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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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운동에 꽂힌 적이 있다. 뼛속까지 시린 겨울, 아침 7시마다 옆구리에 요가 매트를 끼고 운동장에 나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 매트를 깔고 홀로 무산소 운동을 1시간, 그것이 끝나면 운동장 20바퀴를 내리 달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밖을 나갔다.
수업이 끝나면 동네 두세 개는 족히 걸어 다녔고, 버스에서 일부러 두세 정거장 일찍 내려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주위 사람들이 꿈이 운동선수냐고 물어볼 정도로 조깅에 심취했다. 게임이나 웹서핑은 오래 하면 몸이 상하는데, 운동은 오히려 건강도 챙기고 칭찬까지 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취미라 생각했다.
친구와 6개월 뒤에 마라톤을 나가기로 했다. 엄마가 혀를 찼다. 내가 운동 중독이라며 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엄마가 중독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 몸에 악영향을 끼칠 때 쓰는 단어 아니던가?
내가 운동선수만큼 하루 종일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전보다 체력도 좋아지고 주변 사람들도 박수 쳐주는데 왜 엄마는 사서 걱정을 하실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라톤을 위해 새벽마다 2시간씩 전력 질주를 하고 왔다. 그리고 6개월 뒤, 마라톤을 앞두고 무릎이 나갔다.
아픈 몸보다 더 걱정됐던 것
매일매일 아스팔트, 흙길, 돌길 등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질주한 것이 화근이었다. 계단도 한 번에 20층을 쿵쿵 내려가고, 미약한 통증이 있어도 무시하고 달렸으니 몸이 버티질 못 했다. 파릇파릇한 청년의 무릎인데 가만히 있어도 시큰시큰 아팠다. 당연히 마라톤은 못 나갔다.
당분간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벌어졌다. 몸이 편해질수록 맘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터 그리 열중해서 운동을 했다고, 갑자기 몇개월 간 쌓아올린 체력과 몸 상태가 모두 약화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아도는 시간에 인터넷으로 마구 건강지식을 뒤져보았다.
근육이 약화되는 데 걸리는 시간, 장기간 운동을 중단할 시 생기는 신체의 변화, 그 외의 부작용 등등을 찾아보고 그 결과가 안심할 만하면 안도하고, 또다시 불안한 정보를 발견하면 초조해 했다. 건강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잠식당해 있었다. 건강염려증 수준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몸에 좋다는 잡곡을 몽땅 넣은 밥을 먹고 소화가 안 돼 체하거나, 몸이 안 좋다며 영양제를 한 번에 10가지 종류를 먹을 때 홀로 우쭐해 하기도 했다. 건강에 대한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닌가 싶었다. 차라리 그러지 말고 밖에 나가서 조깅이라도 한 번 하고 오면 걱정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루라도 안 하면 초조해지는 지금의 나는 누구보다도 불안에 잠식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무척 정정하신 할머니는 지금도 홀로 시장을 다녀오시고, 직접 김치를 담그셨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병이 많다며 걱정하기도 하셨다. 할머니의 건강 비결은 단순했다. "밥 잘 묵고, 잠 푹 자면 별 거 있나. 딴 거 읍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멈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