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서 두 번째 이상길 교수 와 세 번째 김미영
김영희
2004년 5월 4일로 시계를 돌려 여양리 발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여양리 발굴단은 이상길 교수와 그의 제자들, 박물관 연구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필자가 발굴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먼저 발굴단을 수소문했다. 김미영 경남연구원 조사연구위원이 있는 경남 함안군을 방문했다. 따뜻한 음식을 대접 받으며 폐광 발굴 사연을 들었다.
여양리 3개소 발굴 중 발굴하기 가장 힘든 폐광 발굴은 경력이 많은 연구원 2명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인 김미영은 발굴 당시 폐광에는 회색빛 유기물과 시꺼먼 물이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물에 잠긴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스펀지로 물을 짜냈으나 난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굴 안에는 유해가 꽉 차 있어 발 디딜 곳조차 없었다.
조사단은 폐광 내 양쪽 벽면에 철골을 세우고 그 위에 떡판처럼 판을 얹은 후 엎드리거나 낮은 자세로 앉아 떡판 사이로 손을 넣어 수습 작업을 시작했다. 이를 몇 차례를 반복하면서 무사히 수습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필자는 순간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그동안 발굴한답시고 돌아다녔지만 평평하고 언덕진 곳이 발굴 현장이었기에 이렇게 힘들 줄 감히 상상도 못 했다. 김미영 연구원은 이때 임신한 몸으로 발굴에 참여하였다. 저절로 고개 숙여 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험난했던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