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드마가 중심 인물로 출연한 라다크 영화 DVD
송성영
활짝 피었던 꽃들이 지듯 히말라야 설산 저만치에서 선분홍 빛으로 피어오르던 노을이 한순간 사라지고 돌카네 집안으로 들어서는 어둠을 따라 낡은 중고차 한 대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훤칠하게 생긴 사내가 자동차에서 내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내밀었다. 돌카의 남동생 파드마였다.
하루 종일 돌카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 러고 보니 둘카 엄마는 남편 없이 농사를 지어 두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딸, 돌카는 델리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파로서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고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라고 한다.
"정말요? 라다크에서도 영화를 찍나요?""영화제작사가 세 개나 있습니다.""모두가 캠코더가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프로덕션입니까?""그럼요."놀라운 일이었다. 라다크 중심지 레에서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지만 영화사가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평균 고도가 4천 미터에 이르는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에도 영화사가 있다니 그것도 세 개씩이나,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생산해내는 인도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인도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하여 '발리우드'라고도 한다. '폼생폼사'로 거들먹거리며 등장하는 잘 생긴 주인공의 주먹질과 총질에 피 튀기는 할리우드 영화를 닮았다. 하지만 발리우드는 그 잔혹한 장면들을 선남선녀들의 춤과 노래로 순화시킨다. 춤과 노래가 기본으로 뒤섞여 있는 인도영화는 섹시하지만 성을 상품화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추잡하지는 않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관능미 넘치는 현란한 춤사위는 할리우드와는 달리 성적인 자극보다는 인간의 육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파드마는 라다크의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여줬다. 우리는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리는 물로 설거지를 하고 세면을 해야만 하는 라다크의 작은 마을, 간혹 저만치 산 능선에서 야생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집안에서 DVD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모두 다 라다크를 배경으로 찍은 1시간 40분 정도 분량의 영화였다.
파드마가 중심인물로 출연한 두 편의 영화 역시 인도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가 기본양념처럼 뒤섞여 있었다. 그중 한 편은 1970년대 한국의 영화처럼 스토리며 화면 구성이 순박하리만큼 어설픈 영화였다. 산골 마을에 도시 청년이 들어와 시골 처녀와 사랑에 빠져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전형적인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어설픈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등장인물이 종종 화면에 잘려 나올 정로도 카메라의 구성 또한 어설펐다.
하지만 다른 한 편은 언어소통과는 상관없이 영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성이 잘 짜져 있고 스토리 전개가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썩 재밌는 영화였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 같습니다.""인도에서 열 손가락에 손꼽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인데, 잘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영화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는 제작하지 않나요?" "아니오.""라다크를 현지 사람들이 직접 다큐로 제작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요."나는 한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었다며 "라다크의 자연환경과 생태 역사 문화 등을 장기간에 걸쳐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아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말해놓고 나서 괜히 아는 척을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섯 시,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돌카 엄마는 불상과 달라이라마 존자(학문과 덕행이 높아 존경받는 불제자를 높여 이르는 말) 사진이 모셔진 성소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만트라를 암송한다. 돌카 역시 집안 청소를 하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듯 만트라를 암송하고 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자비심으로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발랑 아똥" 외치는 돌카 엄마, 무슨 뜻인가 했더니...