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형식 게이트서울 약령시의 여러 통로 중 하나인 5번 문 형식 게이트. 경동시장과 마주한 공간에 서 있다.
이영천
왕조시대 필요 한약재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구에서 크게 소용하였다. 특히 전의감은 왕과 왕족, 고관대작의 약재 용처였음으로 수요가 끊이지 않았다. 활인서와 혜민서에서 소용하는 약재는 과연 얼마였을까? 공교롭게도 혜민서와 활인서가 먼저, 전의감은 제중원이 설립되는 시기 폐지되었다.
서울에서 한약재가 주로 거래되던 곳은 구리개와 배오개였다. 구리개는 지금의 을지로1가∼2가에 있던 고개로 서민을 치료하는 혜민서가 있었고, 고관들이 이용하는 한약방도 즐비했다.
배오개는 종로4가 인근에 있던 작은 고개로 이곳의 한약방은 주로 서민이 이용했다. 따라서 민간의 한약재 수요는 배오개에 밀집해 있던 한약방을 통해서였다. 종로5가 부근에 아직도 약국이 많은 까닭은 이런 오랜 공간의 흔적이 이어져 온 때문이다.
보제원
4대 역원 중 동대문 밖엔 보제원이 있었다. 보제원 자리는 흥인지문을 나와 동쪽으로 노원을 거쳐 강원도로 가는 길의 시작점으로, 지금의 안암오거리다.
보제원은 우역(郵驛) 기능은 물론 관리와 원로에게 잔치를 베푸는 기능에 겸하여, 왕이 민원을 듣는 곳이기도 했다. 흉년이 들면 백성을 진휼하는 빈민구제 기구였고, 전염병이 창궐하면 이곳을 거점으로 병의 확산을 차단하고 치료함으로써, 병이 도성에 드는 것을 방지하는 의료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