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위해 국회 도착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국회 본회의 상정에 따른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사실 크지 않았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말고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뭔가 확실하거나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존경받던 인권변호사 시절의 문재인이 정치인 문재인으로 탈바꿈하고 난 뒤 어떤 정치적 업적을 쌓아갔는지 콕 집어 기억나는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이 대통령 문재인이 되고 난 뒤 놀라움은 커져만 갔습니다. 매일 매일 언론에 보도된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는 너무나도 다른 훌륭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은 단순히 정치적 수사라고 폄하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에서 '이게 나라다'라고 환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저임금은 어떠합니까.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이는 2017년 최저임금 6,470원과 비교했을 때 16.4%로 인상된 금액이고, 11년 만에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한, 2001년 이후 최대 폭의 인상이었습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지켜질 것이란 안도감을 갖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최저임금이 곧 실질임금이 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전 국민의 임금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파리바게뜨 제빵사에 대한 근로감독→불법파견 판정→시정지시→과태료부과로 이어지는 이런 일련의 신속하고도 적확한 행정을 지켜보는 것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간 고용노동부가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이익에만 손을 들어주는 일이 워낙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법과 원칙대로 일만 해도 놀라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런 적확한 일처리가 있었다면 정규직 전환에 걸린 10년이 넘는 시간도, 대법판결 동일 이행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도, 그로 인해 목숨을 끊거나 구속된 노동자들도,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배가압류 소송도 없었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놀라운 일은 열사 투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죽어갔는지, 살아남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상복을 입고 향내를 맡아야 했는지, 그 공포와 두려움을 견디며 싸워갔는지 열거하기도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죽음의 행렬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행보가 적어도 목숨을 버리고 싸워야 하는 참혹함과는 다른 결에 서 있었다는 점은 지난 9년간 쌍용차 정리해고로 죽어간 29명의 동료와 가족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열사를 지켜봤던 목격자로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의 비극 속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