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시수를 기록한 책자)에 찍힌 관중 횟수. 2년 가까이 만년 4중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경준
그러니 그동안 얼마나 속앓이가 심했겠는가. 심지어 나보다 늦게 입문한 사람들이 하나둘 앞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불 같고 급한 성격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결국에는 내 자신의 재주 없음에 한탄하며 심한 자책에 사로잡히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이었다. 초몰기를 못한 스스로에 대해 한탄하자 사두(활터의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원래 더디게 가는 사람이 명궁이 되는 법이다."
그저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운 좋게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내는 사람은 교만함에 사로잡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기 쉽고, 더딘만큼 스스로의 자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은 훗날 명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서부터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초조함과 다급함이 오히려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맞추려는 욕심만 앞서니 화살도 귀신 같이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곤 했던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우보만리(牛步萬里) 네 글자를 활쏘기의 화두로 삼았다. 느리지만 우직하게 만 리를 가는 소처럼 끈기와 성실함으로 정진하면 마침내 노력이 빛을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쉽게 한 발을 놓쳐 4중에 그칠 때에도, 대신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에게 "4중 했으니 조만간 5중도 하겠죠" 하며 짐짓 여유까지 부리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활쏘기에 대한 고민과 공부는 더욱 치열하게 했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스스로의 자세를 돌아보는 일에 집중하자 초몰기의 여신은 그때야 비로소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