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베트남 우정 기념탑
Widerstand
결국 1978년 12월 22일,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 치하의 캄보디아를 침공합니다. 전쟁은 아주 손쉬웠습니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을 자행하고 국가체제를 스스로 파괴해 온 크메르 루주에게 국토를 방어할 힘은 없었습니다. 1월 7일 베트남이 프놈펜을 장악했고, 17일 태국 국경까지 진출하며 사실상 캄보디아 전역을 손에 넣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베트남은 해방자였을 수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의 집권과 킬링 필드라는 학살극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종결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내전과 킬링 필드를 경험하며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의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베트남은 이후에도 캄보디아에 계속해서 주둔했고, 일부 지역에서 반군 활동을 벌이던 크메르 루주와도 전쟁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반발해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며 중월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베트남은 중국에 사실상 승리하고 캄보디아 주둔을 계속했죠.
한때 태국 국경지대까지 침범한 베트남은 국제사회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주둔하며 세운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소련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캄보디아의 국왕이었던 시아누크와 크메르 루주를 포함한 여러 세력이 연합해 "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를 만들었고, 이 정부가 국제사회에서는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습니다. 베트남과 적대하고 있던 미국과 중국이 모두 민주 캄푸치아 연합정부를 지지했죠. 사실상 국토가 없는 망명정부임에도 UN에 의석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