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뱀파이어란 책 제목처럼 '내 기운을 빼앗는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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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고 안일한 결과였지만, 특히 후회되는 것이 있다. 정리해야 할 관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그 결과 '귀차니즘'에 빠져버렸다. <기운 빼앗는 사람, 내 인생에서 빼버리세요>의 저자 스테판 클레르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멘탈 뱀파이어'인 친구와의 관계를 너무 오랫동안 유지하는 바람에 좋은 에너지가 빨려서 만사 귀찮아진 것이다. 멘탈 뱀파이어란 책 제목처럼 '내 기운을 빼앗는 사람'을 뜻한다.
책에서는 인생에서 멀리해야 할 멘탈 뱀파이어를 유형별로 나눴는데, 자기 말은 많이 하지만 내 말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저자는 "이들이 말을 들어주는 것은 당신을 이용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수집할 때뿐이다. 이들은 절대로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남을 생각하는 척 연기할 뿐이다"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관계가 오래되면 당신의 관심을 계속 받으며 SNS나 전화로 당신을 붙잡아둔다. 이를 위해 당신의 소식을 묻거나 건강 상태에 대해 묻거나 가족 안부에 관심을 보이거나 당신이 고민하던 최근의 문제가 잘 풀렸는지 묻는다. 그리고 2~5분 동안은 당신의 말을 잘 들어주다가 이후 1시간 동안은 자기 이야기만 한다."
오래 사귄 '베프'라고 생각한 친구가 사실은 멘탈 뱀파이어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즉에 눈치 채지 못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이어온 우정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들어주는 사람, 그는 말하는 사람으로 관계가 설정돼 있었다.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험담, 외고에 입학한 딸 아이의 고단한 하루, 입시제도의 부당함 등을 쏟아냈고, 나는 흥미가 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곤 했다.
반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땐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이야기를 해도 얼마 안 있다 결국 자기 이야기로 돌아가곤 했다. 할말을 양껏 쏟아낸 친구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지쳐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은 게 오래 이어온 관계라는 거였다. 어느 정도 관계에 선을 긋고 싶어도 그러면 왠지 배신을 하는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다. 몇 번의 진지한 대화 끝에 잘못된 관계설정을 바로 잡고 적당한 선도 만들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고 그만큼 출혈도 컸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와 상황만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돈 쓰는 데 인색해서 상대가 사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친구, 만나기만 하면 본인 하소연만 늘어놓는 친구, 늘 바쁘다면서 필요한 때만 연락하고 내가 도움을 청할 땐 연락두절이 되는 친구 등. 모두 멘탈 벰파이어인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다 '호구'가 되어버린 경우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저자는 이런 친구와의 우정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진단한다. 습관의 힘이 무섭고,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며, 우정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 인정, 또 인정.
결국 상대를 탓할 것도 없다. 멘탈 뱀파이어의 표적이 되도록 허용한 내 책임이 크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 에너지를 쏟고도 성장은커녕 기운만 빠지는 관계를 허락한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며칠 전, 친한 언니가 3주 동안 미국과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만났다. 미국에 가족이 있어서 보러 간 줄로만 알았는데,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언니와 그 친구는 직장생활하며 만났으니 이제 30년도 더 넘은 관계. 언니는 회사에 남았고, 그 친구는 중간에 회사를 그만두고 밑바닥에서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5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하고 혼자 사는 언니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언니의 친구는 고생을 많이 하다가 10년 전 사업이 꽤 성공해서 지금은 건물주인 상황. 퇴직한 언니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도움을 구하자, 그 친구가 자신이 했던 일을 함께할 수 있도록 알아봐주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에 관련업계 사람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도 그 친구가 동행할 예정이란다.
이야기를 들으니 꽤 든든하겠다 싶어 "그런 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라고 물었더니, 언니가 한 마디 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 갔을 때 여기저기 좋은 데 데려가면서 얼마나 잘해줬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어."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다. 맞다. 우정도 분명히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게 경청이든, 시간이든, 밥 한 끼나 커피 한 잔이든, 연락이든, 사소한 도움이거나 큰 도움이든, 좋은 기운이든. 그래야 오래 간다.
계산적으로 굴라는 뜻이 아니다. 진짜 어려운 상황이거나 불행이 닥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주되, 그 이외에는 내가 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친구관계에서도 영락없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친하니까' 소홀하거나 무례해서는 안 된다. '친하니까' 더욱 조심하고 배려해야 한다.
성공적 우테크를 위한 황금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