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스러운 골짜기 풍경골짜기에 가을이 내려왔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엔 풍성함이 가득하고 멀리 골짜기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겨운 풍경이다.
박희종
웅장한 기계음을 따라 먼지가 하늘로 오르고, 작은 트럭이 따라나섰다. 콤바인이 털어낸 벼를 실어 운반할 트럭이다. 순식간에 콤바인인 황금들녘을 휑하게 만들었다. 봄부터 새싹을 틔웠고 여름비를 견뎌낸 벼가 가을이 되어 주는 보상이었다. 온 동네 사람이 모여 벼를 베고, 타작을 하던 일을 웅장한 기계가 순식간에 해결한 것이다.
과거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먹던 점심상은 이제는 근처에 들어선 뷔페에서, 가끔은 들녘으로 배달되는 중국음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만다. 거대한 농기계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몸짓도 가을에 만나는 풍경이다.
가을들판에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잡아 놓은 건 들깨였다. 한치의 땅도 비워 놓을 수 없는 시골땅, 작은 땅에도 어김없이 들깨는 자리를 잡았었다. 널따란 들판을 지나 산 모퉁이를 돌아가자 유모차가 서 있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혼자 손으로 들깨를 털고 계신 것이다. 가족들은 없는 건지, 홀로 앉아 일을 하신다.
지나는 길에 만난 비탈밭에선 오래 전의 추억을 만나기도 했다. 비탈밭을 가득 메웠던 들깨를 터는 명장면, 오래 전에나 보았던 도리깨질을 만난 것이다. 비스듬한 산자락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몸짓, 파란 포장지에 널어 놓은 들깨를 도리깨로 털고 있다. 한 남성이 도리깨를 잡고 어깨너머로 팔을 돌려 힘껏 내려치며 들깨를 털어내고 있었다.
조금은 서툰듯하지만 지는 해를 친구삼아 휘두르는 도리깨는 선명한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만날 수 있는 도리깨, 여기가 골짜기임을 실감하는 그리움의 만남이었다.
어렸을 적 어머님이 허연 수건을 머리에 얹고 나가시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장마가 그치고 자그마한 텃밭에 들깨를 심기 위해서다. 농사는 때가 있는지라 잠시도 멈출 수 없다. 허연 수건으로 고단함을 털어내고 들어선 텃밭엔 고추가 몸집을 불렸고 옥수수가 잎을 나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