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8년 10월 14일 일본 육상자위대 사열 행사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총리 관저
이 같은 주장은 욱일기가 일본 국내,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공인, 채택됐으니 국제관계에서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논리로 확장된다. 나아가 일본 측은 '욱일기를 꽂은 자위대 함정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고 별다른 제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만하면 국제적으로도 승인받은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 정부는 한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혼동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를 가져다 육해군 자위대기(旗)로 채택한 일련의 절차는 근본적으로 '일본 국내 문제'에 속한다.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자위대가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간섭하거나 강제할 권리는 없다. 일단은 일본 정부의 권한 내에 속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입항하는 자위대 군함의 욱일기를 내려라 말라 강제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군함은 국제법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인정된다. 지난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군함의 욱일기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요구'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무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는 국경과 영토를 초월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설령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린다고 해도, 그 올림픽이라는 '대회 자체'가 일본의 소유물은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는 그 무대를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위대의 욱일기 사용은 일본 국내, 즉 내정의 문제이므로 한국이 간섭할 여지가 없다지만, 국제적인 무대, 올림픽 등 스포츠 행사, 범세계적 문화제전 등에서는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떳떳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 '욱일기는 자위대기(旗)로도 공식 활용되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자기네 국내법을 가지고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아전인수', '견강부회'식 '오독(誤讀)'이라 볼 수 있다.
[디자인론 반박] 세계적인 욱일 디자인?
욱일기 사용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욱일 디자인의 활용성이다. 햇살이 뻗어 나가는 욱일 디자인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라고만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전 세계를 두고 봤을 때 동일하거나 유사한 디자인은 상당히 많다. 거기에는 일본의 전쟁범죄 자체를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가리키는 '범죄적 의미'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시정을 요구하고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악질적인 범죄조직이나 테러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문구를 기피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켄크로이츠가 왜 격리되고 배척될까? 그 깃발 아래 얽힌 수많은 피해자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욱일기의 디자인을 운운한다는 것은 본질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다.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향해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디자인으로서는 괜찮다 라고 한다면, 나치 독일의 국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있겠지요."
* 다카하시 데쓰야, 서경식(2019), <책임에 대하여>
혐한단체는 왜 욱일기를 사용하는가?
앞의 논의들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일본이 욱일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기(旗)'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순백의 바탕 위에 색을 입히고 글자나 그림, 부호 따위를 그려놓았을 뿐이다. 특별함을 부여한 것은 그 사용자들인 것이다. 계속해서 인용하지만 하켄크로이츠를 히틀러와 나치스가 사용하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행운의 상징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