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회사에서 막내 직급인 우리는 야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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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들었어? 우리랑 동갑인 OO씨,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다가 병원 갔더니 위암이었대."
딱 나와 같은 나이,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얼굴은 낯익었던 그 직원에 대한 얘기였다. 아직 회사에서 막내 직급인 우리는 야근이 많았다. 그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항상 늦게까지 사무실 자리를 지키는 듯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분명 저번 주만 해도 멀쩡해 보였는데, 암이라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 소식 때문이었을까. 억지로 먹었던 저녁이 얹혔는지 속이 불편하다. 소화제를 습관처럼 꺼내 들다가 '설마... 나도?' 하는 불안감에 인터넷에 내 증상들을 검색해 본다. 처음에는 분명 '체했을 때 증상'으로 검색을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위암 초기 증상'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귀신보다 더 귀신 같은 알고리즘은 이런 내게 '암 환자의 브이로그', '30대 암 환자의 식사습관', '암 환자가 알려주는 암이 좋아하는 음식들' 같은 동영상을 추천해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슷한 동영상들을 새벽까지 찾아본다. 지난 내 식사 습관들을 돌아보며 혹시라도 이미 내 몸에 암이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 나를 괴롭힌다.
이제야 막 잠에 든 것 같은데, 알람이 울린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침대에서 일으킬 수가 없다. '딱 10분만 더...'를 외치며 다시 눈을 감는다. 또다시 알람이 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준비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빠듯하게 지하철에 오른다.
늘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회사에 오면 하루가 정신없이 간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나를 찾아대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건조기 안에 들어 있는 수건처럼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퇴근 시간이 온다. 오늘 회사에서는 그 직원이 위암이었다는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아직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어쩌면 좋니..."
"남 일 같지 않아,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이렇게 갑자기 휴직하면, 누가 대신 일 하니. 건강관리도 실력이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부터, 감정 이입하는 사람들, 공석이 생긴 것에 대해 은근한 압박을 주는 사람들까지 그 반응은 다양했다. 마치 건강한 것은 정상, 몸이 아픈 것은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듯했다. 그 사람은 아직 젊은 나이라는 이유로 더 안타까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왜 청년들은 건강염려증에 빠지나
이런 이유 때문일까.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병원에서 '건강염려증'을 진단받은 사람 중에 20대(11%)와 30대(9%)를 합친 비율이 20%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나칠 정도로 건강에 집착하는 심리적 장애를 건강염려증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뒤로 우린 건강에 좀 더 집착하게 되었다. 목이 조금이라도 따끔거리면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두려워하게 됐고, 공공장소에서 누가 잔기침이라도 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직장인 5명 중 3명은 건강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야말로 건강 강박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나도 20대 후반에 큰 수술을 경험했다. 건강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몸속에서 혹을 발견했고 이를 절제한 후 조직검사를 했다. 다행히 악성이 아니어서 항암치료 없이 절제 수술만으로 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별거 아닌 수술이었지만, 처음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악성종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었다. 마치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지난날의 나를 곱씹으며 자책했다. 젊은 나이에 몸 속에 혹이 생긴 것을 내 잘못으로 여겼다.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이 싫어 아프다는 사실을 숨겼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보다, 내가 나의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몸에 혹이 생긴 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을 수도 있고, 운이 나빠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