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에서 도쿄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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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당시 10살이던 아베 총리는 올림픽을 일본의 힘을 세계 만방에 증명하고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무대로 인식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나라로>를 통해 "일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을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로 특정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올림픽의 의미를 '신화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일본의 중·노년층이 가지는 감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특히 현대 일본의 경제를 이끌었던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일본에서는 '단카이 세대(團塊世代)'라 불린다)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될 당시 사회 초년생(10대 후반) 정도의 나이였다. 즉,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는 올림픽 이후 펼쳐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직접 체험했고 그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은 세대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올림픽은 좋은 추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이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가져다준 정도의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실상의 선전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을 통해 국민들의 정서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그 선전의 주된 내용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 '2차대전 패전에 대한 아픔을 이겨내고 일본의 힘을 증명해낸 부활의 제전'이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그때 '패자부활 올림픽'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패전으로부터 19년. 우리들의 나라는 불탄 자리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데까지 부흥을 완수해냈다. 그래서 지금 세계 사람들이 일본에 모여, 일본인 선수가 그 앞에서 가슴이 후련해지는 활약을 보여준다. 패전의 분함과 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를 발판으로 삼아,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세대에게는 그것은 자랑스럽고, 무엇보다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 아베 신조, <새로운 나라로>(2013)
이 같은 회상의 이면에는 일본이 2차 대전(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편향된 인식이 깔려있다. 일본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만 부각하고, 왜 폐허가 되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과 실책에 대한 죄책은 별로 없는 것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쟁의 실책과 오류를 덮을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서 올림픽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기 중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국기는 없지 않을까요? 올림픽에 쫙 늘어선 국기 중에서 그런 처녀나 동정 같은 깃발은 없었습니다. (중략) 그것이 이번에는 일장기는 더러워졌어도 다시 더 깨끗해졌다고 하는 내셔널리즘이 나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 미시마 유키오(1964), 『중앙공론』, 홍윤표(2008), 「미시마 유키오와 1964년 도쿄올림픽」재인용
"다시 깨끗해진 일장기"란 불편한 과거사의 삭제 혹은 재구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많은 문학자와 사상가들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일본의 극복 스토리'처럼 묘사했다. 일본 정부의 교묘한 이미지 메이킹도 한몫 거들었다. 일본 정부는 1964 도쿄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주자로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날(1945.8.6.) 태어난 육상선수 사카이 요시노리(坂井義則)를 지명했다. 원폭 피해자를 국제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전쟁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원폭 피해 자체는 인류사적 비극임이 분명하다. 또 올림픽 전반에 기본적인 반전 메시지가 아예 없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올림픽으로부터 2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침략전쟁이라는 과오가 있었다는 점은 인지하지 못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