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도(1966년 서울 PR사 간행) 한강을 따라 오른쪽 부터 잠실섬과 부리도, 마늘모양으로 둘로 갈라진 저자도, 이촌동 모래사장이 보이고 여의도와 밤섬이 확연하다. 제법 규모가 있는 난지도와 그 하류에 작은 하중도들이 뚜렷하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저자도와 한강 섬들의 운명
저자도는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 삼각주를 이루는 곳, 한강에 있던 섬이다. 섬 이름에서 닥나무가 무척 많았던 섬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무척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동쪽은 토지가 비옥해 목축에 적당했고, 가운데 높은 언덕에는 낙천정을 지을 만큼 풍경이 뛰어난 곳이었다. 세종은 이방원에게 수시로 문안을 다녔고,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낙천정에 들러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섬은 왕족과 벼슬아치들 휴양소였고,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반드시 이곳을 들러 시를 지으며 놀았으며, 날렵한 정자가 여럿으로 공후귀척(公侯貴戚)들이 노닌 곳이라 전한다. 철종은 부마인 박영효에게 이 섬과 압구정 땅을 하사한다. 부마에서 개화파로, 다시 친일파로 변신해 일생 부귀영화만 좇고 누리다 간 박영효를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저자도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일제가 경원선 철도(용산∼의정부 간) 노반 겸 한강제방 4.5km(서빙고∼한남∼옥수∼금호동)를 만들면서 섬 일부를 헐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을축(1925)년 대홍수 때 섬 일부가 유실된다. 그럼에도 1930년대까지 동서로 2km, 남북으로 0.885km, 면적 118만㎡(약 35.4만 평)에 이르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섬이었다.
일제는 1936년 뚝섬제방과 유실된 경원선 노반을 보강하면서 섬 일부를 다시 헐어낸다. 그래도 낮은 구릉지 곳곳에 관목 숲이 우거지고, 매년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해 피서객들이 섬을 가득 메우곤 했다. 사방을 드넓은 금빛 모래사장과 맑은 강물이 감싸고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1969년 2월 '압구정 공유수면매립허가'를 따낸 현대건설이, 섬의 흙과 모래를 퍼내가면서 형체가 사라지는 운명에 처한다. 이 시기를 전후해 한강 하중도가 큰 시련을 겪는다. 밤섬과 저자도가 사라졌으며, 잠실섬과 부리도는 강제로 육지가 되었고, 난지도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해 버린다.
저자도를 가만히 두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본디 삼각주로 형성되었던 섬이 물 흐름과 자체 회복력으로 옛 모습을 오롯이 되찾지 않았을까? 사라졌던 밤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섬을 헐어내 압구정동에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한다. 1972년 당초 허가면적보다 20% 상회하는 택지를 압구정동에 만들어 낸다. 한강 물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에 제방을 안쪽으로 62m나 후퇴시켜 다시 쌓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 땅에 1977년까지 총 5909가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짓는다. 집장사도 하고 고위층에게 특혜분양도 했다. 매립이 완료되자, 기존 섬 토지소유주들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10여 년(1974∼1984)간 다툼을 벌였으나, 엉뚱하게도 섬이 '국가하천에 속한 토지인가?' 여부로 재판 결과가 판가름 나버리고 만다.
혹자는 저자도가 1969년 이전부터 모래톱만 남은 사실상 모래사장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1966년(서울PR사)이나 1968년(인창서관) 발행된 서울시 지도를 보면 이 주장이 틀린 사실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현대건설이 흙과 모래를 퍼내갔어도 그나마 모래톱만이라도 남아있던 섬은, 전두환 정권이 88올림픽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한 '한강종합개발사업(1982∼1986)' 이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때부터 한강은 규격화되어 기능이 제거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시련을 견뎌낸 살곶이 다리
살곶이 다리는 도성에서 광주, 이천을 거쳐 충주로 가는 주요 길목이다. 문경새재를 넘어 영남대로에서 올라오는 물산이 지나는 곳이다. 또한 광나루와 송파를 지나 영동 강릉과 함경도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살곶이 다리는 이후 흥선대원군 경복궁 중건 공사 때 석재로 징발당함으로써 훼손되었다. 을축년 대홍수엔 일부 부재가 유실된다.
그 후 백성들이 계속 보수하여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1938년 다리 아래쪽으로 '성동교'가 가설되면서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만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수난을 당한다. 자연재해는 물론,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는다. 그래도 꿋꿋하고 굳세다. 살곶이 널돌다리는 아직도 의연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듬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어느 방향,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없이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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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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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그토록 원했던, 중랑천 가로지르는 '살곶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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