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소년원인 '안양소년원'에서 강연하고 있는 천종호 판사.
조호진
천종호 부장판사와는 2014년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가 창원지법 판사로 재직하면서 만든 '사법형그룹홈'(현 청소년회복센터)을 경기도 의왕시에 만들겠다고 하자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천 판사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보호소년들을 위탁받아 함께 살았지만 소년들이 달아나면서 제가 만든 '어게인그룹홈'은 1년도 못돼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천 판사는 실의에 빠진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는 법복의 권위에 갇힌 판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비행청소년들에게 비난의 돌팔매질을 할 때, 그는 소년들에게 "아니야, 너희들의 잘못만은 아니야. 우리 어른이 잘못했어. 아이들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국회, 대학, 교회 등 부르는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소년들을 살려야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배웅하면서 사람의 길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길 택한 '소년범의 아버지' '아, 사람들은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판사인 저 사람은 왜 도움도 되지 않는 비행청소년들의 눈물을 닦아줄까. 왜 이런 일에 자기 인생을 거는 걸까. 자기 자식이 아니면 외면하기 일쑤인 사람들에게 비행청소년의 손을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걸까. 저지른 짓을 보면 돌을 맞아도 싼 비행청소년을 왜 변명해주는 걸까. 그러다 돌 맞을지도 모르는데 왜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소년범의 아버지 역할을 할까?'
판사는 판결로 말하면 됩니다. 판사의 권위를 적당히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면 됩니다. 판사로서 출세하지 못할 것 같으면 법복을 벗고 전관예우를 누리는 변호사가 되어 고액 수임료를 챙기면 됩니다. 돈만 있으면 죄가 있어도 죄가 없도록 만들어주는 유전무죄와 돈이 없으면 큰 죄가 아니어도 엄벌에 처해지는 무전유죄의 혜택을 누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는 판사들이 잘 가지 않는 외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가 택한 길은 외롭고 힘든 길입니다. 판사 사회에서 이런 판사로 살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년 살리는 일을 한다고 칭찬받을까요? 모난 돌 취급을 받으며 정 맞을까요? 이뿐이 아닙니다. 그는 부산, 경남, 대전 등지에 20곳의 '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들고 지원하면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저는 그가 외롭고 힘들 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비와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천종호 부장판사가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사건, 인천 여고생 집단폭행사건, 관악산 여고생 집단폭행사건 등 잔혹한 청소년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이 거셉니다. 정부는 소년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12일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소년법 개정 검토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소년법이 개정되면 문제가 해소될까요? 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 13일 천종호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엄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소년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엄벌에 있지 않습니다. 비행청소년 사건의 배후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작은 희망마저 박탈하는 사회 구조입니다. 재판에서 만난 소년범들과 청소년회복센터에서 보호 중인 소년 가운데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회의 책임은 외면한 채 엄벌로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면 비행청소년들은 더 극단적이고 잔혹한 사건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저는 천종호 부장판사의 진단에 동의합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우리 사회가 만든 문제입니다. 엄벌의 돌덩이로 쳐서 피투성이로 만들려고 하는 비행청소년들은 비인간화 된 사회가 만든 괴물입니다. 괴물로 변해버린 비행청소년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천 부장판사는 제3의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사회가 낙오시킨 소년들에게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괴물이 된 아이들... 외면말고 희망의 공간 만들어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