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대청에서 바라보는 주방의 모습. 분합문이 열려 있는 건 같지만 바로 위 사진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역시 최종 디자인은 아니다.
선한공간연구소
이렇게 도면이 그려지고, 3D 화면을 확인하는 과정을 본격화하면서, 매우 지난한 선택의 나날이 시작됐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각 방의 바닥은 무엇으로 할까. 일반적인 아파트 바닥에 주로 까는 마루가 손쉬울까? 마루만 깔아야 하나? 타일도 있고, 한지를 사용한 장판지도 있다.
그럼 마루로? 온돌마루로 정했다고 하자. 이 세상에는 종류, 재질, 브랜드 등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은 마루가 있다. 그 많고도 많은 마루 중 딱 하나를 우리 집에 깔아야 한다. 그런데 집 전체 바닥을 모두 같은 종류로 깔아야 할까? 안방과 대청을 다르게 하면 어떨까? 요즘 타일로 바닥을 까는 게 좋아 보이던데 우리 집에 타일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그럼 타일은 또 어떤 거로? 역시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타일이 있다. 부엌의 싱크대 상판은 대리석으로 할 것인지, 타일로 할 것인지, 벽면은 페인트로 칠할 건지, 타일을 붙일 건지... 선택해야 할 것은 끝도 없었다. 눈만 뜨면 뭔가를 결정해야 했다. 화장실의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할 건지 막을 건지, 안방 천장 역시 서까래를 노출할 건지 막을 건지, 다락의 위치를 어떻게 할 건지, 대청과 안방, 주방 등과의 바닥 단차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사실 목구조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난방과 단열은 제대로 되었는지 아무리 황 목수님이 현장에서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셔도 나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어련히 잘 알아서 해주셨으려니 생각하고 반쯤은 흘려듣고 만다. 믿지 못할 시공자를 만났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됐다. 나는 밤낮으로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좋아 보이는 것, 멋져 보이는 것을 골랐다.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집이 많은지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멋진 것은 비쌌다. 욕심을 다 부리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돈이 못 해주는 일을 감각과 취향이 해주길 원했다. 누구의 감각? 누구의 취향? 바로 엄 소장의 감각과 취향이었다.
애초 그와 계약을 한 것도 바로 그 취향의 동일함에 대한 기대이자 근거 없는 신뢰였다. 나도 나를 모르지만, 어쩐지 비슷한 취향일 거라는 느낌적 느낌. 집 한 채를 짓지만 누구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물론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만.
바라고, 바라고, 바랐다
우선, 대청의 바닥을 꼭 우물마루로 하고 싶었다. 최근 지어지는 대부분 한옥의 대청에는 바닥 난방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위에 마루를 깐다. 마루를 까는 방식은 주로 일자다. 그래서 바닥만 놓고 보면 아파트의 거실과 흡사하다.
아파트에서는 헤링본 방식으로 깔기도 하고, 간혹 퓨전 한옥 대청 바닥에 헤링본 방식으로 까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옛날 전통 한옥의 마루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비록 바닥 난방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는 부분은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우물마루가 내가 찾은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