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링 돌카 아주머니네 집. 이 집에서 내게 아무런 조건 없이 머물다 가라 했다.
송성영
아주머니는 외딴집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에게 가볍게 손짓하더니 내게 뭔가를 마시는 시늉을 한다. 짜이 아니면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 같다. 차에서 내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엄마'라고 한다.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그녀는 영어를 썩 잘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한국. 아세요?""그럼요. 남한 사람이겠죠? 우리 엄마가 짜이를 대접하고 싶어 해요. 괜찮겠죠?""고맙습니다."그녀의 영어는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들을 정도로 유창했다. 길가에 자리한 모녀의 집은 제법 규모가 있었고 집 저편으로 히말라야 설산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멀뚱멀뚱 집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내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우리 엄마가 당신은 이곳에서 머물러도 상관없다고 합니다.""예?""민박을 하시나요?""아니요. 당신이 만약 숙소를 찾지 못했다면 우리 집에서 조건 없이 머물러도 됩니다."그녀가 조건 없이 머물러도 된다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모녀가 살고 있는 이 외딴집에 남정네가 머물러도 된다는 것인가. 그것도 추레한 거지꼴의 남정네를.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만난 내게 자신의 방을 내준 네팔 소녀 씨라파의 가족이 떠올랐다. 하지만 씨라파에게는 부모가 있었다. 그녀의 영어를 잘못 이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물었다.
"이 집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예 그래요. 당신의 가방은 티베트 스님들의 가방인데… 수행자인가요?"그녀는 내 어깨에 걸쳐 메고 있는 붉은 천 가방을 손짓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여행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동생이 선물한 가방입니다. 그는 티베트 불교의 스님입니다.""정말로요? 당신 동생이 티베트 스님이라고요?""예 맞습니다.""그럼 그 스님도 같이 왔나요?""아니요. 그는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동생이 티베트 수행자라니, 너무 반갑네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어요." 그녀가 내온 달콤한 짜이를 마시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6대째 살고 있고 그녀의 엄마는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로컬 피플' 이었다. 내가 라다크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라다크 농촌 사람들의 생활에 끼어드는 것이었기에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그녀의 엄마 이름은 새링 돌카, 그녀의 이름은 디스킷 돌카였다. 디스킷은 티베트 말로 '행복'이라는 의미가 깃들여 있다고 한다. 내가 짜이를 다 마실 무렵 그녀는 불과 20여 분 전에 만난 나를 철석같이 믿고 집안 곳곳으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