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업해도 될 사주인지 궁금했다.
MiraCosic, 출처 Pixabay
사주를 보는 이유는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내 월급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었다. 혹시라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내 아이들이 불행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매출로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가장인 이상 가족들을 담보로 사업이라는 모험을 할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퇴사 전 휴직을 먼저 했다. 휴직 기간 동안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내 일을 해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했으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았다. 딱 먹고 살 만큼의 생활비를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휴직 기간 동안 에세이 구독 서비스도 해봤고, 글쓰기 강의도 해봤다. 테스트 한 결과 글을 써서 생활비는 어림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슬아 작가는 구독 서비스로 학자금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다던데, 나는 생활비도 벌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행히 남편 사업을 같이 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던가. 내 월급이 아니면 생활비 해결이 안 될 것 같던 두려움은 남편의 사업으로 안정감을 찾아갔다. 목표했던 금액이 생활비였던 만큼,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자 나는 회사 밖에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다면 남편은 사업할 운이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도 사업보다는 직장에 있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도 직장운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직장운이 좋다고 하면, 배울 사람이 있든가, 돈을 많이 주든가, 일이라도 쉬워야 하는데 그 어느 것도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그는 사업을 했고, 여러 번 힘들었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가 그동안 했던 사업은 게임개발, 출판사, 가구조립 판매 등이었다. 다행히 투자금은 크게 들지 않는 사업이었는데, 문제는 기회비용이었다. 그 사업들을 하는 동안 월급은 없었고, 시간은 흘렀다.
몇 개의 사업을 거치는 동안 남편은 40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에 실패한 40대가 다시 취업하는 건 청년취업보다 힘들었다. 사업운이 없어도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성인이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수는 없지 않는가.
대부분 직장의 공식적인 은퇴 나이는 60세다. 그것도 운이 좋았을 때의 이야기다. 100세 시대를 감안한다면 직장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수십 년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제품을 팔든, 서비스를 팔든, 결국은 사업운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일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고 생각한다.
사업의 영역에는 서비스업, 자영업, 임대업 모두 포함된다. 글을 쓰면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출간하면 책을 팔아야 하고, 강의하면 강의를 팔아야 한다. 임대사업도 부동산 시장에 매물을 내놓아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동안 거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월급도 내 노동과 시간에 대한 대가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안 하고 모아놓은 돈으로 놀기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파이어족이니 조기은퇴라는 말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유튜브를 하거나 책을 출간하거나 강의를 팔고 있었다. 전업주부로 육아에 전념하던 사람들도 아이가 크면 무언가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무언가 만들어 팔고, 돈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들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업할 사주이든 아니든 사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