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 앞1호선 노량진역 바깥 계단에서 본 공시촌의 모습. 기업화한 대형 학원들이 큰 길가를 점령하고, 그 뒤로 고시원 등 생활시설이 자리해 공시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영천
정년이 보장되는 공직(公職)이 인기를 끌고, 그 길에 접어들려는 기약 없는 경쟁에 청춘은 불나방처럼 기꺼이 자기를 내던진다. 볼모와 유폐, 저당의 시간이 만들어 낸 공시촌의 모습이다.
교과서에 실린 수필에선 '청춘!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 배웠다. 정말 그러한가? 2022년 청춘은 길을 잃었다. 아르바이트에, 비정규직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터에, 대학을 졸업한 청춘의 절반이 일터를 찾지 못하고 세상과 쌓은 두꺼운 벽을 높이는 실정이다.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 혹은 다른 대학에 편입하려는 청춘도 노량진에 넘쳐난다. 그래서 청춘이란 말에서 설렘을 느끼지 못한다. 측은지심을 넘어 수오지심마저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빙하기의 청년
2000년대 후반, 비정규직 청년의 평균 임금 '88만 원'은 소외 계급으로 전락해버린 청년을 진단하는 고유명사였다. 88만 원 세대는 그대로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다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꿈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로, 이를 넘어 거의 모든 미래를 포기할 처지를 대변하는 'N포세대'로 치환된다.
청춘은 오늘도 암울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미래를 향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자신을 위해 즐겁게 투자해야 할 시기에, 지금의 청춘은 오히려 절망의 미래를 간파하고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