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EPA
그래서일까? 일본 정부는 한국과 후쿠시마의 사이를 계속 이간질한다. 한국이 딴지를 걸어서 후쿠시마의 부흥이 힘들어진다는 류의 불평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의 후쿠시마에 대한 이미지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프레임을 자기 스스로 만드는 꼴이다. 일본의 이같은 술수가 표면에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를 들 수 있다.
요미우리는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것도 적당히 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하면서,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문제에 대해 "통렬한(痛烈)" 말을 퍼부었다고 추켜세웠다.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 언급된 '후쿠시마 괴롭히기'란, 근간에 한국 정부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를 뜻한다.
기사를 본 일본 국민들은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것은 한국'이라는 감정을 갖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한국이 피해자의 눈물을 머금은 불쌍한 후쿠시마를 괴롭힌다', '한국이 후쿠시마 헤이트를 하고 있다'는 등의 논란이 존재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이 후쿠시마를 괴롭힌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수월할 수 있다. 후쿠시마를 괴롭히는 주체를 한국이라고 특정함으로써 후쿠시마 주민의 분노를 일정 부분 한국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관련 문제가 "한국-후쿠시마" 둘 사이의 문제인 양 도망치려는 의도도 숨겨진 듯하다. "후쿠시마를 괴롭히지 말라"면서 후쿠시마와 일본이 마치 따로 존재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 대해 상당히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가 한국에 가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앞으로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비판하는 대상이 후쿠시마라는 일개 도시가 아닌, 일본 정부임을 정확히 특정하고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후쿠시마 주민들과 한국이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
따지고 보면 한국이 후쿠시마라는 도시를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다. 괴롭히기는커녕,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처리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사한 입장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당수 후쿠시마 주민들은 원전 오염수가 해양으로 방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이 망가진다는 이유에서다. 그중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과 농어민들은 원전 오염수의 방출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로 결성된 '후쿠시마 원전 소송단'은 지난 2013~2016년에 걸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유출 등과 관련해 도쿄전력 사장 등 간부 32명과 법인을 고발하고 검찰 심사를 신청하는 등 법적 투쟁을 활발히 벌여왔다. 특히, 최초 고발이 있었던 2013년 당시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300톤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가 지금 못지않게 이슈화된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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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들의 고발 근거는 "사람의 건강에 관한 공해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즉 건강권이다. 오염수를 저장한 탱크가 내 집 앞에 쌓여가는 모습보다도, 오염수가 방출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권이 방사능 위협에 직면하는 것을 더 큰 문제로 본 것이다.
나아가 이들 중 일부는 도쿄 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축소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후쿠시마 원전 소송단 단장인 무토 루이코씨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 도쿄 올림픽이 후쿠시마 원전 피해를 감추고 이용하는 선전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현 내에 약 3천대의 방사선 감시장치 (모니터링 포스트)를 대폭 철거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방사선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사고는 끝났다', '사고가 일어나도 이렇게 빨리 부활할 수 있다' 그런 이미지를 유포시키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략) 2020년 도쿄 올림픽도, 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 (이것은) '일본은 안전해요'라는 선전입니다." - 아사히 신문 인터뷰 ('16.9.7.)
또 다른 저항자 그룹인 후쿠시마 농어민들 역시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출에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되면 인근 바다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생산물의 가격이나 유통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우려가 남아 있는데, 하물며 100만 톤 이상의 오염수가 해양에 방출된다면 그 안정성은 극도로 하락할 것이다.
지난해 9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해 희석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일본 하라다 요시아키 환경 대신의 발언에 크게 반발한 것도 후쿠시마 어민들이었다. 이들은 최근 '오염수 해양 방출'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일본 정부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한편, 후쿠시마 농민들은 해양 방출뿐만 아니라 오염수를 증발시켜 대기로 방출하는 방안도 반대하고 있다. 대기 방출이 농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후쿠시마 농어민들이 원전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건강보다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의 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인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는 궁극적인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동이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려는 일본 정부를 견제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이 후쿠시마라는 도시 자체를 괴롭힐 이유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괴롭히는 것은 일본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