않더군요. 여기서 한 권 눈에 띄고 저기서 한 권 눈에 띄며 하나둘씩 제 눈과 마음을 끄는 책을 만납니다.

절판될 위기에 놓였다가 뜻있는 분들이 출판사에 바라고 거듭 `재판을 내라고 애쓴 끝'에 열 해만에 2쇄를 찍은 <임길택-탄광마을 아이들, 실천문학사> 1쇄판을 만났습니다. 이 녀석은 어느 대여점에서 나온 책이더군요. 대여점과는 어울리지 않다 싶은 책이지요. 눈에 잘 띄고 사람들이 재미나게 후루룩 읽어버리는 책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오히려 그 덕에 책상태는 아주 깨끗합니다. 사람들 손을 타지 않아 깨끗하게 열한 해를 이어온 책. 이걸 더 반갑다고 말해야 할지 씁쓸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어린이책을 많이 펴냈으나 출판사가 끝내 문을 닫고 만 `인간사'에서 펴냈던 <이영호-늪마을을 스쳐간 바람(1983)>을 만났고 <이오덕-거꾸로 사는 재미, 범우사(1983)>도 만납니다. 이오덕 스승이 1960-70년대에 쓴 수필을 모은 책입니다. 이오덕 스승은 뒷날 정년퇴임을 맞이하지 않고 임기 가운데 스스로 교직에서 물러나기도 했죠. 교단에 남아서 할 일도 많겠으나 젊은 교사에게 자리를 내주어 교단을 힘있게 꾸리길 바라는 마음에 일찌감치 `안정된 교장 자리'를 마다하고 물러났지요. 그리고 한국글쓰기연구회를 꾸려 이 땅 아이들이 이 땅을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고 자라도록 이끄는 참 교육을 실천해 가고 계십니다.

<거꾸로 사는 재미>는 이처럼 살아왔고 살아가시는 이오덕 스승이 "참답게 사는 길"이 오히려 "거꾸로 사는 듯" 비춰지고 보이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난 즐겁게 산다"고 터놓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철수 씨 초기 판화그림을 넣은 책겉장도 퍽 볼 만합니다.

<수현헌책방>에서 건진 <거꾸로 사는 재미>란 책도 그렇지만 헌책방을 꾸리는 분이나 헌책방을 찾는 이는 `거꾸로 사는 듯' 비춰집니다. 그러나 `여유롭게 찾아가고 올 수 있는' 헌책방이며 언제나 가붓하게 찾아오고 갈 수 있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거꾸로 살아감'도 퍽 재미있습니다. 더불어 `새 것'에서만 참 값어치나 슬기를 얻으러 바둥거리기보다 `새 것'을 이끌어내는 `헐고 옛 것' 가운데 오랜 동안 세월이 흐르고 거쳐도 꾸준히 우리를 아름답게 이끌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책'을 찾는 즐거움도 있지요.

<탄광마을 아이들>은 어느새 낱책으로 묶인 지 열한 해가 되었고 <거꾸로 사는 재미>도 열여덟 해가 되었습니다. 이 책들에 실린 글은 그 보다 적게는 대여섯 해, 길게는 스무 해까지도 지난 글들입니다. 그러나 스무 해가 지났어도 책으로 엮을 만큼 올올이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요. 헌책방은 이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올올이 무게가 있고 힘이 있는 책"을 갖춘 곳으로 `거꾸로 사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서지만 `거꾸로 사는 재미'를 주는 곳이 아니겠냐 싶습니다.


사진 찍기

헌책방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지저분하게 해 놓고 있는데 찍어서 어쩌나' 하십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저로선 있는 그대로가 좋아서 사진을 찍지만 사진을 찍히는 쪽에서는 조금이나마 더 깨끗하고 잘 갈무리된 모습이 좋겠죠.

그래도 아주머니가 그닥 싫어하지 않아 하셔서 다행입니다. 아주머니는 책상 위에 자그마한 중국대나무를 기르시더군요. 그 대나무는 크기가 작든 크든 대나무이며,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도 대나무지요. 우리는 그 대나무를 보며 대나무를 보고 즐기며 마음도 조촐하듯 헌책방도 헌책방으로서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름답고 우리들도 있는 그대로 솔직한 헌책방이기에 늘 한갓진(여유로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철 지난 <지오> 잡지 가운데 `오징어잡이' 배를 깊이 있게 취재한 1998년 4월치를 하나 골랐습니다. <지오> 잡지는 대학교나 병원, 여러 단체에서 한꺼번에 많이 사서 회사나 도서관들에 공급합니다. 그리고 철이 지나면 이렇게 헌책방에 처분하지요. 그래서 퍽 값이 나가기도 하고 달마다 꼬박꼬박 챙겨서 사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헌책방에서 뭉텅이로 나온 <지오>를 뒤지며 그 가운데 볼 만한 잡지를 고른답니다.

대학교나 병원, 단체로서는 돈을 좋은 책을 사는데 쓰고, 잡지로서 `시효성'이 지나면 헌책방에 내놓아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도록 하기에 참 좋다고 봅니다. <지오>는 <수현헌책방>은 물론 여러 헌책방에 많이 들어갑니다. 물론 거의 모두 `단체 구입'해서 시설에 한동안 갖추고 있던 책들이죠.


찾아가는 길

지하철역 5호선을 타고 가시다가 `목동'역에서 내려도 좋고 `신정'역에서 내려도 좋더군요. `목동'역에서 `신정'역으로 가는 찻길가에 <수현헌책방>이 있습니다. 목동역 언저리에 있다는 다른 헌책방을 찾으며 길을 헤매며 두 전철역 사이를 오갔는데 두 전철역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채 십 분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목동'역에서는 8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그 길로 곧장 이백 미터 즈음 걸어가면 됩니다. 버스정류장으로는 `영등포여상 입구'이며 이 앞으로 111, 212, 211, 328-1, 1003번이 다닙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 있는 언저리 땅그림에는 `영등포여상'이 나와 있지 않더군요. 그대신 다른 학교 이름이 나와 있어요. 이 대목에서 조금 헷갈릴 수 있지만 `8번 나들목'만 잘 새겨두고 가시면 됩니다.

반석서점 (2646-2637)
우리헌책방 (2603-5729)

언저리에 다른 헌책방도 있으니 이쪽까지 오셨다면 이곳에도 전화를 해서 어느 곳에 있는지 여쭙고 찾아가도 좋습니다. 모두에게 즐거운 헌책방 나들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덧붙이는 글 | [목동닷거리 수현헌책방] 02) 2607-5223 / 019-209-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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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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