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임금은 본디 유학儒學을 좋아하여, 늘 맑은 첫새벽에 신하들과 함께 나라의 정사를 돌보고, 자주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경전의 해석 및 토론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퇴근 후) 일상 공간에서는 밤중이 되어도 독서를 그치지 않는다. 태상왕(태종)이 임금의 정신 피로를 염려해 금지시키며 말하였다. "과거 응시자는 이와 같이 해야 되겠지만, (임금이 되어서) 고됨이 어찌 이와 같은가." (세종실록 3년 11월 7일) 유교 문화권에서 중시하는 지도자의 주요 덕목 중 하나는 배움을 즐기는 태도입니다. 유학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논어論語>의 첫 장 첫 글자가 '배울 학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즉 '배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운 것을 익히면 정말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이 바로 그 예입니다. 단지 머리로 지식을 흡수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체화하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배움'이라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쁨이 느껴지는 경지에 도달해야 진정한 배움인 것입니다. 이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논어>의 구절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배움을 즐긴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세종은 건강이 걱정될 만큼 그 정도가 심했습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그는 매일 새벽 1~3시에 일어나 빈틈없이 하루를 보냈는데요. 책을 좌우 양옆에 펼쳐 놓고 식사를 하며, '퇴근 후에도 하는 일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없다'고 고백할 만큼, 그는 쉴 틈 없이 학습에 몰두했습니다. 온갖 서적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선의 역대 외교문서까지 살펴본 그는 '문자중독자'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처럼 고시생 이상으로 책을 파고드는 아들이 안쓰러운 아버지 태종은 공부를 금지시킵니다. 이러한 양상은 세종의 왕자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임금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하여 세자로 있을 때 항상 글을 읽되 반드시 백 번씩을 채우고, 『좌전左傳』과 『초사楚辭』같은 책은 또 백 번을 더 읽었다. 예전부터 몸이 불편할 때에도 글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는데, 병이 점차 심해지자 태종은 내시를 시켜 갑자기 책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임금은 천백번을 읽었다. (『연려실기燃藜室記述』 「세종조世宗朝 고사본말故事本末」) 아들이 어찌나 독서에 열심인지 몸이 아파도 멈추지 않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책을 모두 압수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쩌다 빠뜨린 책 한 권을 발견해 읽고 또 읽은 나머지 1100번에 달한다는, 많은 학부모님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유교 문화권에는 '군사君師(임금이자 스승)'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은 동시에 스승이기도 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이는 권력의 중심축에 지식이 있으므로, 지식의 양과 질이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내포합니다. 결국 세종에게 지식은 처절한 생존의 도구인 셈입니다. 아울러 '군사' 개념은 임금의 주요 책무가 백성을 계몽시키는 일임 또한 드러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왜 문자의 이름을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고 지었는지 짐작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세종이 '겨레의 스승'으로 불리며, 그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입니다. 이처럼 세종과 배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세종이 왕자 시절에 1100번을 읽었다고 전해지는 '구소수간歐蘇手簡'은 중국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와 소식蘇軾이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사진은 구양수와 소식의 편지를 모은 또 다른 책 '구소잡초歐蘇雜抄'이다.서울역사박물관 덧붙이는 글 이와 대조적인 양녕의 공부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실록읽어주는여자 #세종이야기꾼 #세종의 공부 #구소수간 #조선시대 입시 추천40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오채원 (storypd) 내방 구독하기 사람들이 저마다의 세종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공감의 역동을 선사하는 세종이야기꾼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초보 상주의 고군분투 구독하기 연재 실록 읽어주는 여자 다음글4화입시 교육의 실패자, 양녕대군 현재글3화아버지는 왜 아들의 공부를 금지했을까 이전글2화아들아, 모든 업보는 내가 지고 저세상으로 가마 추천 연재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난 늙을 줄 몰랐다 늙음은 자전거 타는 친구가 줄어들고, 저녁 자리에도 술이 없다는 것 와글와글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사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날 서점은 눈물바다가 됐다 SNS 인기콘텐츠 의대 증원 이유, 속내 드러낸 윤 대통령 발언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이충재 칼럼]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끝내자 윤건희, 용산방송 거부" 울먹인 KBS 직원들 한강, 노벨상 수상 후 첫 공개행보 "6년간 책 3권 쓰는 일에 몰두"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용산 '친오빠 해명'에 야권 "친오빠면 더 치명적 국정농단"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망언도 이런 망언이..." 이재명, 김문수·김광동·박지향 파면 요구 AD AD AD 인기기사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아버지는 왜 아들의 공부를 금지했을까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5화양녕을 고치고 싶었던 태종, 쫓아내고 신용카드 정지? 4화입시 교육의 실패자, 양녕대군 3화아버지는 왜 아들의 공부를 금지했을까 2화아들아, 모든 업보는 내가 지고 저세상으로 가마 1화"굶어 죽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