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건설노조 기자회견’이 10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유족대표와 노동자들이 참석해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앞에 놓인 안전화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고 김다운씨는 2021년 11월 5월 경기도 여주시에서 오피스텔 전기공급을 위한 전봇대 작업 도중 감전사고로 사망했다.
권우성
며칠 전 한국전력 하도급 업체에 소속된 전기기사 김다운씨가 지난해 11월 고압전선의 활선 작업 중 끔찍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난 "도대체 언제쯤 달라질까? 십수 년이 지나도 왜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과거의 기억 하나가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특히 보도된 기사 중 업체 관계자의 "(김씨가) 업무를 잘 처리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것 같아요"라는 변명을 듣고는 헛웃음까지 나왔다. 난 그 '의욕'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경험자로서 정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산업용 전기설비를 제조하던 업체였지만 난 코딩 전공자로 컴퓨터를 활용하여 전기설비를 제어하는 코딩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떨어진 출장 명령은 당혹스러웠다. 수만 볼트 고전압 몰드 변압기가 설치된 외함(일종의 큰 철제 케비넷) 지붕에 설치되어 변압기의 뜨거운 열기를 빼내는 '배기 팬'이 고장 났으니 교체 설치하라는 지시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전기 담당자가 가야 했지만, 일손이 부족해 나에게 일이 주어졌다.
물론 '팬 교체'는 전기에 대한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문제는 작업 환경이었다. 고압 변압기가 작동하는 상태에서 2m가 넘는 철재 외함 지붕에 올라가야 했지만, 2인 1조는 언감생심이었고 사다리 같은 기본 장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일명 '현장 박치기' 지시였다. 그러니까 간단한 작업이니 현장에 있는 관계자에게 잘 부탁해서 사다리도 얻고 손이 부족하다 싶으면 도움도 받아 비용을 최소화하란 뜻이었다.
그렇게 '현장 박치기', 즉 임기응변 능력은 기술직 직원의 유-무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니 어찌 되었을까? 이런 상황에 부딪힌 직원들은 의욕이 앞서서가 아니라 무능한 직원이란 비난을 피하고자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선 이런 분위기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본인의 전공과 관계없는 생뚱맞은 작업에 투입되는 건 물론, 안전 확보에 필요한 장비나 설비를 요구했을 때 '배부른 소리, 명필이 붓 가리나?'라는 핀잔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과거 산업 현장에서 안전은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 정도로 취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지금도 여전한 듯하다.
영세 가게의 슬픈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