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3일 오전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확정해 발표했다.
연합뉴스
무려 3700여 명의 피해자를 낸 인보사 사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허가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식약처는 기본적인 검증도 하지 않아 제품의 핵심 물질이 뒤바뀐 '가짜 의약품'을 허가해 줬는데, 심지어 허가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무시했음이 밝혀졌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식약처가 무능함을 넘어 국민의 안전을 포기·방치해온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애초에 인보사는 유전자 치료제인데도 세포 재생효과는 없고 통증 완화 효과만 있는 의문스러운 치료제였다. 통증 완화 효과조차도 생리식염수 위약과 비교해서 통과시켰다. '유전자 치료제는 기존 치료법에 비해 안전성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돼야 한다'는 법률 규정도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3월 22일 상황을 보고 받고도 29일까지 인보사 판매를 중지하지 않아 27명의 추가 환자를 냈다. 이는 부패와 비리를 의심케 한다.
수많은 문제점이 '인보사 사태'에서 드러난 만큼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식약처의 친기업적 행태를 쇄신하고 임상시험과 품목허가 제도를 더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보사 사태는 규제완화가 부른 것이고, '재생의료' 관련해서는 식약처 허가 부실이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재생의료 의약품 사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포치료제인 '크레아박스-알씨씨', '콘드론', '케라힐', '뉴로나타-알주' 등이 모두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허가됐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
문제의 핵심은 임상 3상 면제받는 '조건부 허가'
문제의 핵심은 '조건부 허가' 제도다. 임상 3상(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1상→2상→3상 이렇게 3번 한다)은 환자군 다수를 대상으로 안전성·유효성을 확증하는 매우 중요한 절차인데, 이 3상을 통과하지 않은 채 환자에게 써보도록 하는 게 조건부 허가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3상시험을 피할 수만 있다면 많은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환자들은 그만큼 위험하거나 효과 없는 의약품으로 치료 받게 된다. 지금도 이 제도가 무분별하게 남용돼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이 수백만원의 고가로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세포치료제들도 모두 조건부 허가된 것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인보사 사태를 겪고도 규제를 강화하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완화법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첨단재생의료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법은 유전자 치료제와 세포 치료제 조건부 허가를 더 용이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약업체들이 이 법을 목을 빼고 고대하는 이유다.
우선 이 법이 통과되면 별도의 '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곳에서 소위 '재생의료' 전문가들이 바이오의약품 품목허가와 조건부 허가 관련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는 인보사 허가과정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인보사는 원래 재작년 4월 심의위원회에서 다수가 반대해 허가에서 탈락한 약이다. 그러자 식약처는 두 달 만에 이례적으로 회의를 다시 열었고, 이 자리에 '재생의료' 전문가들만 추가했다. 그리고 이들이 몰표를 줘 결과가 뒤집어졌다. 추가된 전문가에는 심지어 같은 동종 바이오업계 회사 대표도 있었다. 관련 업계와 학계 인사들은 밀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꼼수로 인보사를 허가한 식약처는 현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이 법이다.
또한 조건부 허가란 원래 초기임상(1상, 2상)에서 기존 치료법에 비해 안전성 효과성이 현저히 개선됐을 경우에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 법은 이런 요건도 없애버렸다. 게다가 중요한 조건부 허가 기준 대부분을 하위 법령에 위임해 쉽게 규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임상 3상시험을 나중에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없게 해놓았다. 황당한 일이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임상 3상이 면제된 유전자 치료제, 세포 치료제가 더욱 무분별하게 시중에 나와 환자 몸에 투여될 것이다. 지금도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식약처 허가절차는 더 부실해지고 인보사와 같은 '사기 의약품'이 더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런 규제완화가 버젓이 추진될까? 의약품 안전에 대한 이 나라 식약처장의 인식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난 4월 국회 법사위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다. 여기에 이의경 식약처장이 어떻게 답했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