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은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서울 공항정 / 2022년 6월 14일 촬영)
김경준
한동안 나는 속사(빠르게 쏘기)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활을 오래 들고 있어 봐야 팔만 아픈데 왜 굳이 질질 끄는지 의문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겨냥해서 한 번에 맞추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속사를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생각 없이 쏘고 있음을 깨달았다(어쩌면 그것이 오랜 시간 몰기를 하지 못한 원인이리라).
이러한 속사병을 고쳐나가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활터의 어른들께 들쭉날쭉한 시수(관중 횟수)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자 "생각 없이 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뿔싸. 사부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가르침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 활을 들어 당긴 뒤 바람은 어디로 불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 줌손(활을 잡은 손)과 깍짓손(활시위를 당기는 손)은 정확하게 틀어쥐고 있는지, 화살은 얼마나 당겼는지 등등을 관조하다 보니 자연스레 활을 잡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화살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물론 활을 당기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여 그것이 곧 과녁에 명중하는 '관중'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나의 판단이 늘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이는 나아가 내 자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내가 내린 판단은 그 다음 화살을 위한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온전히 나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
무엇보다 활을 당기고 있는 3초 내지는 5초 정도의 시간은 짧은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만큼은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내 자세와 호흡 그리고 과녁만이 보인다. 하루에 주어지는 24시간 중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던가. 그래서 활을 쏘는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일상의 근심을 잊고 스스로를 온전히 돌아보곤 한다.
쏘고 난 직후의 행동도 중요하다. 자세와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으며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를 '잔신'이라고 하는데, 자세를 정리하며 맞추면 맞춘 대로 못 맞추면 못 맞춘 대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그래야만 다음 화살을 어디로 겨냥해 어떻게 쏠지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이것이 활을 쏘는 활터마다 '반구저기'(反求諸己: 잘못을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넉 자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