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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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3x6=19, 3x7=24…"
나는 어릴 적에 숫자가 싫었다. 구구단이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엉망진창으로 외우고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척척 한글을 떼던 나였지만 숫자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수학 성적은 바닥을 쳤다. 국어와 수학의 성적 차이가 무려 60점이 넘었다. 아무리 수업에 집중해봐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나는 자동으로 수학을 포기한 사람, '수포자'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말고도 수포자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자연스레 문과에 들어갔다. 문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국어와 영어에 굉장히 자신이 있는 학생들, 또 하나는 수학이 싫어 도망 온 학생들. 나는 후자였다.
'대체 왜 잘 보던 달력이 찢어지고, 갑자기 버스의 속력을 궁금해하는 거야?' 문제 상황을 가정한 수학문제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갑자기 다이빙 보드에서 떨어졌을 시 수면에 도달하는 순간 속도를 구할 일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실제로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수학을 포기함으로써 불편한 것은 단지 성적표를 볼 때뿐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수학은 내 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제 영영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첫 회사에 취업하기 전까지는.
조형물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나는 디자인 업무를 맡았다. 어느 날 아파트 6~7층 높이 정도 되는 거대한 원기둥에 붙일 커다란 시트지를 출력해야 했다. 도면에는 반지름과 높이만 나와있었다. 파일을 제작해야 하는데 원의 둘레를 모르니까 대지를 그릴 수가 없다.
갑자기 돌덩이처럼 굳어 있자 옆자리의 직원이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본다. 나는 뻔뻔한 얼굴로 "갑자기 원의 둘레를 어떻게 구하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라고 했다. 직원이 말했다. "아~ 2πr이요!" 학교에 그렇게 지겹게 들었던 파이(π)! 3.14가 약 10년 만에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잠시 동안의 고민이 단 3글자로 해결되었다.
또 어느 날은 샘플 조각을 아령형 도면으로 오려야 했다. 주어진 조건대로 그리는데 자꾸 한쪽 각도가 맞질 않는다. 아무리 따라 그려봐도 되지 않아, 실장님에게 SOS를 보냈다. 실장님의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이 점이랑 이 점을 찍고, 여기를 이렇게 해봐. 그러면 탄젠트 값이 나오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가리키는 대로 했더니 정말 원하던 각이 나왔다. 수학은 참 간단명료하구나! 내 머리 속의 복잡함을 풀어주는 마술 같은 수학에 약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직장 업무의 얘기, 실생활에서는 역시나 수학을 사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수학은 참 재밌습니다, 몰라서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