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유해에 대한 가족을 찾는 글
경남대학교 박물관 제공
인골 전문 고고학과 교수에게 '태인'의 얼굴 복원 작업을 시도하는 한편 송씨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입수해 두개골 등을 대조했다. 그 결과 남매가 분명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진행된 DNA 분석 결과는 불일치였다.
이 교수는 DNA 검사 결과를 가지고 태인 선생의 유족을 찾는 데 동분서주하였다. 수소문 끝에 태인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 세 명 나왔는데, 두 명은 DNA 확인 결과 불일치했다.
나머지 한 명인 태인 선생의 여동생과 통화를 하고 당시 조현기 진주유족회 대책 위원장, 민간인 학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구자환 감독과 함께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 전에 이 교수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이후 유족과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드디어 찾다
필자는 논문 '마산 여양리 민간인 학살의 실상과 성격'을 읽게 되면서 태인 선생의 유족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여양리 발굴에 관련된 분들의 근무지를 찾아 고성, 함안 등을 다녔다.
당시 진주유족회장, 진주유족 대책위원장, 박물관 연구원들을 만났지만 대부분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참으로 암담했다. 마지막으로 구자환 감독께 연락하니 이 교수가 태인 선생 누나와 만날 약속을 해놓고 안타깝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인 선생의 5촌 동생 연락처가 있다"며 잠시만을 외친다. 그 짧은 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찾았어요!"
"감독님 진짜 고맙습니다!"
전화 끊고 바로 태인 선생의 5촌 동생께 전화했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들린다. 필자를 소개한 후 태인 선생에 대해 조심스럽게 안내했다. "저는 잘 모르고 태인 형 막냇동생이 서울에 살고 있으니 동생한테 연락을 해보세요"라고 한다. 연락처를 받고 너무나 기뻐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필자는 한숨을 돌리고 이 교수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싶고 했던 태인 선생 유족과 연결이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동생에게는 70여 년 전 응고의 세월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것 같아 죄스럽고 황송한 마음이 들었다.
필자를 소개한 후 '이상길 교수가 대학 은사입니다' 하니 "그 교수님, 잘 알지요" 하면서 반갑게 인사 하신다. 그 후 여러 차례 걸쳐 통화한 결과, 태인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었다. 몇 개월이 지나 2021년 9월 어느 날, 정태인씨의 동생 정상중씨와 진화위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태인 선생의 진실규명 신청도 할 겸 정상중 어르신을 충무로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얼굴을 모르니 사진을 찍어서 옷차림을 알려주신다. 출구로 나오니 키가 크고 건장한 어르신이 서 계셨다. 느낌이 온 건지 우리는 눈빛만 보고도 서로를 알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벗처럼 반갑고 또 반가웠다.
어르신과 함께 진화위 사무실로 향했다. 조사관을 만나 접수처에서 준비한 '호적초본'을 확인했다. '정태인' 이름 세 글자가 장남으로 기재되어있는 걸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정상중 어르신은 정태인 선생의 막냇동생이었다. 접수를 마친 후 우리는 휴게실로 이동해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