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함양 한나라 한무제 무덤
김기동
중국 국가 공영 방송국에서 왜 이런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중국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중국인이 어떻게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또 중국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바람직한지 그 근원을 2000년 전 한나라 시대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프로그램 '중국 남성의 삶' 편에서, 한나라 시대 남자(男子汉)는 '젊어서는 협객으로, 중년에는 공무원(봉급생활자)으로, 늙어서는 신선으로 살았다(少年遊俠,中年遊宦,老年遊仙)'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전형적인 남자 모습 '남자한(男子汉, 한나라 시대 남자)'이 한나라 시대 '협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우리는 한나라에서 왔다(我從漢朝來)'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중국 남성의 삶' 편에서 협객을 설명하며, 자객 '형가'를 소개한다. '형가'는 2300년 전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기 바로 직전, 진나라 왕 정(후에 진시황제가 된다)을 암살하려 했던 자객이다. 중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왜 자객 '형가'를 중국의 대표적인 협객 모습으로 그렸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사기> 자객열전
약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사마천이 중국 최고 역사 기록물 <사기>를 썼다. <사기>는 총 다섯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본기'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역사 기록이고, '열전'은 의롭게 행동하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억눌리지 않고 기회를 살려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열전'에 실린 사람들이 반드시 정의롭거나 칭송할 만한 인물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열전'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 학자, 문인, 군인, 관리, 기업가뿐만 아니라 협객(유협열전), 자객(자객열전) 같은 사람들의 기록도 있다.
중국 최고 역사서라고 칭송받는 <사기>를 쓴 사마천이 왜 역사책에 협객과 자객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아마도 사마천은 그 당시 중국인의 일상생활을 기록하면서 중국인이 '협객'이나 '자객'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니면 중국인이 '협객'이나 '자객'을 단지 특별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중국인이 일상생활에서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 열전 70편 중 두 편을 '유협(협객)열전'과 '자객 열전'으로 할애하여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유협(협객)과 자객의 활동 내용을 기록해 남겼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사마천이 중국 민간 질서(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바탕이 되는 협객의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유학적 명분이나 이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역사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고 한다.
'협객'이라는 단어는 사마천이 쓴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에서 '유협'과 '자객'의 뒷글자를 합쳐서 만들었다. 그래서 협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자객'과 '유협'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자객열전'에는 자객 5명이 나온다. 자객 다섯 명 중 4명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다른 사람을 죽인다. 나머지 한 사람 자객이 '형가'다. <사기> '자객열전'에서 나머지 네 사람 자객 이야기는 간단히 소개하는 데 그쳤는데, '형가' 이야기에는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래서 협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형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우리는 한나라에서 왔다 - 중국 남자의 삶' 편에서도 총 50분 방영 분량 중 '형가' 이야기를 5분 이상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