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계획에 대한 과학기술적 검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우성
후회막급이지만, 한국사 교사로서 이 좋은 출제 소재를 기말고사에 활용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근거를 제시해 논술하라는 것만큼 시의적절한 문항은 없을 성싶어서다. 한국사 교과서에도 학습 목표가 '동아시아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과 평화를 위한 방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명시된 단원이 있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찬반 논란은 시험 출제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만한 소재다. 토론을 통해 쟁점이 명확해지고 상반된 주장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아이들의 사회적 의식을 성장시키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다. 토론이 없으면, 아이들은 더더욱 어느 일방적인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믿게 된다. 교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교육부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기존의 관행적인 강의식 수업을 대체하는 차원에서도 토론은 적극적으로 장려돼야 한다. 토론 수업에서 찬반의 쟁점이 확연할수록 효과적이지만, 핵심은 누가 뭐래도 시의성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안으로서, 아이들이 두루 알고 있는 것이라야 토론 수업 소재로 그만이다.
교과서에 전가의 보도처럼 권장되는 토론 수업 소재가 있긴 하다.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청나라의 군신 관계 요구에 대해 주전론과 주화론이 대립했던 상황을 둘로 나눠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대개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사실이 부각되면서,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의 역사적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다시 되새기는 '토론'의 효능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라는 두 역사서의 '위대성' 논쟁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과 신숙주의 '배신' 논쟁 등도 아이들에겐 나름 익숙한 소재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토론이어서, 제시하는 근거마저 어슷비슷해 시작하기도 전에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다. 이는 시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라면 아이들의 눈빛부터 다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박근혜 정부 때 추진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윤석열 정부가 불 지핀 페미니즘에 대한 찬반 논쟁을 들 수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굳이 찬반으로 가를 필요도 없을 만큼 반대가 압도적이어서 토론이라기보다는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결국 아이들의 바람대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1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은 학교에선 '뜨거운 감자'다. 특히 남자 고등학생들에겐 쉽게 거론할 수조차 없는 주제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겠다며 수업 시간 토론 주제로 삼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온갖 소란을 무릅쓰고 교사들이 민감한 주제를 기꺼이 화두로 삼는 건, 토론의 교육적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1타 강사'의 강의라도 수동적으로 주입된 지식은 어디까지나 수험용일 뿐이다. 시험장을 나서자마자 깨끗하게 '포맷'되는 건 그래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식이라면 굳이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을까.
거듭 강조하거니와, 시의성이 토론의 고갱이라면 지금 오염수 방류 문제만큼 알차고 교육적인 주제는 없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반대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쟁점을 찾아가다 보면 찬성 쪽 주장의 논리와 근거를 알 수 있어 나름 도움이 된다. 만약 아이들 모두가 반대 의견을 낸다면, 교사 혼자서라도 찬성 쪽에서 그들의 논리에 차분히 대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토론은 승부를 내는 게 목적일 수 없다.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고 논박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자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기꺼이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적어도 아이들은 오염수 방류 문제를 정치권이 프레임화한 '보수와 진보'나 '친일과 반일'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염수 문제 유무' 자료 요청, 수업권 무시에 학습권 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